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4-25 15:37
[53호] 인권포커스 - 직업병에 골병 든 대한민국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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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병에 골병 든 대한민국

최민식 l 상임대표



삼성공화국이란 소리를 자주 듣게 됩니다. 무한 권력를 휘두르는 이건희 삼성를 단죄해야 되는 이유는 일일이 거론조차 힘들 만큼 많습니다. 해고자 송수근과 삼성일반노조 김성환위원장, 김용철변호사, 떡값검사와 노회찬, 반올림 등 삼성에 맞서 싸우는 많지 않은 사람들이 얼마나 고군분투하고 있는 지 잘 압니다. 늘 함께한다고 해왔지만 돌이켜 보면 옆 사람 밖에 되지 못한 듯합니다.

울주군 삼남면 가천리에 있는 삼성SDI는 한때 만 명이 넘는 노동자가 일하는 공장이었습니다. 수년에 걸친 구조조정으로 이제 2천명 남직 남아있다고 합니다. 구조조정에 맞서 지역단체들과 연대해서 열심히 싸워 왔지만, 이제껏 무소불위 삼성에 몸과 마음에 상처만 남은 체 주저앉아 분노할 힘마저 잃어버린 그들을 만납니다. 그 사람들 중 택시운전기사로, 택배기사로, 썰렁한 식당 주인으로, 술집에서, 길가다가 마주치고 이런저런 기회로 어쩌다 만나게 되면 그저 죄송하고 마음이 먹먹해 집니다.
며칠 전 23년간 불산과 유기용제 등에 노출된 체 일 해오다 작년 급성골수성백혈병 에 걸린 여병운씨를 만났습니다. 2004년 입사하여 브라운관 세척작업등을 해오다 급성림프성백혈병으로 사망한 박진혁(28세)씨 유족을 만났습니다. 3년간 브라운관작업에 투입되는 형광체 조합업무를 하다 비인강암으로 투병 중인 김모씨를 만났습니다. 그동안 가천리 삼성SDI 울산공장 앞에서 일인 시위를 벌이며 삼성이 책임 묻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이외에도 울산산추련과 반올림에 현장제보를 통해 1공장에서 암으로 투병중이거나 사망한 노동자가 확인되고 있는 사람만 15명이 더 있습니다. 확인되지 않는 건은 물론이고 2공장 3공장 등 공장별로 동일한 피해자들이 더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뇌질환과 신부전증으로 제보된 노동자도 10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삼성SDI 울산공장 직업성 암 피해자 제보를 지역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진행합니다. 산재신청을 하고 산재인정투쟁과 진상규명투쟁을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중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노동자가 가장 많습니다. ‘일하다 보면 죽을 수 도 있지-’하는 사회인식이 깔려 있습니다. 왜? 우리나라 노동자는 목숨을 걸고 일을 해야 할까요? 삼성과 같은 자본이 노동을 노예화했기 때문입니다. 정치와 사법 행정 언론까지 삼성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실의 반영입니다.
고용노동부는 직업병 인정기준을 확대하는 내용 등을 담은 근로기준법과 산재보험법 시행령 개정안을 2월 입법예고 했습니다. ‘직업성 암 발암물질과 표적 암 종류 확대’와 ‘직업병 인정기준 확대’ 그리고 직업병 산재 신청의 접근성을 강화하기 위한 직업병 인정기준의 체계 변경이 주요 내용입니다. 50년만의 개정이라 시대변화만 담아도 많은 개선이 되겠지요. 하지만 직업병으로 산재인정 투쟁에 나섰던 수많은 노동자와 가족의 고통과 절망은 물론이고 직업병인줄도 모르고 병마와 싸우는 사람들, 일하다가 다쳐도 쫓겨날 까 산재 신청도 못하는 노동자들에게 얼마나 힘이 되어줄 수 있을지 믿음이 가질 않습니다.
이처럼 걱정이 앞서는 것은 사용자에 징벌적 책임이 전제되지 않는 한 자본은 결코 탐욕의 본질을 스스로 내려놓지 않는다는 것 때문입니다. 산업재해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예방과 구제 시스템구축이 시급함에도 이에 대한 계획 또한 없습니다. 그래서 ‘인정기준의 개정이 실질적인 산재승인의 확대’로 나타날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삼성전자계열의 백혈병 암 등에 대한 산재인정과 집단발병에 대한 명백한 규명이 그 시발점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사회의 직업병과 산업재해에 대한 시각과 인식 또한 바뀌어야 합니다. 일하다 다치고 병을 얻거나 죽는 것은 어쩔 수없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관심과 역할이 더더욱 요구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