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3-30 14:38
[135호] 여는 글 - 그래도 꽃은 핀다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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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꽃은 핀다

송혜림



신종 바이러스로 인해 우리 모두의 일상이 달라져, 겨울이 가는지 봄이 오는지도 모른 채 정신없이 살다가, 며칠 전 출근길에 활짝 핀 매화꽃을 보았습니다. 그제서야 둘러보니 목련도 보이고, 개나리도 또 진달래의 모습도 보이더군요.

이종부 시인이 ‘봄’을 일컬어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가까스로 두 팔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라고 불렀던, 그 마음이 문득 조금은 알아지기도 했네요.

이 봄, 어느새 내 옆에 있는데,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바뀐 일상 속에 두렵고 불안한 하루하루를 살고 있나 봅니다. 사람들에게, 이 상황이 지나가면 뭘 제일 하고 싶은지 물었더니, 삼겹살에 소주 한 잔, 가족?친구들과 오순도순 수다 떨기, 그냥 마구 돌아다니기, 산책, 여행, 뚝배기 된장찌개 하나 놓고 같이 퍼먹기, 마스크 안 쓰고 손도 대충 씻기...까지 나옵니다. 이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우리가 이토록 평범하고 소박한 일을 꿈꾸며 살고 있다니...새삼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길을 걷다 마스크를 쓰고 놀이터에 있는 아이를 보면 마음이 짠합니다. 아이들에게 놀이는 본능인데 얼마나 갑갑할까. 약국 앞에 줄 서 계신 어르신들을 봐도 또 슬퍼집니다. 그중에 여든 넘은 우리 엄마 또 친구의 아빠가 구부정 서 계신 듯싶어서. 길가에 문 닫은 식당을 보면 또 가슴이 덜컥 내려앉습니다. 누군가는, 나와 가족의 생존을 책임지는 그 일터에서 열심히 일해 자녀 등록금 내고 대출금 갚고 쌀 사고, 힘겹지만 그래도 미래도 꿈꾸며 살았을 텐데, 이를 어찌하나 싶습니다. 그래도 이 와중에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며, 내 것도 모자라지만 그래도 더 필요한 분들과 무엇이라도 나누는 이야기를 들으면, 또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제가 작가나 감독이라면, 언젠가 시간이 많이 지난 후, 드라마나 영화 혹은 다큐멘터리로 ‘응답하라 2020’을 만들어야겠다 생각이 듭니다. 수십 년 후에는 어른일 터이지만 지금은 아이인 초등학생들은, 집 밖에서 친구들과 놀지도 못하고, 삼시 세끼 집에서 먹고, 학교도 못 가던 그해 3월을 이야기할 겁니다. 등교도 못 하는 이 와중에 학원은 보내야 하나 마나 고민하던 부모님의 모습도 생각나겠지요.

20학번 대학 새내기들은 그때쯤 중장년이 되어, 나 때는 말이야 신입생 OT도 MT도 입학식도 환영회도 없고 재택수업 하면서 3월을 보냈단 말이지...어쩌구 하면서 또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겠지요. 여러 가지 제도와 환경적 여건 때문에 도무지 안착시킬 수 없던 유연근무제와 재택근무가 순식간에 확산되는 신기함, 직장인들이 재택근무하며 겪었던 웃기고도 서글픈 에피소드도 등장할 겁니다.

그래도 또 우리에게는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국민에게 주권이 있는 나라, 약자와 함께 라서 느리게 가도 투정하지 않는 공동체, 그런 꿈을 함께 꾸고, 모이니까 진짜 힘이 되더라는 좋은 추억과 자산이 있습니다. 이번에도 우리는, 가족의 걱정과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현장으로 가면서도 ‘나는 괜찮습니다’라고 오히려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분들의 감동적인 미소, 의료진들의 붕대투혼과 콧등투혼, 평범한 시민들의 자발적 격리, 햄버거에만 어울릴 줄 알았는데 진단의 수단으로 등장한 드라이브 스루 그리고 이제는 일상에 자리 잡은 사회적 거리두기와 같은 멋진 경험을 공유하게 되었으니, 지금 이 상황도 뭔가 새로운 역사로 기억될 듯싶습니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는, 이미 힘들었는데 더 힘들어진 약자들,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다는 자영업자와 비정규직 근로자들...여러 문제들을 국가와 국민이 함께 힘을 합쳐 풀어내야겠지요.

아무튼, 일상은 소박하고 사소하고 익숙해서 그 소중함을 모르지만, 또 그렇게 일상은 어제오늘내일로 끈질기게 이어지는 겁니다. 기다리지 않아도 봄은 오고 꽃은 피듯이 말이지요. 그러니,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이타적으로 살다 보면, 우리 모두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 되어, 다시 일상에서 반갑게 만나는 날이 올 겁니다. 그렇게, 응답하라 2020의 끝은 기필코 해피엔딩이기를 바래봅니다.


※ 송혜림 님은 울산대학교 교수이며, 울산인권운동연대 이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