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01-07 11:05
[84호] 시선 둘 - 집으로
 글쓴이 : 현진
조회 : 8,214  

시선 둘 - 집으로
송혜림 / 이사


2002년도 영화 ‘집으로’를 보면, 부제인지 혹은 그저 자막인지... 다 기억은 다르지만, ‘이 땅의 모든 외할머니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는 말이 나옵니다. 다는 아니지만 우리들 중 많은 이는 외할머니 손에 자란 경험들이 있을 터인데요. 저도 그렇습니다. 어릴 때 시골에서 올라오시는 외할머니를 기다리느라 저 먼 길을 바라보며 오래 서 있기도 했고, 외할머니의 가방에서 나오는 사탕이나 과자를 맛나게 먹은 기억도 납니다.
예나 지금이나 어린 자녀를 둔 여성들은 시어머니보다는 친정어머니에게 아이를 맡기는 경향이 더 많은가봅니다. 아마도, 여성의 입장에서는 시댁보다는 친정이 더 편할 터이고, 비공식적 차원에서는 시댁보다는 친정과의 교류와 소통, 물질적?정신적 지원이 더 많다는 경험에 빗대어, 가부장제 사회의 또 다른 단면이다 싶기도 합니다.

취업엄마인 저도 제 아이를 친정어머니께 맡겼고,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 한 저와는 달리, 아이에게 외할머니는 든든한 보금자리 그 자체였지요. 한 번은 아이와 함께 해외에 다녀와서 시차적응에 힘들어하던 제가, 칭얼거리는 아이를 두고 그냥 잠이 들었던가 봅니다. 잠결에, 친정어머니가 아이를 데리고 나가시는 모습을 얼핏 본 것도 같고, 그제서야 저는 안심하고 한 숨 잘 잤겠지요. 깨어났더니 친정어머니 말씀, “새끼 기르는 에미가 뭔 잠을 자고 싶은 만큼 다 잔다냐?” 였고요. 나름 야단을 맞았는데도 저는 감동의 눈으로 친정어머니를 바라봤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 저는 친정어머니에게서, 많은 것을 포기하며 4남매와 손자녀까지 알뜰히 길러낸 위대한 모성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뭐 꼭 포기와 희생, 헌신만이 모성의 특성은 아닐 터이지만, 여성학 세미나에서는 가끔 이런 말도 합니다. 일자리와 자아실현을 찾아 집을 떠난 모성의 자리를 외할머니가 대신한다고요.


영화 ‘집으로’에 보면, 서울을 떠나 시골 외할머니댁에 맡겨진 아이가 등장합니다. 모든 것이 어색하고 불편한 시골 생활에, 말 못하는 외할머니를 무시하기도 때로 놀리기도 하지만, 결국은 할머니와 깊은 정이 들었을 텐데요. 마지막에, 눈 어두운 할머니를 위해 바늘에 실을 꿰어 놓고, 말 못하는 할머니의 마음을 대신할 예쁜 엽서도 써 놓고, 그렇게 다시 그 아이는 서울로 떠납니다. 지극정성 손자를 돌본 외할머니의 사랑도 위대한 것이겠지만, 다시 혼자 남게 되는 할머니를 걱정하고 염려하며 무엇인가를 준비하는 그 어린 손자의 마음도 극진한 사랑이겠지요. 그렇게 사랑을 알게 되었겠고, 사랑을 받기만 하던 어린 아이가 어느 새 사랑을 주는 마음을 갖게 된 그 성장의 과정을 저는 감동 깊게 보았습니다.

최근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그런데 그 아이에게 ‘집’은 어디일까? 엄마아빠와 살았던 예 전 그 곳, 아니면 이제 다시 엄마와 살게 된 새로운 어떤 집, 아니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외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그 시골집... 과연 어디일까 궁금해 졌는데요.

50대인 제 삶을 보니, 아이가 커서 이제는 챙기고 돌보는 일이 한결 가벼워졌는데, 그 자리에 노모에 대한 걱정과 돌봄의 책임이 들어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전에는 길에 떨어져있는 유리조각, 과속으로 달리는 차, 뭐 이런 것들을 보면 어린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이 이리 위험해서 어떻게 하나, 그 걱정이 생기더니, 요즘은 작은 글씨의 안내문이나 가파른 계단을 보면, 노인 분들 불편하실 텐데, 그 생각을 먼저 하게 됩니다. 마트를 가도 친정어머니 좋아하시는 것 먼저 찾고, 사게 되고요. 예전에, 제가 좋아하는 것보다 아이 좋아하는 것을 당연히 먼저 집어 들던 그 모습 그대로.
부모가, 나를 돌보는 존재에서 내가 돌봐야 할 존재로 바뀌는 것, 그것이 지금 제 생애주기의 중요한 과제고, 그러니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겠다는 다짐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인생이란 것이 늘 뭔가 숙제를 해내야 하는 공부인 셈이겠지요.

바야흐로 모두가 바쁘고 분주한 듯 보이는 연말연시, 집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질 때입니다만, 올 해는 다른 해보다 ‘집으로’ 더 일찍 가고 더 자주 가는 발걸음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자녀에게는 그렇게 부모와 함께 하는 즐거움을 주고, 부모님께는 보고 싶은 자녀를 더 자주 볼 수 있는 행복도 드리고, 그렇게 ‘집으로’의 회귀본능이 만들어내는 소중한 추억들이 더 많아질 테니까요.

많은 일들이 있었던 한 해가 이렇게 저뭅니다. 더 치열하고 피폐해 지는 환경 속에서, 우리 모두 견디며 버티며 사느라 피차 수고가 많았지요. 그래도 새 해는 오고 다시 우리는 삶의 현장에서, 각 자의 고단한 일터에서 또 그렇게 씩씩하게 살아가야 할 터이지요.
그래서 새삼 기원해 봅니다. ‘진짜’ 복 많이 받으시는 새 해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