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1-05-31 19:25
[149호] 여는 글 - 5월은 가정의 달, 식구는 밥을 같이 먹어야죠!
 글쓴이 : 사무국
조회 : 3,009  
5월은 가정의 달,
식구는 밥을 같이 먹어야죠!

오문완


최근 읽은 책 중 《처음 읽는 음식의 세계사》를 소개합니다. 미야자키 마사카츠라는 일본 학자가 쓴 책으로 한세희라는 분이 번역했고 올해 <탐나는 책>에서 펴낸 따끈따끈한 책입니다. 원제는 《知っておきたい「食」の世界史》이니 ‘알아 두고 싶은’ 음식의 세계사여야 하는데, 손님을 끌기 위해 ‘처음 읽는’이라고 제목을 단 모양입니다. 이런 식의 손님 유혹이 썩 내키지는 않지만, 출판사도 나름 고민을 했을 터이니 넘어가기로 하죠. 자연의 파괴와 가족의 붕괴에 관한 대목만 소개하겠습니다.

오랜 세월, 인간에 의한 자연 파괴를 막아주던 것은 역설적이게도 식자재가 썩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냉동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자연 파괴를 막던 제어가 풀어졌다. 자연은 보다 난폭하게 포획되기 시작했다. 인간의 식생활이 풍요로워지며 포식의 시대가 온 것이다. 이는 동시에 농업, 어업, 목축업의 모습이 혁명적으로 변화한 것을 의미했다. 식자재 생산의 급증은 자연 파괴의 가속화에 다름 아니었다. 균형 감각을 잃은 인류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의 생존 기반인 지구 환경을 파괴하게 된 것이다.
자연의 신음소리에도 불구하고, 가정용 냉장고, 냉동식품 공장, 냉장?냉동선, 거대한 냉장창고와 냉동고, 각 업소의 냉장 진열장을 연결한 체계가 미국을 중심으로 20세기 말에 급속하게 정비되었다. 생산 현장에서 유통 경로를 저온으로 관리하는 이른바 콜드 체인의 형성이었다. (212쪽)

전자레인지가 보급되면서 반조리된 가공식품이 대량으로 가정에 들어오는 길이 열렸다. 그렇게 요리 과정의 상당 부분이 가정에서 식품 기업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거대 식품 기업이 양산한 플라스틱 용기에 포장된 반조리 식품이 다채로워지면서, 먹고 싶을 때면 언제나 간단히 혼자 식사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국과 밥, 반찬 모두 편의점에서 사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전자레인지로 해동하고 가열하면 음식이 완성되었다. 가족은 이제 함께 식사하기보다는 편할 때 각자 따로 식사하는 경향이 늘었다. 가족의 유대감을 유지시켜 주던 식사의 형태가 변하자 가족이라는 형식 그 자체도 급속도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한솥밥을 먹는다’는 말이 있듯이 밥을 같이 먹는다는 것은 인간관계와 신뢰의 기반이었다. 하지만 요리라는 공동 작업은 전자레인지로 인하여 쇠퇴하였고, 혼자 밥을 먹게 된 인간은 고립되었다. 인류가 키워온 식탁이라는 무대는 그 위상이 흔들리게 된 것이다. (222-223쪽)

