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03-31 15:20
[99호] 시선 둘 - 同行二人 - 시코쿠 헨로미치 ①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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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行二人 - 시코쿠 헨로미치 ①

박영철

언제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한겨레신문에서 봤던 것 같은 흐릿한 기억뿐.
‘일본에 시코쿠라는 섬이 있는데 그 섬에 88개의 사찰이 있고, 이를 순서대로 걸어서 도는데 약 45일 정도 걸린다. 시코쿠 순례길은 스페인의 카미노 데 산티아고 길과 함께 세계적인 성지순례길로 알려져 있다’는 정도의 소개였다. 사진과 함께 실린 기사를 보는 순간, 언젠가 꼭 가봐야겠다는 마음이 일기에 충분히 매력적이었단 기억이 남아있었다.

사실 나는 다른 활동가들에 비하면 시간 내어 여행을 자주 가는 편이다. 최근에는 뒤늦게 역마살이 끼었는지 텐트를 지고 무작정 집을 나서기도 했다. 지속가능한 활동을 위해서 쉼과 재충전이 필요하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걸고 틈틈이 여행을 즐겨왔다.

50이란 세월을 앞두고 고민했다. 오랜 기간 활동을 하면서 한번쯤은 일상을 내려놓고 천천히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다고. 아니 그런 명분으로 조금은 긴 여행을 떠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여튼 한번 움직인 마음은 결국 실행으로 옮겨졌다. D-day는 2017년 2월 1일. 7월 14일 예산절감을 위해 일찌감치 저가비행기부터 예약했다. 이제 남은 문제는 가족의 동의와 인권운동연대의 업무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작업이다.

내가 떠나야할 이유를 납득시키기 위해 틈만 나면 “이제 내 나이 50인데, 앞으로 어떻게 살지 쉬면서 고민도 했으면...”, “스페인은 조금 멀고 가까운 시코쿠 순례라도 꼭 한번은 가보고 싶은데...” 등등 계획과 관련한 얘기를 슬그머니 그러나 지속적으로 흘렸다.
매달 조금씩 돈도 모아나갔다. 근 한 달을 외지에서 보내야 하기에 재정문제도 고민스러운 부분이었다. 노력의 결과(?) 아내와 아이가 여행을 동의해주었다.(아내는 없는 살림이지만 집나가서 굶지는 말라며 흔쾌히 거액까지 보태주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준비되려는지 그동안 기미조차 없었던 인권운동연대의 새로운 상근자도 11월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떠나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이 서서히 완비되어 가고 있었다.
걷는 거라면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또한 명 있다. 지난여름 성당의 지인과 동해안으로 걷기여행을 계획했다 실패한 오문완 공동대표다. 그때부터였는지는 불명확하지만 시코쿠 순례 계획을 얘기하던 중 가능하면 함께 가시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다만, 한 달 정도의 긴 시간을 내기가 그리 쉽지 않은지라 출발 전까지도 함께 갈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였다.
여튼 2017년은 다가왔고, 출발을 위한 구체적인 준비작업에 돌입하였다. 관련 책들과 인터넷을 통해서 <시코쿠 순례>에 대한 자료를 모아나갔다. 전 구간을 순례하기에는 불가능한 시간이라 4개현 중에서 도쿠시마현과 고치현의 사찰만을 대상으로 하루 30km 전후를 걷는 것으로 대략의 일정을 확정했다. 숙박은 2월말까지는 아직 추운 날씨이기에 료칸과 민숙을 기본으로 하고 가능하면 젠콘야도(무료숙박소)나 노숙을 몇 차례 시도하는 것으로 하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그렇게 2월 1일 기대하던 <시코쿠 순례>는 시작되었다.

2월 1일 오전 11시 15분 에어부산을 타고 오사카로 출국했다. 간단한 입국수속과 점심식사를 마친 후 기차로 와카야마 항구로 이동하여 난카이페리를 타고 도쿠시마에 입성했다. 당초의 계획은 도쿠시마 항구에 도착하여 택시를 타고 숙소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어둠이 내린 항구에 택시는 보이지 않고 몇 안 되는 승객만이 대합실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매표소 직원에게 물어보니 원래 도쿠시마항구에는 택시가 오지 않는다고 한다.
물어물어 버스를 타고 숙소로 이동했다. 도쿠시마의 첫인상은 어둠이었다. 7시도 안 된 이른 저녁이지만 워낙 채도가 낮은 가로등으로 인해 한 밤중으로 착각이 들게 하는 도시였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시코쿠에서는 몇몇 큰 도시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곳이 이러했다.

허름한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카운터에서 소개받은 거리로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하지만 그 곳에는 술집 외에 밥 먹을 만한 식당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카운터의 할아버지가 아마도 우리를 술꾼으로 착각하고 이런 곳을 소개한 거 아니냐며 툴툴거리면서 한동안 거리를 헤맸다. 다행히 그나마 만만하게(?) 보이는 야끼토리집을 발견, 선택의 여지없이 문을 열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이서 운영하시는 가게는 입구부터 가게 안까지 모두가 한신타이거스(오사카를 연고지로 하는 일본 프로야구 구단)로 도배되어있었다. 심지어 방영되는 TV의 프로그램조차.(아 이것이 일본의 진정한 오타쿠인가!).
그리고 이번 순례의 첫 오셋타이(순례자에게 주는 선물)로 5엔이 들어있는 조그만 한신타이거스 봉투를 선물로 받게 되었다. 5엔을 일본어로 발음하면 '인연'이라는 뜻의 일본어 단어와 비슷한 발음이 난다고 해서 선물로 많이 한다. 기분 좋은 오셋타이로 인해 아마도 이번 여행에서 ‘좋은 인연’들과 함께하리라는 기대를 품게 했다.
다음호에는 우여곡절 속에 맞이한 첫 노숙, 한번쯤은 꼭 먹어봐야할 고치의 가쓰오 타타끼, 가가와현의 사누키 우동, 길에서 만난 사람들, 재일동포 3세의 오셋타이 등 25일간의 ‘시코쿠 순례기’를 간략히 소개할 예정이다.

※ 박영철 님은 울산인권운동연대 사무국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