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2-20 14:59
[52호] 회원글 - 자연, 인간, 생명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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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인간, 생명


오문완 l 울산인권운동연대 공동대표



거창하게 제목을 내걸었지만 거창한 얘기는 아닙니다. 짧은 미국생활을 정리하면서 오리건 주라는 곳을 이렇게 정의해봄 직하다는 생각에 붙여본 제목일 뿐입니다. 길든 짧든 미국에서 살아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 자연에 대한 예찬을 합니다.
특히 처음 밟은 미국땅을 지상낙원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요, 심지어는 아이오와 주처럼 중부 지방을 다녀온 사람들도 그곳이 제일 좋다고 합니다. 미국의 동부나 서부에서 살아본 사람들한테는 이상하게 들리는 얘기입니다만.

그런데 이곳 오리건 주는 자연의 축복이 충만한 곳이 분명합니다. 이건 미국 사람들도 인정하는 점입니다. 저도 아이비의 하나인 코넬대학이 있는 뉴욕주 이타카가 지상낙원인 줄 알았는데 이곳에 와보니 더한 곳이 있더군요. 여행을 좋아하는 저는 이 땅을 꽤나 자세히 살핀 셈인데요, 산과 바다, 들과 강, 사막과 호수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이라고 이해하면 그 그림이 그려질 것 같습니다. 제주도엘 가면 세상의 온갖 형상이 모여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그 제주도가 섬이 아닌, 한국보다 더 큰 땅덩이로 널려 있다고 보면 좋겠습니다. 한라산을 닮은 후드산이라는 곳이 있고 제주바닷가의 현무암 바위들을 닮은 바닷가나 용암천(Sea of Lava) 등이 그러합니다. 곳곳에 제 나름의 특색을 지닌 주립공원은 휴식과 위안을 주는데요 이곳 수도인 Salem 근처에 있는 Sliver Falls도 그런 곳입니다. 이 공원에는 10개의 크고 작은 폭포가 있어 Ten Falls라고도 부릅니다. 오리건 주에서는 가장 큰 공원인데 인터넷 등에서 설명문을 찾아보면 이 공원이 캘리포니아 주에 있었다면 요세미티 이상의 각광을 받았을 것이라고 씌여 있습니다. 그만큼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런 풍광을 자아낸 데에는 그만큼의 숨은 노력이 있었습니다.

이곳의 폭포는 한국과는 달리 폭포를 앞쪽에서만 구경하는 게 아니라 폭포 뒤로 길을 내서 쏟아지는 물줄기를 가슴깊이 느낄 수 있게 해줍니다. 그리고 그 일은 신의 작품이 아니라 인간의 작품이라는 것이구요. 또 엄청난 크기와 규모를 뽐내는 나무들의 바다 속을 헤매게 되는데요 이 역시 사람들의 작품입니다. 오리건 주는 지금도 임업이 중요한 산업 중 하나인데 개발 초기에는 엄청난 벌목으로 산림이 황폐했답니다. 그걸 복구해내는 데 70년 이상이 걸린 셈이지요.

그 핵심에는 시민보전단(Civil Conservation Corps: CCC)이 있었습니다. 워낙 많은 나무를 심어 Tree Army라고도 부릅니다. CCC는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루스벨트 대통령이 고안한 단체입니다. 루스벨트는 엄청난 부호의 아들로 그 자신의 농장을 가꾼 경험을 뉴욕주지사 시절 뉴욕주에서 실험한 후 전국 규모로 확대한 것이 CCC입니다. 우리로 치자면 공공근로사업이라고 보면 될 것 같은데 그 기획이나 구상은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이지요. 오리건 주가 배출한 유일한 대통령인 후버가 망쳐놓은(물론 이 양반이 망쳤겠습니까만, 어쨌든 대공황 당시 대통령으로서의 책임을 벗어나기는 어렵겠지요) 미국 경제의 회생에 한 몫을 한 게 CCC입니다.

굶주리던 인간도 살리고 헐벗은 자연도 살리는 생명의 길을 제시한 위대한 대통령의 혜안, 감이 오시나요. 그래서 현명한 지도자가 중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