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2-30 10:24
[144호] 인권 포커스 - 사람의 인권처럼 고래에게 생존권을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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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인권처럼 고래에게 생존권을

이상범


환경문제와 동물권에 대해서 개념이 희박하던 시절, 난생 첫 해외 나들이였던 홍콩에서 돌고래쇼를 보았을 때 느꼈던 것은 어떤 문제의식이 아니라 놀랍고 신기함이었다. 하늘로 솟구쳐 오르고 공중제비를 돌며 공을 입으로 받아내는 묘기 장면을 사진에 담아 자랑질을 했었다. 돌고래쇼는 대단한 인기몰이 붐을 타고 제주도에도 생겼고, 서울에서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유행에 뒤질세라 울산 남구에도 고래생태체험관이 생겨났다. 그러나 남구에서 야심차게 투자한 고래생태체험관은 개관이후 10년 동안 8마리가 폐사하는 고래의 무덤이 되었다. 이쯤 되자 생태체험관이 아니라 폐사체험관이라는 조롱과 비판이 빗발쳤다.

처음에는 생뚱맞게 들리던 돌고래쇼가 동물 학대라는 주장이 이제는 대세가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넓디넓은 대양에서 마음껏 헤엄치면서 살던 돌고래를 생포해다가 관광객의 구경거리로 삼는 것이 비윤리적이기 때문이다. 돌고래에게 수족관 넓이는 인간이 독방에 갇힌 것과 같을 것이다. 좁은 공간에서 운동 부족에다 무리와 떨어진 고립감 등 스트레스가 심할 수밖에 없다. 쇼를 위한 재주를 훈련시키는 과정에서 말을 들어야 먹이를 얻어먹는다. 사람으로 치면 납치, 감금, 학대인 셈이다. 훈련과정이 끝나 쇼에 동원된 후에도 재주를 잘 부려야 상급으로 먹이가 주어진다.

이처럼 생포된 돌고래는 달라진 환경에서 스트레스와 면역기능이 약화되어 대부분 폐혈증이나 폐렴으로 평균수명을 살지 못하고 죽는다. 비윤리적인 동물학대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면서 돌고래 쇼는 대부분 중단됐다. 뿐만 아니라 무단으로 생포했던 돌고래를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추세다. 그렇지만 울산 남구에서는 여전히 고래를 가두어두고 있다. 지난 7월 수컷 돌고래 고아롱이 폐사하면서 남구청은 다시 한 번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지금까지 수입을 했거나 태어난 돌고래 새끼까지 총 12마리 중에서 8마리가 폐사했는데도 남구청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서 생태체험관을 짓고, 고래문화특구 지정과 고래축제 등 고래를 테마로 한 관광특구 프로젝트에서 애써 들여온 고래를 포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고래를 살아있는 생명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고액을 들여 사들인 재산권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수족관에 길들여진 고래를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일도 생각처럼 간단치가 않다. 야성을 잃어버린 돌고래를 그대로 바다에 풀어놓으면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연에서 적응 할 수 있는 훈련을 거쳐야 하는데 그런 시설을 마련하고 운영하는 비용이 적지 않게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사람의 인권이 소중하듯 고래의 생존권도 존중해야 한다. 비용은 돈벌이를 목적으로 포획한 원인자부담으로 치러야 할 댓가다.

남구청의 상징동물은 고래이며, 캐릭터도 고래를 소재로 한 장생이다. 울산광역시 캐릭터도 고래를 소재로 한 해울이다. 고래문화특구, 고래박물관, 고래바다 여행선, 고래축제, 고래마을……. 남구는 그야말로 고래 고장이 되었다. 역사적으로 울산은 고래와 인연이 깊은 고장이다. 약 7천 년 전으로 추정되는 반구대암각화가 이를 증명한다. 선사시대부터 시작된 고래잡이가 고래고기를 유독 좋아하는 일본 강점기에 전성기를 이루면서 장생포항과 방어진항은 고래가 먹여 살렸다고 할 정도로 흥청댔다. 필자가 일자리를 찾아 울산에 왔던 70년대 말부터 80년대의 장생포와 방어진에는 두 집 건너 한집 꼴로 고래고기 식당이 많았었다. 지금까지 울산에서 해체되어 식탁에 오른 고래는 도대체 얼마나 될까? 포경산업의 근거지였던 장생포항은 실은 고래들의 도살장이었던 셈이다.

국제적으로 상업포경은 금지되었다. 2018년부터는 고래축제에서 고래고기 시식 행사도 사라졌다. 고래문화 특구를 지정하여 운영하고, 매년 고래축제를 여는 것은 문제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의 생명과 인권이 소중한 것처럼 고래의 생명도 소중하고 생존권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고 알리는 축제로 이어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고래생태체험관이란 이름의 감옥에 갇혀있는 돌고래들을 바다로 돌려보내야 한다. 그 비용이 만만치 않더라도 그동안의 포경으로 죽어간 고래들에 대한 참회와 울산시와 남구청이 캐릭터로 사용하는 모델료나 초상권 사용료 대신 그만한 부담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반구대 암각화를 유네스코 유적으로 등재하기 위한 범국민적인 노력이 빠른 결실을 맺기 위해서도 고래를 가둬놓고 학대하는 야만적인 나라가 아니라 고래와 공존을 모색하는 나라임을 보여 줘야 한다. 반구대암각화를 물고문에서 건져내야 하는 것이 시급한 것과 마찬가지로 납치 감금 학대상태인 고래를 자유롭게 풀어주는 일도 시급하다.


※ 이상범 님은 울산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