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09-01 11:49
[104호] 편집후기 - 카타르시스 커뮤니케이션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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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시스 커뮤니케이션

편집위원


어스름한 새벽 사무실 문을 연다. 형광등 대신 컴퓨터와 프린트기를 켠다. 컴컴한 사무실에 모니터 빛과 프린트 소리만 있다. 명조체 글씨가 흰 A4 용지에 인쇄 된다. 서명 란에 휘갈겨 이름을 적는다. 종이를 3등분으로 접어 흰 봉투에 넣는다. 두툼한 봉투를 국장 키보드 사이에 꽂아 둔다. 모니터와 프린트기를 끈다. 다시 사무실 문을 잠근다. 새벽 택시를 잡는다. 집으로 돌아간다. 야호! 8월 21일, 나는 사직서를 냈다.

말했다. 짚는다. 제시한다. 주장한다. 목소리를 높인다. 사람은 자신의 생각이 옳다 여긴다. 한 쪽에선 기자회견을 열고 한 쪽에선 피켓시위를 한다. 그럴싸한 단어를 조합해 근거와 이유를 섞어 주장을 꺼낸다. 군형법 제 92조 6도, 신고리 5·6호기도, 그리고 내 사직서도. 왈왈. 한 줄로 요약 가능하다. ‘무지몽매한 자들아, 니들은 틀렸고 내 말이 맞다고.’

초등학생부터 TV토론까지. 우리는 자신의 주장을 타인에게 관철시키는 법을 배웠다. ‘내말이 맞아.’의 이상적인 발전 방향은 건전한 토론 문화다. 메인은, 사실적 근거와 타당한 이유로 일관적인 주장을 뱉을 것. 서브는, 타인의 주장도 받아들일 것. 소크라테스의 대화법, 토론할 때마다 자신의 무지를 인정해야 다양한 토론이 이뤄지고 타인을 통해 지식과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것. 민주주의의 바로미터는 사회의 토론 문화다.

토론 문화의 걸림돌은 ‘카타르시스 커뮤니케이션’이다. 가령 나는 A가 맞다 주장 했다. A에 동의하는 이들이 응원 하고 지지 한다. 타인과 토론 하며 공부 해보니 A가 아니라, C가 옳다는 것을 알았다. A를 주장해서 생긴 지지자들을 실망시킬 수 없다. 나는, 계속, A를, 주장한다. 카타르시스 커뮤니케이션,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고 지지를 결집하기 위해 쓰는 대화법이다.

사직서를 낸 지 4일이 지났다. 보조석에 앉아 보는 풍경은 예뻤다. 길가에 세워진 나무는 풍성했고 다리 위의 울산대교는 빛났다. 기상청은 33도 라는 데 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본래라면, 가로수를 보며 ‘세금을 어디다 쓰는 거냐.’, 울산대교를 보며 ‘왜 요금을 올리고 지X이야.’, 날씨를 타며 ‘현장 기자들은 더워 죽으란 거냐.’고 했을 테다.
편향된 사고를 지양하면서, 편향된 사고를 지향했다. 토론의 서브인 ‘타인의 주장도 받아들일 것.’은 기대하지 않는다. 우리는 내 말이 맞으니까. 우리가 맞아? 야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