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06-29 14:42
[102호] 시선 하나 - 인권평화기행을 다녀와서...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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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평화기행을 다녀와서...

윤경선


생각만 하면 울컥하고 화가 나고 안쓰럽고 미안한…….
세월호는 나에게 늘 그런 존재였다.
세월호 인양에 맞춰 또다시 다양한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꼭 한번 가봐야겠다는 의무감 같은 것이 내 마음 한 편에 자리 잡았다.
어느 날 문자로 ‘인권평화기행_3년의 기다림 팽목항 그리고 목포신항’이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그냥 가야 할 것 같았다. 팽목항에 가자는 말에 남편과 초등 5학년 아들은 별 반응(?) 없이 동의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처음 보는 회원들과 함께 마냥 기쁠 수 없는 팽목항 그 1박 2일 여행길에 올랐다.

누구는 대중교통을 이용한 가족여행은 같은 시선으로 창밖의 경치 바라보며 같은 이야기 꺼리를 찾을 수 있는 낭만의 기회라고 했다. 나도 그런 낭만을 기대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결혼 14년차, 모르는 남처럼 뚝 떨어져 앉아 약에 취한 듯 잠에 빠져 있는 남편을 보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렇게 현실을 직시하고 제법 긴 거리를 달려 도착한 그 길에서 팽목항을 만났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본 샛노란 리본이 바람에 하염없이 날리는 난간과 가족들의 오열과 슬픔으로 넘쳐났던 팽목항은 빛바랜 노란 리본과 잠잠한 바다, 조용하다 못해 스산한 곳으로 변해있었다. 3년. 그 긴 시간을 거슬러 팽목항을 천천히 걸었다.

‘따뜻한 밥해서 같이 먹고 싶다’
‘세월호 속에서 엄마를 얼마나 찾았을까요’
‘보고 싶고 만지고 싶습니다’
‘내 가족을 못 찾을까봐 무섭습니다’

끝없는 플랜카드를 보며 미안함과 죄스러움, 그리고 분노……. 여러 감정이 섞여 있던 나는 플랜카드 아래 고이 놓인 축구화에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들에게 축구화를 사주지 못해 한이 된 어머니가 미안함에 사 놓은 축구화가 주인 잃은 채 우두커니 자리를 지킨다. 요즘 노래 부르는 것에 빠져 있는 아들이 ‘천개의 바람이 되어’ 노래를 조용한 소리로 부른다. ‘나의 사진 앞에서 울지 마요. 나는 그곳에 없어요. 나는 잠들어 있지 않아요. ~~’

분향소에서 희생자 304명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에서야 세월호의 무게를 실감할 수 있다. 희생자 영정사진을 접하며(미수습자들의 영정사진은 노란 리본이 대신 한다) ‘그래, 304명이었지’ 하고 또 한 번 놀란다. 어쩌면 내 기억 저 편으로 밀어 놓고 싶은 건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한 후 다음날은 세월호가 있는 목포신항으로 갔다.

너무나 많은 사회적 비용이 든다. 오랜 시간이 걸린다. 기술적으로 매우 힘든 과정이다 등등의 이유로 미루었던 세월호는 안타깝고 처참한 모습으로 드러누워있다.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가족 단위의 방문객, 추모객이 많다.
세월호 관련 사진전, 너희를 담은 시간전_세월호 가족 꽃잎 편지 꽃마중_전시회, 가족들의 편지, 유가족의 영상을 둘러보았다.
많은 사람들의 염원이 담긴 노란 리본길을 걸으며 나는 아무도 보호해 주지 않는 나라,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나라가 나라인가 하고 분노가 인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하루하루 내가 아무것도 해 준 것이 없다는 사실이 미안하다. 내가 거기, 그 자리에 없었을 뿐,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 무섭다. 이런 모든 마음을 담아 오랫동안 기억하겠노라 노란 리본 위에 다짐해본다.

울산인권운동연대와 함께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가족은 팽목항에 갈 엄두를 못 내고 있었을 것 같다. 아프고 힘든 곳이어서 어쩌면 더 쉽지 않은 길 팽목항을 다녀 온 후 마음의 빚을 조금은 덜어 낸 것 같다. 세월호 인양 후 미수습자 수습과 진정한 진실이 밝혀지길 기원하며 글을 마친다.

※ 윤경선 님은 울산인권운동연대 회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