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04-27 16:14
[100호] 이달의 인권도서 - 『 미처 하지 못한 말』 류은숙 저 / 낮은산 2017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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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처 하지 못한 말』
이제 마주하는 인권의 문장들

류은숙 저 / 낮은산 2017 / 김영해 정리

# 책소개


이 책은 류은숙 작가가 인권의 문장으로 세계의 사건, 사례, 제도, 기구 등과 함께 한국사회에 몰아친 아리고 아린 사건들(용산 참사, 쌍용차 정 정리해고, 밀양 송전탑, 세월호 참사 등)을 기억하고 기록한 책이다.

# 서 문

‘미처 하지 못한 말’ 이 제목의 의미는 이중적이다.


그중 하나의 의미는 아쉬움이다.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미처 하지 못했다.’ 라는 의미다. 인간 존엄성을 억압하고 모욕하는 말이 날아들 때 피하지도 반격하지도 못할 때가 많다. 모진 말들의 홍수 사이로 나의 자존감을 확인해 줄 그 무엇에 기대고 싶을 때가 있다. 각자의 방언이 아니라 인간성에 대한 공통 감각을 확인하는 공통의 언어를 나누고 싶을 때가 있다. 언젠가가 아니라 늘 쓸 수 있어야 하는 말, 한마디로 존중을 표현해 줄 말을 인권의 문장들에서 찾아보았다. 존중의 언어를 발견할 때 더 이상 미처 하지 못한 말은 없을 테다.

다른 하나의 의미는 뉘우침이다. 모든 말에는 듣는 이가 있어야 한다. ‘미처 하지 못한 말’은 ‘미처 듣지 못한 말’이기도 하다. 왜 그토록 말해 왔는데, 때론 절규해 왔는데 듣지 못했고 듣지 않았는지 돌아보려 한다. 이 돌아봄의 동행이 이제야 마주하는 인권의 문장들이다. 이 마주함을 다른 말로 하면, 기억과 애도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스템은 숱한 피해자와 억울한 희생양을 낳고 있다. 애도는 그것에 단지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고통을 연결하고, 우리 삶을 짓누르는 폭력에 대항할 힘을 찾는 것이다.

# 책속으로

1월 : 공권력이 왜 용역 폭력을 비호하는가
- 민간 군사 기업과 경비 회사의 활동이 인권에 끼친 영향 -


2009년 1월 20일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 2가 남일당 건물 옥상에서 점거농성을 벌이던 세입 자와 전국철거민연합회 회원들, 경찰, 용역 직원들 사이에 충돌이 벌어져 발생한 화재로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 1명이 사망했다.

23쪽
대규모 정리해고, 직장폐쇄, 실업, 빈곤한 복지, 막무가내 국책 사업 등 공적인 무대에서 충분히 논의돼야 할 역할의 관념이 모호해졌다. 그런 가운데 사적 영역의 용역들이 끼어들어 폭력의 방식으로 정치를 하게 돼 버렸다.

24~25쪽
전 세계적으로 폭력이 민영화되면서 심각한 인권 침해의 요인으로 떠올랐다고 판단한 유엔은 2005년 ‘용병에 사용에 관한 실무 그룹’을 설립했다. 5명의 전문의원 중 프라도의 글 중 가난한 사람이 주로 선발되고, 용역회사는 엄청난 돈을 빠른 시간에 벌어들이며, 진짜 안전이나 평화가 아니라 돈벌이가 유일한 목적이라는 점, 하지만 용역들은 비인간적 처우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점 등은 마찬가지다.
이 워크숍에서 내린 인권활동가들이 내린 진단, 즉 공권력과 사적 폭력의 구분이 흐려지고 뒤얽힌다는 것, 어떤 식으로든 정부의 비호를 받는다는 것, 따라서 결과적으로는 정부가 폭력을 민영화·외주화하여 정부의 책임을 회피하고 일을 처리하려한다는 진단과 여러모로 맥이 닿아 있다.
“오늘 여기서 벌어진 일은 오늘 우리만 안다.”라는 이라크 용병(용역)들의 구호처럼 사적 용역 폭력은 인권 침해를 책임지지 않고 결과적으로 폭력 앞에 인권이 실종되리라는 경고가 아닐 수 없다. 회색지대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고리를 끊기 위한 한계선을 분명히 긋고 규제할 방법을 강구하는 일은 국내외를 따지지 않고 당장 해야 하는 일이다.


2월 : 사회권, 같이 만들어 함께 쓰는 우산
- 사회권에 관한 밴스 개념 -


2014년 2월, 송파구에 사는 세 모녀가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메모와 함께 전 재산인 현금 70만 원을 집세와 공과금으로 놔두고 스스로 생을 달리했다. 큰딸의 만성 질환과 어머니의 실직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벌어진 일이다.

41쪽
생존권 또는 생계권은 최소한의 생계를 뜻한다. 누리는 삶이라기보다는 부자?연명하는 생명의 수준일 수밖에 없다. 반면, 사회권은 존엄한 삶에 대한 존중을 표현하는 권리다.

겉보기에는 똑같은 밥 한 그릇일지라도 그것을 시혜로서 받는 것이 아니라 권리로서 존중받는다는 데 사회권의 의미가 있다. 복지를 국가의 선심성 혜택으로 보는 것과 시민이 응당 받아야 할 권리로 보는 것의 차이이다. 권리란 그 상대방에게 존중의 의무가 발생하는 정당한 요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