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9-06-27 17:43
[126호] 시선 하나 - 인권위원회와 함께하는 현장 워크숍
 글쓴이 : 사무국
조회 : 4,843  

과거의 비극과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는 용기「다크투어」
인권위원회와 함께하는 현장 워크숍

김가연


주로 밤에 일이 잘 되는 스타일로 늦게 잠들고 최대한 늦게 일어나는 내게 새벽 5시 반 호출은 가혹한 것이었다. ‘동트기도 전 출발이라니..!’라며 걱정한 것이 무색하게 벌써 날이 밝아 있는 새벽에 무안해하며 집합장소로 갔다. (차 태워주신 김창원님과 함께 거주하시는 분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소풍가기 전 설레는 마음으로 커피까지 사들고 차에 오르니 이것저것 (칫솔, 샌드위치, 과일, 물, 음료 소책자) 많이도 주신다. 연대의 재정이 나아지면 이런 서비스도 할 날이 있지 않겠냐며 김영해 활동가와 함께 사진도 찍어둔다. 맨 뒤에 앉은 우리는 어쨌든 여행가는 기분이라며 키득거리는데 문득 앞을 보니 피곤해 보이는 관계자들의 뒤통수가 짠하다.

떠들다가 졸다가 좀이 쑤실 때쯤마다 휴게소도 들려가며 한참을 달려가니 어느새 서울.
‘과연 저 좁은 골목에 이 커다란 차가 들어갈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절로 드는 다소 생뚱맞은 골목을 기사님의 화려한 운전 솜씨로 들어가니 검은 벽돌의 건물이 햇살을 받으며 당당하게도 서 있다. 어떤 역사의 현장인지 막연하게나마 알고 본 그 건물의 당당함이 나는 참으로 뻔뻔해 보여 속이 상한다. 차에서 내려 잠시 대기하니 이어폰과 송신기를 나누어준다. ‘여긴 한국인데 이게 왜 필요함?’ 눈짓으로 아는 체를 했건만 해설사 님의 등장과 동시에 감탄사를 뱉는다. 해설사 님의 말을 듣기 위해 옹기종기 모여 귀를 쫑긋 세우지 않아도 이어폰을 통해 매우 잘 들리는 것이다. 설명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조금 느린 걸음으로 내가 눈이 가는 곳을 더 보며 갈 수 있으니 신세계를 만난 듯하다.

1층과 외관.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 이야기, 옛 건물의 사진과 ‘인권센터’로 변모하기까지의 시간들에 대해 듣고 본다. 당시 천재 건축가로 불렸다던 건축가 김수근의 이야기가 새롭게 다가온다. 해설사 님은 그가 이 건물의 용도를 알고 지었을 것이라는 뉘앙스로 이야기하시고 나는 그 생각에 동의하는 사이사이 그가 이 건물의 설계를 거부했다면 이 역사는 일어나지 않았을까 하는 헛헛한 생각을 한다.
밖으로 나가 고문하는 틈틈이 나와 운동을 했다던 테니스장과 평범하기 그지없는 조경으로 위장된 마당과 지하철의 소음을 이용해 고문으로 인한 소음을 막고자 역과 평행하게 설계되어 진 건물을 본다.

평범으로 점철된 일상의 나른함과 삶과 죽음, 그리고 공포.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그 두 경계가 너무나도 얕아 소름이 돋는다.

건물의 뒤편으로 가기 위해 다시 앞마당 입구로 나오자 단 한 번도 움직인 적 없는 것 같은 크고 육중해 보이는 검은 철문이 보인다. 철문을 지나 나선형 계단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나는 이렇게 상상해 본다. ‘눈을 가리고 어디인지도 모르는 곳으로 끌려 온 누군가는 이 문이 열리는 소리에 탱크를 연상했고 공포심은 극대화되었으리라. 그 공포를 온전히 느끼기도 전에 건물 뒤편 원형계단으로 들어서 차이고 넘어지며 앞으로, 앞으로 시간의 수렁으로 끌려들어 갔을 것이다.’ 정확히는 체감해 보려 애썼다. 원형계단을 오르며 나는 깨닫는다. 그 공포를 상상해 낼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내가 상상해 낼 수 있는 크기의 공포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다만 서글픔으로 그 시간을 느낀다.
길게 늘어선 복도와 같은 색 같은 크기의 문, 칠성판을 사용하기위한 큰 방, 누군가에게는 신보다 더 두려운 존재로 군림하며 갖가지 방법으로 누군가를, 누군가의 영혼을 죽이는 일을 하고 퇴근 이후에는 살가운 아들, 아버지, 남편, 이웃의 얼굴로 평범하게 살았을 사람들.
그리고 그 두렵고 아픈 역사의 현장을 둘러보고 나와 ‘돼지소리 립싱크’를 들으며 그래서 오늘의 점심이 소고기인지 돼지고기인지를 궁금해 하는 내 모습에서 평범함 뒤에 숨어 언제든 나올 준비를 하고 있는 악의 모습을 스치듯 본다. 존엄이 두려움을 전제로 해야 하는 이유이다.
상상과는 다른 뷔페식을 먹고 걸어서 국가인권위원회로 향한다. TV로만 보던, 역사의 현장과 함께 살아 숨 쉬던 명동성당이건만 포토존에서 사진 한 장 달랑 건지고 서둘러 걸음을 재촉한다. 정책적 질문과 함께 시작된 국가인권위원회 방문 프로그램은 인권도서관에 대한 사서분의 애정과 방문 프로그램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며 진행되었다. 인권위원회에서 제작한 [봉구는 배달 중]의 내용을 노인의 정보 접근권에 묶는 시도가 새롭게 다가온다. 정보에 다가갈 수 있게 마련된 다양한 도구들에 대한 설명과 함께 실제 작동하는 모습도 본다. 신기하다. 보편화 되어 있지 않다는 이야기일 것이고 관심을 두고 찾아보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인권이 ‘일상’이 되는 날이 올까? 어두운 역사의 현장을 찾고 기억하고 반성하며 사유하는 일이 ‘그 날’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이번 기행을 통한 <마주함>은 무심함을 가장한 방관과 나와는 다른 ‘타인의 문제’로 쉽사리 밀어 두기 쉬운 연대의 가치와 힘을 떠올리게 했다. 이러한 마주함 들이 쌓여 인권이 일상이 되는 그날을 그려 본다.


※ 김가연 님은 울산인권운동연대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