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10-31 16:55
[106호] 시선 하나 - 세상을 구하는 경기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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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구하는 경기

최진석


'1라운드 판정승. 세상을 구하는 2라운드 경기가 시작됐습니다.'
공론화위원회가 신고리 5, 6호기의 건설 재개를 권고한 지난 20일에 바뀐 한수원 노조원의 카카오톡 알림말입니다.
한수원 직원과 원전 건설로 인해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인근 주민들은 신고리 5, 6호기를 짓는 것만이 세상을 구하는 것이라고 믿을 겁니다. 신고리 5, 6호기의 건설이 중단되면 자신들의 경제적 손실은 눈덩이처럼 커질테니 따지고 보면 '세상을 구한다'는 말도 과언이 아닙니다.

공론화위원회의 권고안이 발표되던 날, 저는 한수원 새울원자력본부에서 취재를 하고 있었습니다. '건설 재개' 결론이 나자 한수원은 잔칫집 분위기였습니다. 노조는 새울원자력본부 앞에서 희망이 밴 목소리로 탈원전 정책마저 폐기하라고 외쳐댔습니다. 울주군청에서 방송을 통해 공론화위원회의 발표를 보던 원전 인근 주민들도 '건설 재개'라는 말을 듣자마자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습니다.

반면 환경단체는 세상이 발칵 뒤집힐만한 결정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신고리 5, 6호기 건설 중단을 중심으로 한 탈원전 정책은 문재인 정부의 핵심 공약이었지만 공론조사 과정에서 기대하던 것과 다른 결과가 나왔으니까요. 소식지를 받아드는 여러분들도 신고리 5, 6호기의 건설이 재개된다는 소식에 많이 실망하셨을 겁니다.

누군가에게는 세상이 뒤집히느냐 마느냐의 문제이지만 제 3자인 기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공론화위원회의 이번 결정은 엄청 흥미로웠습니다. 서로 의견이 다른 국민들이 한 장소에 모여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생각이 바뀌고 명확한 결론을 낸 적은 우리나라에서 전례가 없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사회적 결정을 할 때, 찬반 집단은 각자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서로의 입장만 외쳐댈 뿐이었습니다. 이번 공론화위원회에 참여한 평범한 사람들은 법안 하나 통과시키는데도 치고 박고 싸우는 국회의원들보다 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결과가 아쉬운 회원님들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시민단체에도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앞으로 사회적 문제에 대해 시민들이 직접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고 공유하는 숙의 민주주의가 우리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는 가능성을 봤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인권과 환경에 대해 직접 목소리를 낼 기회가 많아진다면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더 늘어나 시민단체가 활성화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니 회원님들도 더 좋은 날을 기대하며 기운내시기 바랍니다.

※ 최진석 님은 JCN울산중앙방송 기자이며, 울산인권운동연대 회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