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9-12-27 17:37
[132호] 인권포커스 - 선거에서 혐오표현의 해악과 대응의 필요성
 글쓴이 : 사무국
조회 : 4,239  
선거에서 혐오표현의 해악과 대응의 필요성

울산차별금지법제정연대


일본에서의 혐한시위대가 활개를 치게 된 것은 아베 총리의 우경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일본에서 혐오표현에 맞서 싸워온 간바라 하지메 변호사는 일본 대 혐오표현이 만연하게 된 것은 정부와 정치가들의 책임이라고 단언한다.
미국의 경우 역시 트럼프 집권이후 그동안 잠잠했던 미국 내 혐오세력이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했다. 실제로 트럼프 당선이후 증오범죄가 증가했고, 2017년 8월에는 버지니아 주 샬러츠빌에서 백인 우월주의 세력들의 집회가 열렸고, 3명이 숨지고 30여명이 부상을 입는 참사가 발생했다.

1. 한국의 혐오정치의 시작

유럽과 미국에서 극우 포퓰리스트들의 소위 ‘혐오장사’로 정치적 입지를 확대해온 방식처럼, 한국에서도 2016년 이후 혐오정치가 점점 가시화되고 있다.

[2016년 총선에 출마한 기독자유당]
“동성애가 에이즈를 유발한다”, “할랄단지를 조성하면 대한민국이 테러 위험국이 된다”

[2017년 대선 후보 홍준표]
“설거지를 (남자가)어떻게... 하늘이 정해놨는데 여자가 하는 일을 남자한테
시키면 안 된다” “(성소수자라는 용어가 있다는 질문에) 난 거 싫어요” “동
성애 반대한다고 하셨죠” “동성애 때문에 에이즈가 창궐한다” “동성애는
하늘의 뜻에 반하니 때문에 법적으로 금지가 아니라 엄벌을 해야한다”

[2018년 서울시장 후보 김문수]
“동성애는 담배보다 유해하다”, “동성애로 에이즈가 늘어난다”
공약: “퀴어문화축제금지”, “서울 학생인권조례에서 성소수자 조항 삭제”

홍준표의 2017년 대선에서의 혐오선동은 제1야당의 대선 후보였다는 점에서 더 심각한 사례로 언급될 수 있다. 온 국민이 시청하고 있는 대선토론회에서 동성애에 대한 의견을 상대 후보에게 물었던 장면은 한국에서도 본격적으로 혐오정치가 시작될 수 있음을 알리는 장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2018년 서울시장 김문수 후보가 선거에서 성소수자 혐오를 들고 나왔다. 한국에서도 혐오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혐오정치’가 가시화된 것이다.

2019년 6월 19일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외국인은 그동안 우리나라에 기여해온 바가 없기 때문에 똑같이 임금수준을 유지해줘야 한다는 건 공정하지 않다”는 발언은 제1야당의 대표가 직접 나서서 혐오를 조장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2. 혐오정치의 내용과 선거시기 혐오표현

혐오의 전형적인 모습 중에 하나가 ‘우리’와 ‘저들’을 분리/배제하여, 저들이 무임승차하고 있다거나 우리가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설파하거나 가만히 있다가는 우리가 당한다며 공포심을 자극하는 방식이다.
포퓰리즘 정치인들은 여기에서 우리와 저들 중 하나를 택할 것을 강요한다. 동성애에 대해 찬성과 반대 둘 중 하나로 답할 것을 강요하거나, 국민이 먼저냐 난민이 먼저냐고 묻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선거 시기나 정치인의 혐오표현에는 몇 가지 특수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먼저, 선거 시기에 혐오표현 문제가 더 격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선거는 권력을 잡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자리이고, 더욱 선동적이고 폭력적인 형태의 혐오표현이 난무할 가능성이 있다.

두 번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에서는 정치적 표현이 가장 자유롭게 오가고 경쟁되어야 하며, 되도록 다양한 정치적 주장들이 유권자들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선거에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선거의 정치적 의미는 크게 훼손된다.

세 번째, 선거 시기에는 혐오가 표출되는 형태를 다음과 같이 분류해볼 수 있다. 가장 전형적인 경우로 후보자나 선거운동본부가 특정 소수자 집단에 대해 혐오발언을 하는 것이다. 소수자 집단을 공격하고 반대 급부로 더 많은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는 득표 전략의 일환으로 발화되는 것일 테다.

