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10-31 17:44
[106호] 여는 글 - “너, 동성애 지지자?”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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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동성애 지지자?”

한기양


“너는 빨갱이지?”
분단 이후 긴 세월 동안, 이 말은 대한민국을 얼어붙게 만드는 질문이었다. 자유와 평등, 인간의 존엄함 같은 소중한 가치는 이 질문 앞에 얼어붙었다. 그런데 이제 이 질문은 이렇게 바뀌었다.
“너는 동성애 지지자지?”

해방 후 친일세력이 반공으로 전환해 다시 우리 사회의 기득권을 거머쥔 것 같이 촛불혁명으로 위기에 빠진 적폐세력들은 이제 반(反)동성애를 이슈로 결집하고 있다. 이들은 대통령에게, 서울시장에게, 대법원장 후보에게 묻고 있다. 그리고 지금 수구세력이 기대고 있는 것은 바로 ‘보수적인’ 개신교이다. ‘이웃사랑’을 ‘하나님사랑’과 동일시했던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이 이 배제와 혐오의 낙인에 힘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지난여름, 동성애 신자들을 위한 목회를 펼쳐온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소속의 임모 목사에게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8개 교단이 “이단이 아님을 소명해보라”는 터무니없는 요구를 했다. 교단 안 밖으로는 임모 목사의 목회활동을 지지하는 성명도 있었지만, 정작 소속교단 내에서는 다수가 침묵했다.
왜였을까? 필자 역시 목회자로서 그 깊은 두려움을 잘 안다. 신도들이 줄어들지 않을까, 세상이 비난하지 않을까, 논란과 공격을 피해가고 싶다, 지난 날 빨갱이로 낙인 찍혀 회복할 수 없는 왕따로 몰렸던 것처럼 성소수자를 옹호하다가 함께 낙인이 찍히게 될까 하는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올해 개신교 각 교단의 총회는 일종의 동성애자 낙인찍기와 더불어 그들의 이웃되려는 사람까지 낙인찍어 퇴출시키자는 결의대회나 다름없었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물론 이 주제는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다. 나라의 문화나 종교적 신앙과 대치되는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겨울 우리가 추위를 무릅쓰고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선 것은 비단 박근혜라는 개인의 일탈뿐만이 아니었다. 지나온 독재와 권위주의 사슬의 적폐들을 청산하고 완전히 끊고자(斷) 하는 근본적인 이유였다. 도대체 “이게 나라냐?”라는 질문에는 이런 나라는 나라도 아니라는 근본적인 자기부정 위에 기초한다.

그런 가운데 보수적인 한국 개신교는 적폐세력의 동지나 다름없었다. 특히 대형교회나 자신들을 개신교 주류라고 자처하던 세력들이 더욱 그러하다. 이는 위기의식의 보편화로 이어졌고, 이에 대한 대표적인 출구전략의 주제로 ‘동성애’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이다.

동성애는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시대 배제정책의 희생물이었다. 1933년 국가사회주의, 일명 나치가 권력을 잡기 전까지 베를린은 동성애자들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국가사회주의 이데올로기는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건강한 민족만이 살아남는다는 우생학에 기반한 다윈주의에 입각한 아리안주의를 통해 아돌프 히틀러는 1935년부터 법적으로 동성애자를 법령을 통해 처벌하게 된다. 1934년 일명 ‘청소’라는 조처 이후에 게슈타포 비밀경찰이 동성애자 리스트를 작성했다. 1936년 하인리히 힘러 나치 수뇌는 동성애자에 대한 공식적인 선전포고를 한다. 1941년 히틀러는 동성애자들에 대한 사형 제도를 제정하고 비밀경찰들을 동원하여 색출하기 시작한다. 이미 그들에게는 ‘부적절한 생명’이라는 낙인이 1937년부터 찍혀 있었다. 일종의 블랙리스트였다. 히틀러는 동성애자의 행동을 ‘퇴폐적인’ 행태라 규정하고 동성애자를 건강한 독일제국의 걸림돌로 여겼다.

히틀러 시대 10만 명 이상의 동성애자들이 비밀경찰에 채포되었고, 그 중 5만 명 정도가 심판을 받아 정신병원 시설에 감치되거나, 상당수는 감옥에 영치되었다. 동성애자는 나치시절 집단수용소에 10,000~15,000명 정도 수용되어 그 중 53%가 생명을 잃었다고 추정한다.

1945년 이후 동독은 1968년 나치시절 제정된 동성애 관련 차별조항을 없애고, 1988년 이성애와 동성애의 동등성을 합법화한다. 1994년에야 비로소 통일독일은 형법조항에서 동성애 관련 범죄조항을 완전히 삭제하게 된다. 2002년에는 독일의회에서 나치 집권 아래 희생되었던 동성애자 희생자들에 대한 잘못된 죄를 고백한다. 2008년 5월 ‘국가사회주의에 희생된 동성애자들을 위한 기념비’가 베를린에 세워지기도 했다.

독일의 예를 장황하게 설명한 이유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오늘의 한국 개신교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종교개혁은 성서의 정신인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의 본질을 되찾자는 개혁운동이었다. 여기에 이웃은 약자임은 자명하다. 하지만 한국 개신교는 이러한 약자 리스트에서 ‘성적 소수자’를 제외하려는 우를 이번에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이는 전적으로 잘못된 결정이다. 심히 우려스러운 일이 현실화되었다. 마치 히틀러 시대에 나치에 저항하였던 이들이 새로운 신학운동과 고백교회 운동을 일으켰던 당시로 돌아가야 하는 것은 아닐지 자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제 우리 사회 역시 동성애 문제와 관련하여 성소수자에 관한 질문을 피할 수 없는 때가 되었다. 우리는 인권적 차원에서 깊이 있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야만 한다. 성소수자의 인권과 차별문제를 단순히 편 가르기나 이념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현실을 좌시할 수 없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며 다음 세대로 미뤄서는 안 될 ‘이미 닥쳐온 일’이 되고 말았다.

※ 한기양 님은 울산새생명교회 담임목사이며, 울산인권운동연대 이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