작성일 : 17-12-01 14:46
[107호] 인권포커스 - 청소년의 입을 막는 문제들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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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의 입을 막는 문제들

이은선


# 울산에서 학생인권조례를 만들려고 했다


나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니며 교사로부터 폭력, 성희롱, 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다. 그리고 내가 학교폭력을 당하는 것을 학교가 방관하는 일도 경험하였다. 그렇게 어렵게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하였지만 별로 달라지는 건 없었다. 학생회장이 되었지만 학교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었다. 학교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나와 같은 피해자들이 이후에도 계속 나올 것 같았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개선해 나갈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했다. 경기도, 광주, 서울, 전북에서 제정되어 시행 중인 학생인권조례에 눈길이 갔다. 저런 법이 있다면 내가 겪었던 것과 같은 문제들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가 살고 있는 울산광역시에서도 학생인권조례를 만들어 보자고 나서서 준비하게 되었다. 나는 학생인권조례가 정말 반대할 이유가 없는 조례라고 생각했다. 학생들의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한다는 내용인데 왜 반대한다는 말인가. 어른들은 우리 청소년들을 사랑하고 보호해야 한다고 한다. 차별과 폭력, 성추행 등 각종 인권침해를 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의 조례를 설마 반대할까 싶었다.
하지만 시의원을 만나 이야기하는 첫 걸음부터 난관이었다. 학생인권조례 요구안과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서명지를 모아서 시의원을 찾아갔다. 시의원으로부터 처음에 들은 말은, “학생인권조례 제정은 99% 불가능한 일이다.”, “제정하는 데 적어도 5년 이상 걸린다.”였다. 그 시의원은 아직 조례 제정을 본격적으로 시작도 하지 않았지만 회의적인 의견부터 내며 손사래를 쳤다. “저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명도 많이 받았습니다. 학생들이 진심으로 원하는 조례입니다.”라고 대답했지만, 그는 “정책을 만드는 사람은 어차피 정치인인 나다.”라고 이야기했다. 국민이 원하는 정책을 만드는 것이 정치인의 일인 줄 알았는데, 청소년, 학생은 국민도 아닌가 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혼자서라도 준비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자리를 나왔다.
하지만 울산의 한 사립고등학교의 학생인권 사례들이 SNS에 퍼지게 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관심을 가지지 않던 시의원들이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학생인권조례를 만들어 보겠다며 2명이나 나서서 기자회견을 하였다. 그중 1명은 이미 만났던 사람이었던지라, 새롭게 입장을 발표한 시의원을 찾아갔다. 학생들이 요구하는 내용들을 조사하고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타 학교의 상황까지 수집해서 갔다. 하지만 우리의 요구안을 읽어보지도 않은채 “이미 조례에 다 포함되어 있는 내용이야.”라고 했다. 청소년의 이야기는 존중하지 않는 시의원의 태도에 실망했다. 또한 그 시의원이 준비하는 조례안을 검토해보기 위해 한 부 달라고 요구했지만 안 된다고 하였다. 교사들 사이에서는 이미 공유되고 있다고 들었는데, 왜 학생에게는 공유하지 않을까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 ‘너는 정치인들 총알받이다’

학생인권조례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더 필요했다. 고3인 나는 학교에 붙들려 있는 시간이 너무 많았다. 방과 후 수업을 하지 않기 위해 담임선생님께 찾아갔다. 이야기를 듣자마자 남아서 이야기하자고 했다. 선생님께서는 “방과 후 안 하는 애들은 대학 포기하겠다는 이야기로 들려. 예체능 애들도 그렇고.”라고 하셨다. “저는 대학교에 욕심 없어요.”라고 대답하자, 사건이 시작되었다. 전체 교사들에게 내가 대학교를 포기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학생회 선배들에게까지 소문이 퍼져서 자꾸 연락이 왔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부모님에게도 연락을 해서, 내가 좋지 않은 활동을 하고 있다며 내가 이상한 곳에 빠진 거 같다는 식으로 이야기하였다.
그래도 나는 꿋꿋하게 계속 여러 학교의 학생인권 침해 사례를 모았다. 아무래도 내가 보고 듣고 겪다 보니, 자료 중에는 당연히 우리 학교 사례가 많았다. 자료들을 국회의원 보좌관, 국민신문고 등에 올리며 외부에서도 학교 안의 문제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알린 문제들 때문에 우리 학교에 조사를 하러 오기도 했고, 학교의 인권침해 사례가 지역 신문 기사로 나오게 되었다. 기사가 나오자마자 교장선생님은 내가 학교를 이 꼴로 만들었다며 공개적인 장소에서 화를 냈다. 그리고는 갑자기 불러 “너는 지금 정치인들 총알받이다.”라고 내 활동을 비하하였다. 그리고 학교의 일들을 언급하면서 “이것도 인권침해냐? 아니지? 학교 일은 학교 내부에서 해결해야지.” 등의 이야기를 하였다.
교장선생님의 말을 들으며 나는 억울했다. 그동안 나는 학교 내부에서도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하였다. 학생부장 선생님을 찾아가 학교의 여러 인권침해를 바꾸기 위해 건의했지만, 부장선생님은 “너, 선생님이 지금 처음 왔다고 무시 하냐? 다 바꾸려고 하네.”라고 화를 냈다. 내부에서 해결하려고 하면 손쉽게 입을 막아버리고, 해결할 수 있는 길도 만들어놓지 않았는데, 문제점을 외부에 알렸다는 것으로 비난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했지만, 교사들은 내가 학교를 팔아먹은 사람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퍼뜨렸다. 지금도 교육청 지침으로 교칙이 조금 수정됐을 뿐, 학교는 여전히 학생들을 존중하지는 않고 있다.

# 나는 시민이다

내가 겪은 청소년의 삶은, 나의 의견이 학교 안에서도 쉽게 묵살되고 학교 밖에서도 묵살되는 것이었다.
그럴 만도 하다. 법이나 학교 규칙으로도 청소년은 선거권도 없고 선거운동이나 정당가입 등의 정치활동이 여러 가지 제약당하고 있다. 학교 규칙에는 정치활동 시 퇴학까지 가능하다는 내용도 담겨있다.
또한 청소년들에게는 언어폭력이나 체벌 등의 폭력이 가해져도, 교육을 위한 거라는 핑계를 대면 그냥 넘어가는 것이 우리 사회의 분위기다. 청소년의 사생활도 신체의 자유도 존중하지 않는데, 청소년의 의견을 비중을 두고 생각할 리가 없다. 청소년을 이처럼 평등한 시민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청소년의 입은 막히고 청소년의 의견은 귀 기울여지지 않으며 청소년에게 참정권도 보장되지 않는다. 또 반대로 청소년에게 참정권이 없기에 청소년의 여러 인권이 쉽게 침해당하고 있다. 청소년의 인권을 위한 법이나 제도를 잘 만들지 않으니까.

나는 청소년의 문제를 어른들에게 대신 해결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지쳤고, 그렇게 해서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 청소년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선거권 제한 연령이나 피선거권 연령도 확 낮춰야 하고, 정치활동과 참여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또한 전국적으로 모든 청소년이 동등하게 인권을 보장받기 위해 어린이·청소년인권법이 제정되고, 학생인권을 보장하는 법률이 만들어져야 한다. 청소년이라고 자유가 뺏겨야 될 이유는 없다. 나는 학생이자 청소년이고, 그리고 시민이다.


※ 글을 보내주신 이은선 님은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공동대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