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12-29 14:27
[108호] 시선 셋 - 현정 즉 파사
 글쓴이 : 사무국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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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 즉 파사

최민식


천둥번개가 치고 비가 쏟아집니다. 한여름 소나기 모습 그대로입니다.
엊그제가 동지인데 웬일? 세상은 늘 그렇지만 지금을 사는 우리는 왠지 놀래야만 할 것 같습니다. 눈 내리는 겨울에 대한 예의인 양.

늘 이맘때면 우리나라 지성꾼들인 대학교수들이 우리 사회의 모습을 올해의 사자성어로 정리해 발표합니다.
2017년 올해는 '파사현정(破邪顯正)'입니다. 파사현정은 '그릇된 것을 깨뜨려 없애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뜻을 지난 말로 불교에서 나온 용어입니다. 파사와 현정을 나누어서 실천의 과정으로 삼기도하고, 파사즉현정(破邪卽顯正), 즉 파사 자체가 올바름을 드러내는 것인 현정이라는 뜻으로 삼아, 삿되고 그릇됨을 없애기 위한 실천이 곧 현정으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나의 주장은 없다. 다만 그대의 주장을 논파할 뿐!’이라는 용수의 『회쟁론(廻諍論, Vigrahavy?vartan?)』에 스며있는 비판주의적 입장의 영향이기도 합니다.
거짓과 탐욕, 불의와 부정이 판치는 세상을 바로 잡겠다는 강한 실천의지가 담겨 있는 ‘파사현정(破邪顯正)’은 내 젊음의 열정을 민주화 운동으로 내 몰던 힘의 원천이기도 했습니다. 이제 '파사현정(破邪顯正)'은 불교를 넘어 ‘그릇됨을 버리고 올바름을 행하는 것’이라는 일반적인 관용어로 자리 잡게 된 듯합니다.

파사현정의 사자성어를 추천한 영남대학교 철학과 최재목 교수는 “사회지도층, 엘리트 집단, 기득권층의 갑질, 그런 독점의 민낯이 드러났는가 하면 정치·경제·교육·법·역사·제도·문화·도덕, 그런 기획과 실천까지 장악해버렸고, 끼리끼리 몰아주고, 또 그런 배분의 방법과 룰과 도덕성, 심지어는 아름다운 이미지, 또 그런 세습까지 독점해버렸다. 그런 광신적 패거리들로 바깥에서는 세월호처럼 엉망진창으로 사회가 침몰하고 있다. 그릇된 것을 깨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적폐청산이라는 절대정신을 다르게 표현해본 것이 파사현정이다.”라고 말합니다.

추천한 또 한분인 최경봉 원광대 교수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시민들은 그릇된 것을 깨뜨리고 올바름을 구현한다는 마음으로 촛불을 들었고, 결국 정권교체를 통해 국정농단 세력이 어지럽힌 나라를 바르게 세울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사견과 사도가 정법을 누르고 세상에 횡행하는 일이 다시는 없기를, 그리고 적폐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파사현정’을 추천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적폐청산’과 맞닿아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적폐청산”은 ‘파사’입니다. 삿됨(邪)을 부수고(破)이지만 그 일이 만만하지도 단순하지도 쉽지도 않는 일이라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파사현정에서 삿됨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불교에서는 삿됨의 본래 의미는 잘못된 행위가 아니라 잘못된 견해, 즉 전도몽상(顚倒夢想)을 말합니다. 바르게 보지 못하고 뒤집어 보는 것, 이
시선 셋
것이 바로 삿됨이며 잘못된 행동으로 이어지는 근원이라는 말입니다. 부정과 부패 그리고 불의를 용납하지 않는 것과 잘못된 견해를 버리는 것, ‘현정’입니다.

‘군주민수(君舟民水)’ 지난해 선정됐던 사자성어입니다. '백성은 물이고 임금은 배이니, 강물의 힘으로 배를 뜨게 하지만 강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결국 새로운 배를 물에 띄웠으니 딱 맞는 말이 되었습니다. 올해의 ‘파사현정’과 절묘한 조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촛불 민심이 '군주민수'에서 '파사현정'을 이끌어 냈음을 보여줍니다. 촛불민심?

2017년 산다고 수고하셨습니다.

※ 최민식 님은 울산인권운동연대 前상임대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