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1-03-02 09:18
[146호] 인권 포커스 - 택배기사에 대한 도 넘는 갑질을 되돌아보며
 글쓴이 : 사무국
조회 : 3,203  
택배기사에 대한 도 넘는 갑질을 되돌아보며
(부제 : 갑질은 무례한 내 자화상이다.)

김성길


택배는 이미 우리네 삶의 편의를 위한 일상이 되었다. 코로나 19 이후 마트, 쇼핑몰 등 소매점과 음식점, 카페 등 매장 이용이 줄고 배달 택배가 급증하였다. 올해 초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온라인 쇼핑 거래액은 전년 대비 19.1% 증가한 161조 1,000억에 달한다. 지난해 소매판매액 중 온라인 쇼핑 상품 거래액이 차지하는 비중이 27.2%로, 두 수치 모두 통계 작성 이래 최대치를 갈아 치웠다. 이러한 통계는 2020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약 63회 택배를 이용한 셈이다. 특이한 점은 음식배달이 전년보다 78.6% 늘어 증가폭이 가장 컸고 앞으로도 빠른 성장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와중에 최근 택배기사에 대한 갑질 논란, 막말 사건이 우리네 미간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택배 노동자의 연이은 사망과 관련하여 발표한 성명에 따르면, 택배 노동자는 주당 평균 71.3시간, 하루 평균 12시간 이상을 일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산재법상 과로 인정기준을 훌쩍 뛰어넘은 수준이다. 인권을 중시하는 많은 시민단체와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최근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이 제정되어 국회를 통과하였다. 주된 내용은 택배 서비스 사업에 등록제를 도입하고, 계약갱신청구권을 부여하여 6년간 보장하며, 표준계약서를 통해 공정한 계약을 유도하며, 생활 물류 쉼터 조성 등 택배 노동자 보호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실로 반가운 소식이다.

근래 세간의 관심은 종전의 고민거리였던 과로사 등의 시급한 사안을 어느 정도 생활물류서비스법 제정 등을 통해 급한 불을 끄고 보니, 택배기사에 대한 우리네 소비자들의 멸시와 갑질이 남은 것을 확인한 것이다.
수년 전 ‘스노우폭스사’란 한 사업장에서 고객에게 내건 ‘공정서비스 권리 안내’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우리 직원이 고객에게 무례한 행동을 했다면 직원을 내보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직원에게 무례한 행동을 하시면 고객을 내보내겠습니다. 상품과 대가는 동등한 교환입니다. 우리 직원들은 훌륭한 고객들에게 마음 깊이 감사를 담아 서비스를 제공하겠지만 무례한 고객에까지 그렇게 응대하도록 교육하지는 않겠습니다.” 위 글이 SNS를 통해 화제를 모은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껏 사업주는 ‘고객은 왕이다’란 미명 아래에 수익에 초점을 맞춰, 직원들에게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존중도 보장하지 않은 채 무조건적인 친절을 강요해 왔던 것과 반대로, 기업의 대표가 공식적으로 무례한 갑질 고객에게 일침을 가해 무조건적인 복종 문화를 거부하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기업은 이런 진상 고객들로부터 자신의 직원들을 보호하지 않았다. 콜센터 직원들은 손님보다 먼저 전화를 끊지 못해 옥갖 욕설과 모욕 혹은 성추행을 당해야 했다. 뒤늦게 산업안전보건법에 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한 건강장해 예방조치가 규정되기에 이르렀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사업주가 자신의 직원을 팔 걷고 보호하려는 인식의 전환을 만들지 못했고, 더 나아가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고객의 갑질을 막을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것이 실정이다.
물론 형사법상 고객에게 뺨을 맞거나 폭언, 모욕을 당했을 때 폭행죄, 모욕죄로 처리할 수 있고, 신체피해를 당한 경우 산재처리로 피해자를 보호할 수는 있다지만, 오히려 사업주가 자신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피해자를 해고하거나 불이익을 줄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 누군가의 욕받이로 전락하는 것이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4차 산업혁명 기술 중 하나인 인공지능으로 인해 공유경제에 대한 개념이 우리 사회에 매우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고, 지금의 택배산업은 플랫폼 기술의 발전을 등에 업고 수요와 공급을 일치시켜 효율성을 증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당장의 생활물류서비스법은 택배와 퀵서비스 노동자라는 기존의 틀만 포함될 것이지만, 선진국에서 논의되는 crowd logistics 등의 개념으로 향후 확장될 것이라는 점이다. 무슨 말이냐면, 지금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가 이러한 물류 운송을 전담한다고 틀에 박힌 생각을 하지만, 선진국은 일반인들이 보유한 다양한 운송수단 및 운송노동력을 파악하여, 공유경제의 논리로 일반인들의 이동경로를 배송경로로 활용한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멀지 않은 미래에는 일반인들도 택배기사 역할을 하는 일이 일상화될지 모른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갑질을 한다는 것은, 그 전제에 나는 너와 다르고, 나는 너보다 우월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나와 너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이 그리 멀지 않았다는 점을 알고 나면 계속 그러할 수 있을까.
갑질은 무례의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무례하다란 말의 ‘무례’는 無禮 즉 예의가 없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자. 갑질은 실로 못 배워서가 아니라 못나서 생기는 문제일지 모른다. 누군가에게 갑질을 해서 우월감을 얻고자 하는 자들은 사실 자신의 열등감, 낮은 자존감을 숨기기 위해서인지 되돌아봐야 한다. 타인에게 품위 있게 행동하고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배려하는 것은 인간의 품성 가치 중에 으뜸이다. 품위, 친절, 배려를 우리는 교과서를 통해서 배웠고, 가정에서 예라는 이름으로 배워왔지만 정작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상대방으로부터 받고 싶은 대우를 내가 먼저 행해야 돌아오는 것이다. ‘역지사지’가 별다른 것이 아니다. 내가 사회 안의 부당함, 차별, 편견에 저항하지 않는 것은 내가 당할 부당함, 나를 향한 차별, 나에 대한 편견에 저항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우리는 택배기사에게 함부로 대하여서는 안 된다.


※ 김성길 님은 노무사이며 울산인권운동연대 회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