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9-09-30 15:28
[129호] 이달의 인권도서-『 아픔이 길이 되려면 』- 김승섭 저 / 동아시아 2017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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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길이 되려면

-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

김승섭 저 / 동아시아 2017 / 정리 배미란


“인권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공동체의 수준은 한 사회에서 모든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고요.”


# 말하지 못한 상처, 기억하는 몸

- 당신은 거미를 본 적이 있나요?
p.70 ~ 72 : 건강은 공동체의 책임이다


병원에 찾아오는 개개인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병원의 임상진료 과정에서는 환자 개개인의 몸에 새겨진 사회구조적 원인을, 현상 너머에서 작동하는 정치·경제적 구조와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미국 매사추세스 지역에서 금연하지 못하는 건설노동자도, 남아프리카 공화국 콰줄루나탈 시골 지역에서 AIDS로 사망한 여성도, 동유럽의 IMF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이행하던 나라에서 결핵에 걸린 어린이도, 개개인만을 바라본다면 특정 질환을 가진 환자일 뿐이니까요.
그러나 한 걸음 뒤에서 바라보면 이들을 아프게 했던 ‘원인의 원인’이 보입니다. 그 원인은 개인의 것이 아닙니다. 위험한 작업장을 방치했던 일터가 금연률을 낮췄고, HIV 치료약 공급을 전적으로 민간보험에 맡겨둔 지역사회가 AIDS 사망률을 높였고, 경제위기 속에서 공공보건의료 영역의 투자를 줄이기로 한 국가의 결정이 결핵 사망률을 증가시켰습니다.
공동체는 그 구성원들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책임을 지니고 있습니다. 건강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추구하기 위한 기본 요건이기 때문이지요. 건강은 인권을 지켜내기 위한, 정치·경제적인 기회를 보장받기 위한 조건입니다. 건강해야 공부할 수 있고 투표할 수 있고 일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으니까요.

# 질병 권하는 일터, 함께 수선하려면

- 해고노동자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p. 98
그렇다면 미국이나 스페인처럼 실업이 자살 위험을 증가시키는 나라에서 국가가 얼마만큼의 돈을 더 투자하면, 실업이 자살로 이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요?
OECD의 데이터를 이용한 분석에서, 1인당 100달러를 ‘적극적 노동시장 프로그램’에 추가적으로 투자하면 실업률 1퍼센트 증가에 따른 자살률의 증가를 0.4퍼센트 낮출 수 있다고 보고합니다.

p. 101
「쌍용차 문제는 재난의 문제다. 인간이 만든 해고가 인간 삶을 부수는 극단의 형태로 드러난 정치적 사건이다. 그러나 이러한 재난이 6년 동안 지속되는 와중에 국가는 해고자와 가족이 다시 설 수 있는 안전망을 제공해주지 못했고 쌍용자동차 관련 노동자와 가족 28명은 죽음으로 이 재난의 사회적 의미를 알려주었다...... 노동자들이 해고로 인한 고통을 온전히 감내하도록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국가와 정책입안의 책무이자 역할이다.」

# 끝과 시작, 슬픔이 길이 되려면

- 재난은 기록되어야 한다
p. 165 ~167 : 참사를 연구하고 기록해야 하는 이유

한국사회에는 그동안 여러 참사가 있었습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1999년 씨랜드 화재 참사,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그리고 2014년 세월호 참사까지요. 저는 세월호 생존 학생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기 전, 한국에서 발생했던 여러 참사들에서 살아남은 이들에 대한 기록을 찾아봤습니다. 그런데 놀라울 만큼 기록이라 할 만한 게 없었어요. 간혹 발견되는 신문기사 말고는 그 참사로부터 살아남은 이들이 감당해야 했던 시간에 대해 알 길이 없었습니다..... 아픔이 기록되지 않았으니 대책이 있을 리도 없었겠지요.

# 우리는 연결될수록 건강한 존재들

- 당신의 공동체는 안녕하신지요
p. 288 ~ 290 : 로세토에선 왜 심장병 발생이 이리 적은가

「로세토 마을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사람들이 삶을 즐기는 방식이었다. 그들의 삶은 즐거웠고, 활기가 넘쳤으며 꾸밈이 없었다. 부유한 사람들도 이웃의 가난한 사람들과 비슷하게 옷을 입고 비슷하게 행동했다. 로세토 마을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그 공동체는 계층이 없는 소박한 사회였으며, 따뜻하고 아주 친절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신뢰하였으며 서로를 도와주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있었지만, 진정한 가난은 없었다.」

로세토 이야기는 어떤 공동체에서 우리가 건강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개인이 맞닥뜨린 위기에 함께 대응하는 공동체, 타인의 슬픔에 깊게 공감하고 행동하는 공동체의 힘이 얼마나 거대하고 또 중요한지에 대해서요.
당신에게도 그리고 저 자신에게도 묻고 싶습니다. 당신과 나, 우리의 공동체는
안녕하신지요?

※ 배미란 님은 울산대 법학과 교수이며, 인권연구소 연구위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