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03-29 11:54
[87호] 여는글 - 선거와 인권
 글쓴이 : 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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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글 - 선거와 인권

최민식 l 공동대표



?♬♪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우우 둘이 걸어요~ ♪?


봄의 길목에서 벚꽃엔딩 노래를 듣고 있습니다. 흥얼거리며 어디만큼 오고 있나 창밖을 보고 있습니다. 삼일회관 마당의 백목련은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아직 벚나무는 꽃망울을 영글고 있습니다. 울산에서는 시청 구관 뒤뜰 벚나무 꽃망울이 제일 먼저 터진다는 내 지론을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산에는 진달래-두견새가 밤새 울어대 피를 토해 붉은 꽃이 되었다는 전설의 두견화(杜鵑花)-가 흐드러지고, 이 꽃들이 질 때 쯤 나의 정원엔 애지중지 키운 튤립이 화려한 자태로 오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홀리게 될 것입니다.


꽃은 예쁨과 아름다움의 상징입니다. 모든 꽃이 그러하듯 민주주의의 꽃도 아름다워야 합니다. ‘선거’ 말입니다. 선거는 민주주의 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민주주의의 핵심요소이자 근간인 선거를 찬양하기 위함입니다. 사실 최초로 민주주의가 도입되고 행해졌던 고대 아테네에서는 추첨(제비뽑기)을 통해 의원을 선출하였다고 합니다. 추첨은 선거와 달리 무작위로 대표를 뽑는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아테네의 경우 약 200년 동안이나 안정적으로 그 방식이 지속됐다고 합니다.
이를 근거로 버나드 마넹은 <선거는 민주적인가>에서 어떻게 하면 선거가 민주적이 될 수 있는지, 나아가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현 방법은 무엇인지 묻고는 공직자 선출에 있어서 ‘추첨’ 방법이 가장 훌륭한 민주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합니다. 직접민주주의의 필요성을 역설합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직접민주주의를 불온시하기까지 합니다.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인민들은 스스로를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큰 착각이다. 그들이 자유로운 것은 오직 의회의 의원을 선거하는 기간뿐이다. 선거가 끝나는 순간부터 그들은 다시 노예가 되어 버리고, 아무런 가치도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라며 대의민주주의의 허구성을 지적하고, “대의원은 인민의 대표자가 아니며 대표자가 될 수도 없다. 그들은 인민에 심부름꾼에 불과하다.”고 일갈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선거는 의회제도가 올바른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심부름꾼을 뽑기보다 대표자를 뽑아, 오히려 민의를 대표하고 있다는 구실 하에 지배를 정당화시키는 도구가 되고 있습니다.

또한 북한이나 토고, 수단 등 권위주의 체제로 분류되는 국가들에서 선거가 공정하고 투명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곳에서 치러지는 선거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전체주의나 독재국가와 같이 비민주적인 나라에 정당, 의회와 같은 민주적인 제도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나라도 경험했듯이 독재 등 비민주적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선거제도를 이용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처럼 대의민주주의 통치구조에서 ‘선거’ 는 국민의 주권행사 내지 참정권 행사의 과정으로 제도의 핵심입니다. 그렇다고 대의민주주의 핵심요소인 선거가 공정하게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민의가 반영되는 것도 아닙니다. 1등 이외의 표는 사표가 되어 버리는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도하에서 민의 왜곡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투표하러 가려면 수많은 방해를 넘어가야 하는 장애인과 투표할 시간이 없는 비정규직·임시직·아르바이트 노동자에게 선거는 그림의 떡입니다. 참정권을 박탈당한 사람들에게 인권은 허울일 뿐입니다.


엊그제 인권단체들은 인권을 기초로 한 정치의 물꼬를 트는 작은 씨앗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4.13 총선 인권 올리고 가이드’를 만들어 발표했습니다. 선거로만 모아지지 않는 밀려나고 사라져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들, 선거가 하지 않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인권운동이 가진 고민을 인권 올리고 가이드를 통해 말합니다.



< 우리는 인권을 기초로 한 정치를 바랍니다. >

우리의 인권, 사람답게 살아갈 권리를 위해서는 ‘대신’해주겠다고 하는 정치가 아니라 함께하는 정치, 우리가 주인이 되도록 해주는 정책들이 필요합니다. 다가온 총선을 앞두고 우리는 우리의 표를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인권’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길 바라며 우리는 ‘인권 올리고 가이드’를 제안하고 있는 것이고요. 하지만 우리의 고민이 우리의 ‘표’에 머물지 않고 우리의 ‘정치’까지 아우르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인이 되는 ‘정치’를 만들 때, 우리의 표의 가치도 올라가고 ‘표’ 이상으로 선거와 그 이후에도 우리가 주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인권을 말합시다. 선거 이후에도 이어질 우리의 삶과 정치를 위해. 그리고 더 나은 선거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