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9-08-27 13:48
[128호] 이달의 인권도서-『 우리 몸이 세계라면』- 김승섭 저 / 동아시아 2018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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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이 세계라면

- 분투하고 경합하며 전복되는 우리 몸을 둘러싼 지식의 사회사

김승섭 저 / 동아시아 2018 / 정리 김영해



# 들어가며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몸은 다양한 관점이 각축하는 전장입니다. 저는 그 관점들이 모두 동등한 수준의 합리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권력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더 많은 눈길을 주고, 권위에 굴하지 않고 비판적 질문을 던지는, 여러 가설과 경쟁하며 검증을 통해 살아남은 관점들이 그렇지 못한 관점들보다 우리에게 더 많은 의미를 준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당장은 사소해 보일지도 모르는 그 차이를 분별해내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차이가 먼 훗날 돌이킬 수 없는 거대한 간격이 되는 경우를 종종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 권력 - 어떤 지식이 생산 되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인 제약회사가 약을 개발했을 때 거둬들일 수 있는 이윤은, 어떤 약을 개발할지와 그 약을 만드는 데 필요한 지식을 생산할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됩니다. 어떤 지식은 생산되고, 어떤 지식은 생산되지 않습니다. 오늘날 지식은 명백히 선별적으로 생산되고 선별적으로 유통됩니다.
저소득 국가의 질병에 대해 이윤이 남지 않는다는 이유로 신약 개발을 하지 않는 민간 제약회사의 입장도 앞서 이야기한 사례와는 결이 다르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능한 일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전 세계적으로 계속해서 반복될 때, 생겨나는 불평등입니다. 권력과 자본을 가진 나라에 필요한 신약만이 개발되고, 그 나라에 거주하는 사람들만이 최고의 의료서비스를 받게 되고, 그 나라에서 자라나는 어린이만이 과학자로서 꿈을 펼칠 수 있는 상황 말이지요. 지식과 지식인 생산의 불평등입니다.

# 기록 - 우리 몸이 세계라면

2014년 리처드 레이트 교수 분석결과 소득 불평등이 심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들일수록, 상대방이 나를 무시할 수 있다는 불안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
소득불평등 정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타인이 나를 이용할 것이라는 의심을 더 많이 하고 상대방이 더 신뢰하지 않을 뿐 아니라, 살인으로 인한 사망률 역시 높은 것으로 나타남. 또한 소득불평등 정도가 심각한 나라일수록 학교 폭력의 가해자나 피해자가 될 위험이 모두 놓게 나타남. 즉 심각한 소득불평등으로 인해 사람들 사이의 신뢰 수준이 떨어지고 상대방이 나를 무시할까봐 전전긍긍하는 사회적 환경이 청소년들의 삶에도 영향을 준 것이다.

어떤 사회에서도 소수자에 대한 인권 감수성이 그냥 주어진 역사는 없었습니다.
다수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사회의 많은 부분이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존재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 세계의 질서가 누군가를 상처 입힐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때리는 줄 모르고 던진 돌도 맞는 사람 입장에서 아프기는 매한가지이지요. 그래서 다수자 입장에서는 과도하다고 생각되는 문제 제기가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소수자 입장에서 최소한의 자존을 지키기 위한, 절박한 생존의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지요. 혹시라도 왜 그리 불편한 긴장을 계속 감당해야 하느냐고 묻는 다수자인 한국인이 있다면, 한반도만 벗어나면 한국인은 전 세계 모든 곳에서 소수자라는 사실을 함께 기억했으면 합니다.

# 시작 - 질문되어야 하는 것들

1973년 연구 종료 후 터스키기 실험에 참가한 연구자들은 어차피 죽어가는 사람들이었고, 오늘날 매독이 조기 사망을 초래하고 심장질환과 정신질환을 유발한다는 사실과 새로운 흑인 매독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하며, 자신들이 진행했던 연구가 비윤리적인 인종차별 행위였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터스키기 연구가 폭로되고 미국사회는 이 연구가 죽어가는 흑인을 관찰한 잔혹한 인종차별 행동이었다고 비판 함.
인지하지 못했다고 죄가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들 대다수는 백인 과학자였습니다. 치료받지 못한 흑인 입장에서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고, 그런 잔혹한 행위를 과학 연구라는 이름으로 허용한 세상에 대해 질문하지 않았습니다.

# 상식 - 지식인들의 전쟁터

박사과정 학생 때, 학위를 받고 나면 어떤 주제를 연구할지 미국인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제게는 ‘당신은 어떤 연구자가 되고 싶은가?’라고 묻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망설임 끝에 “한국에서 사회적 약자의 건강을 연구하는 사람의 수는 적고, 필요한 연구는 너무나 많다. 이곳에서 배운 방법론으로 한국사회의 절박하고 중요한 문제를 연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단기적인 성과만을 주목하는 오늘날 대학에서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사회적 약자의 몸과 질병에 대한 연구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부조리한 사회로 상처받은 사람들의 고통을 과학의 언어로 세상에 내놓는 것은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