또 다른 형태의 문제는 ‘후보자 개인’을 표적으로 삼는 혐오표현이다. 대개는 소수자 집단에 속하는 후보자를 공격하는 형태를 취한다. 이것은 후보자 개인에 대한 공격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 후보자가 속한 집단에 대한 차별적 발언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예컨대, 이주자 출신 국회의원 후보를 이주자 출신이라는 이유로 비난하는 것은 그 후보를 표적으로 삼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이주자 집단 전체에 대한 차별을 조장/선동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3. 선거 시기 혐오표현 규제방안

? 증오선동 형사범죄화

그렇다면 선거 시기 혐오표현을 규제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은 무엇이 있을까? 첫 번째 방안으로 혐오표현을 형사범죄화하는 방법이 있다. 선거나 정치인에 특화된 규제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형사규범을 만들어 정치인들에게도 적용하는 것이다.
선거 시기에도 당연히 적용된다. 운용과정에서 정치인들에게 더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도 있다. 실제로 혐오표현이 형사범죄화되어 있는 유럽 국가들의 경우 정치인의 발언이 그 영향력이 크다는 이유에서 더 쉽게 기소되는 경향이 있기도 하다. 다만 모든 유형의 혐오표현을 다 형사범죄화하는 것보다는 증오선동에 해당하는 혐오표현만 형사범죄화하는 것이 현실적인 선택지가 될 것이다.

? 선거법과 선관위에 의한 규제

앞서 언급했듯이 선거 시기 혐오표현 문제는 후보자에 대한 혐오표현과 후보자에 의한 혐오표현으로 구분해볼 수 있다. 먼저 전자의 경우는 후보자에 대한 혐오표현이다. 이것은 후보자를 허위사실이나 부당한 비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공직선거법 제82조의 4(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선거운동)과 제110조(후보자 등의 비방금지), 제251조(후보자비방죄) 들을 통해 규제가능하다.

후보자를 허위사실이나 비방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면, 혐오로부터 보호될 필요는 없는 것일까? 만약 후보자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이주자 출신이라는 이유로 비방 받는다면, 그건 매우 중대한 문제가 아닐수 없다. 물론 현행 선거법에 의해서도 후보자 비방에 해당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긴 하지만, 좀 더 분명히 규정할 필요는 있다. 그런 취지에서 지역 비하·모욕을 별도로 처벌하는 법안이 제출된 바 있다.

제110조의2(지역 등 비하 언동 금지) 누구든지 정당(정당의 구성원을 포함한다)·후보자(후보자가 되려는 사람을 포함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후보자의 가족 또는 선거사무관계자의 선거, 그 밖의 정치활동과 관련하여 특정 지역 또는 특정 지역 사람을 비하·모욕하여서는 아니된다.
이런 식으로 후보자에 대한 혐오표현을 별도로 금지하는 규정을 두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 선관위에 의한 조치

선거 시기 혐오표현에 관한 또 다른 규제방안으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역할을 들 수 있다. 금지나 처벌 이외의 다른 비규제적(non-regulatory) 수단을 통해 선관위가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에는 20대 총선에서 기독자유당의 차별과 혐오선동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한 사례가 있었고, 20대 총선에서 (재)대한이슬람교가 기독자유당 공보물과 관련하여 선관위와 면담한 사례, 2018년 지방선거에서 대전성소수자인권모임 솔롱고스가 대전 선관위에 의견서를 제출한 사례, ‘지방선거혐오대응 전국 네트워크‘가 김문수 후보를 인권위에 고발한 사례 등이 있었다.

하지만 선관위나 인권위는 근거 법률의 미비 등을 들어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진 않았다. 하지만 현행법상 선관위 등 국가기구가 혐오 문제 해결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실제로 국제선거제도연맹의 제안을 보면, 현행법 내에서도 선관위가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실제로 지난 지방선거 때 대구경북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서는 선관위에 후보자들의 혐오표현 대응을 요청했고, ’대구광역시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대구 지역 각 후보자에게 대구경북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요구서를 첨부하면서, “사회적 약자/소수자에 대한 부당한 혐오/차별 발언 및 행동을 자제하여 이번 지방선거가 깨끗하고 아름다운 민주주의 축제의 장이 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선관위가 기계적 중립의 환상을 버리고, 혐오 문제에 대처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만 있다면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대구선관위의 사례는 그 한 예를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이 글은 지난 12월 9일 ‘울산인권운동연대 부설 인권연구소’가 주최한 < 2919 4차인권포럼_혐오없는 선거 어떻게 만들 것인가> 집담회 발표문 중 일부를 게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