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2-28 13:44
[134호] 여는 글 - 3년을 견뎌낸 당신에게
 글쓴이 : 사무국
조회 : 70  
3년을 견뎌낸 당신에게

이선이



정월대보름을 며칠 앞둔 날, 익숙한 번호로 문자가 왔습니다. “금요일에 안 바쁘시면 찰밥이랑 나물 가지러 오세요.” 신이 나서 얼른 답장을 보냅니다. “바빠도 갈거에요!”
이 분이 아니었다면 정월대보름인 줄도 몰랐을 겁니다. 아니, 알았다 해도 별다를 것 없는 날이었을 겁니다. 오로지 ‘귀찮다’는 이유로 생일에 미역국도 안 차리고, 설날에 떡국도 안 끓이는 불량 주부니까요. 금요일 퇴근길에 그 분 집으로 갔더니, 찰밥에 나물 다섯 가지, 여기에 동태탕과 감자샐러드까지 가득가득 안겨주십니다. 제가 차에서 내리지도 못하게 하고, 짐만 얼른 싣고선 문을 닫고 가버립니다. 고맙다, 잘 먹겠다는 말도 겨우 했습니다. 집에 와서 한상을 차려냈더니, 아이들이 묻습니다. “엄마, 또 그분이 주셨어?”, “응, 그 분이 주셨어.”

우리 가족의 우렁각시, 이 분을 처음 만난 것은 2017년 5월입니다. 남편이 갑작스럽게 자살로 세상을 떠나셨는데, 산재를 신청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보통 업무상 이유로 우울증 치료를 받다가 자살하시는 경우에는 산재로 인정이 됩니다. 그런데 고인은 치료를 받으신 적도 없고, 유서 한 장 남기지 않으셨습니다. 왜 산재라고 생각하시냐고 여쭈어봤더니 공장에서 30년 가까이 일을 하면서 허리가 아파서 고생을 많이 했고, 돌아가시기 직전에는 무릎도 아파서 병원을 다녔다고 하셨습니다. 이 분은 상담 내내 계속 우셨고, 저는 어찌해야 하나 당혹스럽기만 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산재로 인정받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도저히 말이 나오지가 않았습니다. 이 분은 아이도 없었습니다. 평생을 전업 주부로 남편만 보고 사신 분인데 그 남편이 황망히 떠나버린 것입니다. 그런 분에게 “어차피 안될 것 같으니 포기하시는게 좋겠다.”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었습니다. 설령 결과가 안 좋더라도, 하는 데까지는 해봐야 이 분 마음에 한이 남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힘들겠지만 일단 한 번 해보자고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로 약 6개월 동안, 2주에 한 번 꼴로 이 분을 만났습니다. 약속시간이 되면 미리 눈물 닦을 티슈를 꺼내놓았습니다. 고인의 생전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가 없다보니, 이 분의 기억이 가장 주된 근거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분은 남편과 있었던 일, 남편이 했던 말, 그때 남편의 표정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기록에 옮겼고, 그때마다 눈물을 한 바가지씩 흘렸습니다. 건강보험급여내역을 확인했더니 약 10년 동안 목, 허리, 발목, 손목 등의 통증으로 병원 치료를 받은 것이 170번이나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분은 그 170번을 항상 남편과 동행하였습니다. 그만큼 살뜰히 남편을 보살폈는데, 딱 한 번 혼자 보낸 날, 그 날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처음에는 “어차피 안 되겠지.” 했던 마음이,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산재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로 바뀌더니, 나중에는 “어떻게든 되게 하고 싶다.”로 바뀌었습니다. 서울질병판정위원회의 심의회의에 다녀와서는, 불승인 처분을 받아도 그 분을 설득해서 소송까지 꼭 가야겠다고 결심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2018. 7. 26. 아침 출근길에 “산재 승인 되었네요.”라는 근로복지공단 담당자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저도 모르게 “정말요??”라고 되물었습니다. 곧바로 전화를 해서 “산재 승인됐어요! 라고 했더니, 또 한참을 우시더군요. 한참 후에 마음이 좀 진정이 되었는지 정말 감사하다면서, 앞으로 3년 동안 설, 추석을 꼭 챙기겠다고 저에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 와중에 그런 약속을 한다는 것도 재미있고, ”왜 하필 3년이지?“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뒤로 정말로 이 분은 명절을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었습니다. 명절뿐만 아니라 음식 솜씨가 좋은 분이라 나들이 철에는 김밥을, 김장철에는 김치를, 방학 때는 애들 간식을, 여기에 이번처럼 때마다 절기음식까지, 정말 친정언니보다 더 알뜰살뜰 챙겨주십니다. 늘 제가 얻어먹는 처지인데도 이 분은 항상 저에게 감사하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하지만 솔직히 제가 더 감사한 일이지요. 여러 음식도 너무 감사하지만, 이 분 덕분에, 제가 지금 당장 노무사 일을 그만두더라도, 내가 노무사를 하면서 이런 보람은 있었지 싶은 사건을 갖게 된 것이니까요.

얼마 전 이 분의 남편이 세상을 떠나신 지 만 3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이 분은 웃음이 많아졌고, 목소리도 밝아졌습니다. 이번에 정월대보름 음식을 나누면서는 “3년 만에 처음으로 보름 음식을 했다.”고도 하셨습니다. 문득 돌아보니, 3년 동안 참 잘 견디어 오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음식을 나누는 것도 이 분 나름으로는 남편을 추억하는 시간이었을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남편을 보내드리는 과정이었겠지요. 앞으로의 3년은 지금보다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편안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앞으로도 종종 만나서 맛있는 것도 먹고, 수다도 떨고 해요, 우리. (3년이 지났다고 이제 저를 안보시지는 않겠지요?)


※ 이선이 님은 공인노무사이며, 울산인권운동연대 부설 인권교육센터 소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