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9-06-09 09:08
[125호] 시선 둘 - 제주사람, 난민을 만나다.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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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사람, 난민을 만나다.


# 예멘 내전 이해


홍해와 아덴만을 품은 아라비아 해를 사이에 위치한 예멘은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을 잇는 교통요충지다. 이러한 지리적 특징으로 예멘은 고대부터 교역중심지로서의 번영을 이루기도 하였으나 동시에 무수한 침략과 전쟁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1차세계대전에서 투르크가 패전한 후 북예멘은 1962년 예멘아랍공화국으로, 영국이 통치하던 남예멘은 1970년에 예멘민주인민공화국으로 각각 독립을 선포한 후 국경문제 등으로 여러차례 충돌을 일으키다 1989년 하나의 국가로 통일한다는 합의에 이르고, 다음해인 1990년 5월 22일 예멘공화국이 탄생된다.

초대대통령으로 북예멘의 살레가 대통령으로 선출된 후, 1994년 정부요직분배등의 문제로 전면적인 내전이 발생하나, 군사적 우위에 있던 북예멘이 일방적 승리로 살레의 장기집권이 시작된다. 2010~2011년에 걸친 아랍권 민주화 운동으로 살레가 물러나면서 잠시 평화가 오는 듯 했으나, 2015년 이후 북부는 시아파 후티반군이, 남부는 수니파와 연결된 정부군이 장악한 가운데 내전은 심화되어 왔다.

예멘내전은 수니파와 시아파의 이슬람 종파간의 패권갈등 이외에 중동의 패권을 다투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대리전 성격과, 아랍 내에서의 미국과 러시아의 세력 확장이라는 국제적 모습까지 다층적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문제다.

장기간에 걸친 내전으로 인해 예멘은 현재 인구의 3/4에 해당하는 2,200만 명이 원조와 보호를 필요로 하고 있다. 또한 난민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2017년 10월 기준 오만에 51,000명, 소말리아 40,044명, 사우디아라비아 39,880명, 지부티 37,428명, 에티오피아 14,602명, 수단 7,398명, 말레이시아 2,830명의 예멘인들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출처: Yemen Regional Refugee and Migrant Response Plan, http://data.unhcr.org/yemen/regional.php, 2017년 10월 말 기준). UN사무총장 안토니오 구테후스는 예멘 전쟁을 ‘2018년 최악의 인도주의적 위기’라고 말한 바 있다.

권력관계로 인한 국내의 갈등, 종교 정파 간 갈등에 이웃나라의 개입, 그리고 지역패권을 염두에 둔 열강의 입김 등... 예멘의 상황에 1950년 한국전쟁이 겹쳐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 난민, 제주로

2017년 12월 말레이시아 쿠알라품프르와 제주를 잇는 직항 항공기 노선이 신설되면서 내전을 피해 말레이시아로 와 있던 예멘사람들이 무사증 국가인 한국의 제주도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2016년과 2017년에 49명이었던 제주에서의 예멘인 난민신청자가 6개월 만에 549명으로 급증하면서 예멘난민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된다.

정부는 2018년 4월말 기준 제주를 떠나 육지로 간 사람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예멘사람들에게 출도제한 조치를 취한다. 하지만 정부의 난민정책은 지방정부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매뉴얼이 전혀 없는 상태였으며, 도지사 선거기간까지 겹치면서 제주지방정부는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없는 행정공백상태가 된다.

제주에 들어온 예멘 사람들은 자구책으로 생존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당장 일용직 노동을 구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가지고 있던 돈 마저 떨어지면서, 공원, 놀이터 등에서 노숙을 해야 했고, 시내를 다닐때는 삼삼오오 모여 다니게 된다. 뉴스들은 이러한 상황을 심각한 논조로 보도하고, 어느날 갑자기 낯선 문화권의 사람들을 맞이한 사람들은 당황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강제징집을 피해 온 성인 남성이라는 점은 아이와 여성을 불안케 하는 존재로 부각되었고, 무슬림에 대한 편견(테러리스트, 여성학대 등)에 힘입은 가짜뉴스가 생산되면서 불안은 혐오와 겹쳐지면서 급속히 대중의 정서속으로 파고들었다.

# 반대의 목소리들

2018년 5월 31일 제주에서는 “무비자 폐지와 난민법 개정을 위한 대책 촉구 집회”라는 집회가 열렸다. 오프라인에서 진행된 첫 난민반대 집회였다. 바른나라세우기국민운동, 나라사랑학부모회 등 30여개의 단체가 모여 “제주도난민대책도민연대”란 이름으로 난민반대집회를 열고, 난민에 대한 반대 여론을 이끌어 간다. 2018년 6월 청화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제주도 불법난민신청 문제에 따른 난민법, 무사증 입국, 난민신청허가 폐지/개선 청원합니다.”라는 청원글이 올라오고, 70만명 넘게 참여하면서 여론은 가시화된다. 이에 발맞춰 정치권에서도 난민법을 폐지하자는 주장까지 나오기 시작한다.

# 누군가를 만날 수밖에 없다.

난민반대여론이 본토로 확산되면서 불안감과 반대의 목소리가 확산되어 가는 와중에도, 다른 한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예멘 사람들 곁에 있었다. 제주도내 종교, 인권단체, 정당 등 33개 단체들이 모여 “제주난민인권을 위한 범도민 위원회”를 결성하고, 긴급2구호, 정책개선, 교육, 취업지원 등의 활동을 펼쳤다.
제주 국제학교 선생님 등은 “Yemen Refugees in Jeju(제주에 온 예멘난민들)”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열어 제주지역 사람들과 예멘 사람들을 연결시켜, 노숙이 가능한 공간을 알아봐주고 텐트와 생필품을 전달해주고, 병원 위치를 알려주었다. 일부 제주도민들은 자신의 집 공간을 열어두기도 하였으며, 난민 환영 메시지를 이야기하는 시간과 공간도 곳곳에서 펼쳐진다. 유례없는 난민에 대한 지역사회의 적극적인 연대와 지원의 모습이 제주에서 일어난다.

“반갑수다. 어디서 와수과? 하영 속아시쿠다 예!. 혼번 잘 존뎌내봅써.”
(반갑습니다.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고생 많으셨습니다. 잘 견뎌내시기 바랍니다.)


4.3을 겪으며 전쟁의 아픔을 잘 알고 있는 제주도 사람들이 처음 접하는 예멘사람들은 전쟁을 피해 살기위해 험난한 먼 길을 돌아온 사람들이었다. 정서적 공감이 가는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메인뉴스에서 연일 보도되는 불안한 시선들과 가짜뉴스들은 점차 제주도민들 속으로 파고들었다.

“재네 범죄자들 아니냐? 거긴 맨날 사람 죽이고, 여자들 강간헌덴. 무섭다게. 확 가비시민 조키여!” (저 사람들 범죄자들 아닌가? 그곳에서 매일같이 살인, 강간이 발생한다는데. 무섭다. 빨리 떠났으면 좋겠다.)

학력, 종교, 노동능력, 문화, 음식…….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있지만 그들은 전쟁을 피해, 살기위해 자신이 살고 있던 지역을 떠나온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저 같이 어울려 살면 족한 사람들이다. 끊임없이 누군가와 만나는 제주에…….
사람이 온 것이다.


※ 위 글은 제20회 대학생인권강좌에서 제주평화인권연구소 ‘왓’ 신강협 대표의 강연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