수업시간에 학생들한테(간간이 성인 학생들한테도) 인권이라는 개념을 얘기할 때면 화이부동(和而不同)을 꼭 얘기합니다. 그리고 화목하다, 조화롭다는 화(和)(harmony)라는 글자는 입[구(口)]에 벼[화(禾)]를 가져가는 것이라는 설명을 답니다. 다시 말해 밥을 같이 먹어야 조화롭게 살 수 있다는 얘기를 하지요. 이 얘기를 진전시키면서(보통은 ‘이바구’라고 합니다만) 벼 화(禾)의 다음 단계는 쌀 미(米), 그 다음 단계는 밥 식(食)이라는 식으로 진도를 나가죠. 그리고 식구(食口)는 밥을 같이 먹었을 때 진정한 식구가 된다는 말을 합니다. 여기서 잠시 서양으로 방향을 틀어 친구(親舊)는 영어로 뭐라고 하는지 묻습니다. 보통은 friend라고 답하죠. 독일말로는 Freund라고 하는데, 비슷하죠. 왜냐하면 앵글로색슨의 고유어이기 때문에 형태가 비슷한 거죠.(여기서 이런 질문을 덧붙입니다. 영어의 경우 고유어가 몇 퍼센트나 될까? 물론 답은 없죠. 보통 20%가 안 된다고 하고, 80%는 그리스어나 라틴어에서 수입한 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영어 공부를 할 때는 어원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하죠. 그리고 우리말은 어떠냐고 묻습니다. 역시 답은 없죠. 그러면 우리말도 마찬가지라고 얘기해줍니다. 거의 한자어에서 수입한 말들이라고요. 그래서 한자 공부를 해야 한다고 설득을 합니다.) 그럼 friend와 비슷한[보통은 ‘같은’이라고 얘기하는데 고종석 작가에 따르면 세상에 같은 뜻을 가진 단어는 없답니다. 그래서 뜻이 비슷한 유의어(類義語)만이 있을 뿐이랍니다.] 단어는 무언지 묻는데 이 질문에 답하는 학생은 거의 없습니다. 답은 companion입니다. 이 단어가 의미심장한데 친구가 되려면 빵(panion)을 같이 나누어야(com) 진정한 친구가 된다는 것을 뜻한다고 얘기해 줍니다. 그래서 결론은 인권은 다른 게 아니다, 밥(빵)을 같이 나누는 게 인권이라고 정리합니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마찬가지라고 하면서요.

이 이치를 잘 밝혀주는 영화가 <고령화 가족>입니다. 저는 영화를 보지 못해 남 얘기를 베껴볼게요.: 영화가 시작하면 박해일의 처량한 신세를 보여주면서……마침내 결심한 듯 목을 매 자살하려고 한다. 그때 전화벨이 울린다. 엄마다. “아들, 밥은 잘 먹고 사는 거야? 이따 집에 좀 와. 닭죽 끓여놨으니까 먹고 가. 와라아, 올 거지? 너 닭죽 좋아하잖아.” 박해일은 결국 자살을 포기하고, 닭죽을 먹으러 간다.……그저 닭죽을 먹기 위해 자살을 포기했을까? 아마도 밥(영화에서는 닭죽이라고 표현했지만)에 담긴 따스한 정서 덕분이었을 거다. ‘밥 한 끼 먹고 가라’는 말 너머로 전해지는 연대와 공감과 사랑과 애정의 온도 같은 거 말이다.[송주홍, 《노가다 칸타빌레》(시대의창, 2021), 267-268쪽]

하기야 진리와 가치는 고정된 게 아닙니다. 세월이 흐르면 옛 사상과 이념은 저물고 새로운 시대가 오는 것이지요. 부모와 아이들로 구성된 전통적인 가족 개념은 이제는 추억의 장(場)으로 기억될 뿐일지도 모릅니다. 2020년 통계로는 1인 가족이 30%를 넘겨 가족 형태 중 가장 비중이 높은 시대가 왔습니다. 이런 시기에는 혼밥, 혼술이 주류로 자리 잡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그리고 모든 일에는 좋고 나쁜 양면이 있는 법이니 ‘아, 옛날이여!’를 부를 수만은 없을 겁니다.
그래도 우리가 지켜야 할 것들은 있겠지요. 지구가 멸망하기 전까지는 이 세상을 잘 가꾸어야 한다는 것, 그 속에서 겸손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 서로 서로가 부대끼며 같이 살아야 한다는 것, 이 정도는 지켜가야 하지 않을까요? 누구 말마따나 우리 후손들을 위해 지금보다는 좋은 세상을 넘겨줘야 하겠지요.

냉장고는 비웁시다!
혼밥의 시대, 그래도 같이 먹으려고는 합시다!
적어도 남의 밥을 빼앗지는 맙시다!

이상, 독거(獨居)청년의 넋두리였습니다.

※ 오문완 님은 울산대학교 법학과 교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