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04-27 17:14
[100호] 인권포커스 - 국가권력과 인권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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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권력과 인권

오문완


(1) 지난 3월 15일 뉴질랜드 의회는 원주민 마오리족이 신성시하는 북섬의 황거누이강에 살아 있는 인간과 동등한 법적 권리와 책임을 주는 법안을 통과시켰다고 한다. 앞으로 누군가가 이 강을 해치거나 더럽히면 사람을 해친 것과 똑같이 처벌된다는 것이다. 조약협상장관은 “법안은 황거누이강과 마오리족의 깊은 영적 유대를 반영한 것으로 강의 미래를 위한 강한 토대를 만들었다”고 했단다.

이제 황거누이강은 공익신탁이나 사단법인과 비슷하게 취급되고, 마오리족이 임명한 대표자 1명과 정부가 임명한 대리인 1명이 신탁 관리자가 돼 강의 권익을 대변하게 된다. 정부는 법안에 따라 마오리족에 8,000만 뉴질랜드달러(약 636억 원)를 보상하고, 강을 보존하기 위해 3,000만 뉴질랜드달러를 투입할 예정이다. 또 강을 위한 법적 토대를 만드는 데 100만 뉴질랜드달러 상당의 기금이 조성된다.

마오리족은 이 강을 지키기 위해 오랜 세월 싸워왔다고 전한다. 마오리족이 이 강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법적 보호를 확보하기 위해 싸운 것은 160년에 이른다는 것이다.(경향신문 3월 16일자, ‘황거누이강을 사람으로 대하라’)

(2) 언론은 자연이 권리의 주체로 등장한 것이 세계 최초의 일이라고 전하고 있는데, 에콰도르로서는 섭섭한 일이 아닐 수 없다. 2008년 7월 7일 라틴아메리카의 에콰도르는 세계 최초로 자연에게 권리를 부여하는 자연권(Right of Nature)을 국민투표로 통과시켰다. 21세기 사회주의 국가를 표방한 라파엘 코리아 대통령은 기간산업에 대한 국가 통제와 유휴 농지 재분배 등의 법안과 자연에 권리를 부여하는 개헌안 통과를 주도했다. 이 최초의 자연권 헌법은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는데도 한국에서는 이슈화되지 못했다. (http://viva9.tistory.com/313)

(3) 주요 정당의 대통령 후보자들이 모두 다 동물의 권리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제시하고 있어 우리나라도 조만간 자연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을까 기대된다.
중요한 것은 자연의 권리로까지 확대될 인권이 그냥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끊임없는 투쟁의 소산이 인권이다. 언젠가 유남영 前국가인권위 상임위원이 인권을 “.?!”라고 정리한 게 기억난다. 묻지 않고서는 인권이 없다는 얘기다.

(4) 예링의 말로 정리해보자. 루돌프 폰 예링은 그의 주저(主著) <권리를 위한 투쟁>에서 “너는 투쟁을 통해 너의 권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그의 사상에서 우리가 또한 주목해야 할 것은 권리를 위한 투쟁은 개인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국가공동체의 존립을 위해서도 필요불가결하다는 점이다. 권리의식이 뚜렷하지 못한 백성은 결국 국가의 권리도 지킬 줄 모른다고 한다. 따라서 외적으로부터 국가를 확고하게 방어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국방예산보다 백성들이 투철한 권리의식으로 무장되어 있을 것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내 것을 빼앗기지 않고 어떤 일이 있어도 지킨다는 권리의식의 함양이야말로 최선의 정치교육이다. 이 관점으로부터 바라볼 때 예링으로서는 침략자보다 오히려 짓밟히는 자를 탓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불법을 행하지 마라!’는 금지명제보다 오히려 ‘불법을 감수하지 마라!!’는 요구명제를 우선시킨다. 이 요구명제에 상응하는 자기주장이 바로 ‘권리를 위한 투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은 그에게서는 도덕적 자기보존의 의무로 각자에게 명해지며, ‘인간의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에로까지 높여진다. 그리고 이 의무를 태만히 하는 자는 자기의 도덕적 실존 조건을 포기하는 자로, 그것은 ‘도덕적 자살’이라고 할 수 있다. 권리침해를 감수하는 자, 그럼으로써 자기 존재를 노예나 동물로 전락시키는 자, 그자가 바로 법의 정신을 좀먹는 자이다. 불법과 불의를 감수하고 관용하는 비겁과 무관심이야말로 용서하지 못할 죄를 짓는 것이다.

이런 말도 한다. 투쟁이라는 요소는 법에 영원히 내재하는 근원적 요소이며, 투쟁은 법의 영원한 노동이다. ‘얼굴에 땀을 흘려서 너의 빵을 먹어야 한다!’라는 말이 진리이듯이 ‘너는 투쟁을 통해 너의 권리를 찾아야 한다!’라는 말도 똑같이 진리이다. 권리가 투쟁을 벌일 태세를 포기하는 순간 권리는 스스로를 포기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권리에 대해서도 시인의 다음과 같은 말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지혜의 마지막 결론은 이것이다.
날마다 자유와 생명을 쟁취해야 하는 자만이
진정 자유와 생명을 누릴 자격이 있도다.


(5) 국가는 인권의 수호자이면서 인권의 침해자이기도 하다. 노자가 말하듯이 소국과민(小國寡民)이 이상사회일 수는 있겠는데 국가 없이는 국민의 안전이 담보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그 국가가 법을 불공정하게 집행하기도 하고 고문이나 가혹행위를 저지르기도 한다. 우리가 겪었던 그 숫한 고난이 이를 웅변한다. 결국 인민(people)의 저항이 인권의 보루이다. 그게 촛불의 의미이겠다.

※ 오문완 님은 울산인권운동연대 공동대표이며, 울산대학교 교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