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6-01 18:03
[137호] 인권포커스 - 재난 취약계층의 현실과 울산사회서비스원 설립의 필요성
 글쓴이 : 사무국
조회 : 3,953  
재난 취약계층의 현실과
울산사회서비스원 설립의 필요성

이승진



지난 3월 제주도 서귀포시 한 공공묘지 인근 차량에서 발달장애인과 그의 어머니가 숨진 채 발견됐다. 코로나19 사태로 개학이 연기된 후 돌봄 교육을 신청한 직후였다. 발달장애인의 경우 코로나19와 같은 재난 상황에서는 좀 더 섬세한 지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책이 없던 상태에서 두 사람이 감내해야 할 시간들이 어땠을까? 공공묘지를 장소로 선택한 이유가 뭘까? 그동안 누적된 정서적 고립감이나 사회적 박탈감을 고려했을 때 발달장애인 가정의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를 경험하면서 복지 사각지대 해소와 사회안전망 구축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된다. 언제까지 사후약방문 땜질 정책에 기대야 할까?

코로나19 사태 이후 대부분의 장애인 복지기관과 시설들은 지역 내 감염확산 방지를 위해 임시휴관에 들어갔다. 그럼에도 발달장애인 돌봄 공백을 줄이기 위한 대책은 전무했다. 혼자 거리를 배회하는 사례도 심심찮게 나타났다. 필자 역시 버스를 타고 시내에 나와 연락한 친구를 다시 귀가시키기도 했다. 귀가시키기 위해 만난 가족들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모든 책임이 가족에게 전가되고 있다는 사실을 표정과 행색에서 읽을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발달장애인을 돌보던 사람이 자가격리자나 확진자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 이에 대한 응답이 없다. 사회적 재난 상황을 대비하기 위한 돌봄서비스 전달체계가 부족한 것이다

다행히 울산시의 경우 장애인복지과에서 울산발달장애인지원센터의 제안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후 울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1억 원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했다. 발달장애인 긴급 돌봄을 위한 사업비다. 코로나19로 인해 주간보호센터와 장애인복지관 등 이용시설이 임시 휴관한 상황을 고려한 조치다. 울산 내 8개 장애인 활동지원기관과 협력해서 한시적이나마 1일 3시간의 활동지원서비스를 추가로 지원했다, 일단 급한 불부터 끄고 시간을 번 것이다. 긴급한 재난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의 역할을 보여준 사례다.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앞서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사례를 들었지만 장애인들은 각각의 유형에 따라 그에 맞는 지원 방안들이 제공돼야 한다.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에게 똑같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 이는 재난 상황을 인식하기 어려운 치매 노인과 한국어를 알지 못하는 이주노동자, 이주여성, 외국인 관광객도 마찬가지다. 이런 사람들이 재난 상황 즉시 대처할 수 있도록 시청각적 정보 제공을 해야 하지만 우리나라 정부와 울산시를 포함한 대부분의 지자체에는 그런 체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은 비교적 방역 관련 정보가 신속하게 제공되는 나라지만 대다수의 이주민들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다. 정부와 지자체가 발표하는 코로나19 관련 정보 대부분이 영어와 중국어 정도만 제공된다. 필자가 간사로 활동했던 외국인노동자센터(요즘은 차별과 배제의 용어라는 이유로 ‘외국인’이 아니라 ‘이주민’이라고 표기한다) 운영 경험상 노동을 목적으로 입국한 이주민들은 영어와 중국어 생활권 국가뿐만 아니라 캄보디아와 네팔, 베트남, 인도네시아, 타이, 미얀마, 스리랑카, 러시아 등 다양한 국적과 언어, 종교, 문화체계를 가진 사람들이다.

그나마 통역 서비스를 제공하던 상담센터 방문이 불가능해지면서 정보 확인이 더 어려워졌다. 정부와 지자체 홈페이지에도 이런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체계가 전무하다. 정보를 접할 수 없다는 사실은 방역 체계의 허점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는 이른바 불법체류자라고 불리는 미등록체류자도 코로나19 검진과 치료를 받을 수 있게 조치했다. 통상 보건의료기관은 미등록체류자가 방문할 경우 법무부에 통보해야 하지만 현재 한시적으로 면제하고 있다.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당사자들이 이를 인지하고 있는지 여부는 알 길이 없다. 재난 정보에 관한 정보 전달체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다양한 상황에 놓인 당사자와 가족들에게 적절한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이를 총괄하기 위한 전문기관이 필요하다. 담당부서 공무원들에게만 맡겨놓을 일이 아니다. 전담인력 숫자도 태부족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이상 그 일만 붙잡고 있을 수도 없다. 순환보직에 따라 담당자가 자주 교체되면서 현장에 대한 이해도 역시 낮을 수밖에 없다. 공무원만 타박해서 될 문제가 아니다. 시장이 결단해야 할 문제다.

현재 울산광역시 미래비전위원회 시민복지증진분과에서 검토되고, 시에서 추진 중인 울산사회서비스원 설립에 속도를 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단순히 노인요양과 영유아보육,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를 넘어 재난 상황에서의 사회서비스 제공을 위한 전달체계 구축과 관련 사안을 연구하고 미리 대처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 이후 이 과정도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일이 벌어지고 사회적 불만과 갈등이 불거져야 부랴부랴 수습하는 모습. 이제 울산에서 사라지길 기대한다. 울산사회서비스원 설립에 속도를 내야 할 시점이다.


※ 이 승진 님은 울산공익법률원 설립 준비위원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