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1-29 16:18
[143호] 여는 글 - 배려와 차별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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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와 차별

송헤림


최근 여러 기관 근무자들 대상으로 ‘다양한 가족 이해’ 교육을 다녔습니다. 일단 제 질문은 이렇습니다. “다양한 가족에 속한 가족은 어떤 가족일까요?” “다양한 가정이라고 하면, 어떤 가족이 생각날까요?” 아마 대부분은 한부모 가족, 조손 가족, 다문화 가족...등등을 떠올릴 겁니다.
그런데 말이죠, 그럼 맞벌이 가족은? 핵가족, 3세대 가족, 1인 가구, 입양 가족 등등은? 그럼 이렇게 물어보죠. 다양한 가족에 속하지 않은 가족은 어떤 가족일까요? 예를 들어 입양 가족을 다양한 가족이라고 하면, 비입양 가족은 다양한 가족이 아닐까요? 그럼 비입양 가족에 속한 그 수많은 형태의 가족들은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다양하지 않은 가족? 뭐라고 불러야 할지도 잘 모르겠군요 어쨌든.

그래서, 제 질문이 틀린 겁니다. 당초부터 다양한 가족은 어떤 특정 형태의 가족일 리가 없겠고요, 그래서 다양한 가족은 어쩌면 이 세상 모든 가족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교육 자료를 준비하면서 *튜브를 찾아보니 여러 사례가 나오더군요. 일단, 다문화가족 자녀의 이야기입니다. 외국인처럼 생겼지만, 한국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인데요. 사람들이 자꾸 자기한테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어본답니다. 어떤 아이는, 영어를 잘 하는데, 사람들이 2개 국어(한국말과 영어)를 잘 한다고 놀란답니다. 한국 아이니까 한국말을 잘 하는 것이고, 영어는 열심히 공부해서 잘 하는 것인데 말이죠. 어떤 아이는 김치와 떡볶이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그 매운 것을 잘 먹냐고 신기해한답니다. 한국 사람이 김치와 떡볶이 잘 먹는 것이 뭐 그리 신기한 일인지?
한부모 가족에게, 엄마 혹은 아빠가 없어도 엄마아빠 있는 가족 못지않게 아이를 잘 기를 수 있어요, 라고 격려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막상 한부모 가족은 그런 비교가 불편할 수도 있겠고요. 최근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데요, 1인 가구 연구를 하면서 인터뷰를 하면 그분들이 자주 듣는 말, 그런데 듣기 싫어하는 말이 있습니다. 곧 결혼할 거잖아요, 원해서 이렇게 사는 것은 아니잖아요, 언젠가 가족과 함께 살 거죠, 계속 이렇게 살 거는 아니죠……. 뭐 이런 말이랍니다. 1인 가구를 뭔가 미완성의, 임시적인, 스쳐 지나가는 그런 삶의 형태로 보는 편견일 수도 있겠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실 의도를 갖고 누군가를 차별하지는 않습니다. 나름 힘을 내라고 하는 말인데, 그것이 때로 불필요한 배려와 친절, 배제, 일방적 도움이 되고, 그래서 차별이 되기도 할 겁니다. 그래서 배려와 차별은, 말로는 쉽게 구별할 수 있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나름 그 기준이 애매하기도 하죠.

그래서 역지사지가 필요하겠지요, 상대방 입장에서 불편함이 없을지..우리가 인권이나 젠더 문제에 대한 감수성을 강조하듯, 이제는 가족의 다양성에 대한 감수성도 계속 높여가야 할 시점입니다.

그나저나 지난 3월, ‘그래도 꽃은 핀다’는 제목으로 제가 인연의 열린 글을 썼었는데요. 코로나로 우리의 일상이 변화했는데 그래도 봄은 오고 꽃은 핀다는 그런 내용이었지요. 그때는 설마 여름에는 끝나겠지, 혹시 가을 겨울까지? 라고 생각했는데, 코로나는 여전히 있고 우리는 어느새 겨울 앞에 서 있습니다. 생각보다 길어지니 우울하기도 하고, 그 끝을 확실히 모르니 더욱 불안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혼자가 아니니 힘을 내야지요.
서로를 위로하기 위해, 가을의 끝에 어울리는 노랫말로 마무리를 해야겠습니다.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은 쉬 사라지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인내심 이타심 희망, 이런 것들이 오래도록 남아있어야 할 아름다운 것들이겠지요. 누구라도 홀로 설 수 없는 인생의 진리 앞에, 사계절을 코로나와 함께 보냈고 지금도 안간힘 쓰며 버티고 어쩌면 계속 견뎌야 할 나 당신 우리, 모두를 힘차게 응원합니다!

가을 우체국 앞에서 (윤도현 노래/김현성 작사)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노오란 은행잎들이 바람에 날려가고
지나는 사람들 같이 저 멀리 가는걸 보네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한여름 소나기 쏟아져도 굳세게 버틴 꽃들과
지난겨울 눈보라에도 우뚝 서 있는 나무들같이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저 홀로 설 수 있을까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우연한 생각에 빠져 날 저물도록 몰랐네



※ 송혜림 님은 울산대학교 교수이며, 울산인권운동연대 이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