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10-10 17:14
[93호] 시선 둘 - 고등어 무죄 기념사
 글쓴이 : 인턴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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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 무죄 기념사

김규란 l 법학과 12학번


저녁 7시. 아버지를 필두로 다섯 가족이 밥상 앞에 모인다. 어머니의 분주한 손길과 함께 노릇이 구워져 나오는 고등어. 그 고등어가 몇 마리든 고등어의 기름진 갈색 등은 온전한 내 몫이었다. 흰 쌀밥 위에 어머니가 발라주시는 고등어의 등. 내 밥그릇 위의 어머니 젓가락 사이로 들리는 말씀. “등 푸른 생선이 머리에 좋대. 우리 큰 딸이 다 먹어야지.” 어머니의 교육열에는 아버지의 권위도 막내아들의 귀함도 뒷전이었다.

4대 등 푸른 생선 중 하나인 고등어의 DHA, EPA가 인간의 두뇌활동을 촉진시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전업주부인 어머니께서 고급 불포화 지방산이나 오메가3 같은 전문 지식에 기반 해, 고등어를 발라주진 않으셨을 것이다. 당시 생선을 바르면서도 머리에 좋다는 말만 반복하셨다. 어느 생선 장수가 홍보용으로 한 말을, 혹여나 딸자식의 미래에, 정확히는 대학 입시에 도움이 되지 않을 까하는 마음이었음이다.

어머니께서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다. 사실 대학은 죽은 지 오래라는 것이다. 대학 강의가 인간을 향상시키기는커녕, 학점을 따기 위한 전장으로 전락했다는 사실은 보편적이다. ‘대학에서 학문을 배운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다. 설사 결석을 했더라도, 수업을 못 들어서가 아닌 ‘출석 점수 1점 감점’따위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모인 장소가 대학이다. 게다가 그 ‘1점’ 의 일희일비(一喜一悲)성을 교묘히 이용하는 교수들도 꽤나 많다. 4년 동안 얻는 소득은 실제 삶에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학위라는 증명서다.

대학의 무 가치성은 학문과 취업을 동일시하는 사회적 맥락에서 출발한다. 대학을 ‘인문계-공학계’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취업이 힘든 학과-취업이 쉬운 학과’로 양분하는 모습이 사회적 시선이다. 이에 연일 보도 되는 ‘청년 실업자 120만 명’이라는 뉴스가 대립구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처칠의 말을 빌리자면, 대학은 ‘장사를 배우는 곳이 아닌, 지식을 배우는 곳’이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배우는 곳’이다. 인간의 본질, 인간다운 삶을 연구하는 장소. 그 장소가 대학인 것이다. 대학에서 인간의 완성도를 높인 뒤,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옳은 순서다. 취업은 학문 그 다음 단계란 말이다. 이 둘을 동일선상에 놓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순서가 뒤 바뀐 사회는 우리 세대에서 끝났으면 한다. 나 역시 David cho의 책들을 책꽂이 위에서 치워 버리고 싶다. 어머니께서 발라주신 고등어를 먹고 자란 나는, 고등교육을 받았으면서 진정한 고등교육이라 말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있다. 나를 좌절하게 하는 건 여기까지지만, 경악케 하는 일까지 예견되어 있다. 2017년도 신입학생부터 정부가 추진하는 ‘프라임(PRIME) 사업’ 의 틀에 놓이게 된다. 상대적으로 취업률이 낮은 인문계 정원을 공학 계열로 재배치해서 취업률을 높이겠다는 생각은 주객이 전도된 기상천외할 발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문득 드는 생각 하나. 어쩌면 교육부 고위직 공무원들은 어릴 때 고등어를 먹지 못 했을 지도 모른다. 고등어가 미세먼지의 주범이라는 누명은 벗겨졌다. 게다가 ‘김영란법’도 시행되었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교육부의 식사대접은 고등어 백반으로 의무화 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