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01-07 10:49
[84호] 인턴일지 - 열정의 다른 얼굴
 글쓴이 : 현진
조회 : 8,093  

인턴일지 - 열정의 다른 얼굴
김규란 / 인턴


“한 달에 얼마 받았어?” “나는 10에 중식 제공. 오빠는?” “나는 20에 중식 미 제공.” “야…….니들은 양반이야. 나는 10에 중식 미제공이다.” 대한민국 국군장병들의 대화나고요? 아니요. 그 쪽은 밥이라도 준다면서요. 이번 ‘2015-2학기 울산대학교 산업체 장기인턴십’ 활동을 했던 법학과 학생들의 대화입니다. 물론 이들 숫자의 단위는 만원이고요.
2015년을 기준으로 이병의 월급은 129,400원입니다. 숙식 제공이고요. 물론, 저희 학생 인턴들과는 비할 수 없는 업무 강도와 국방의 의무라는 점은 확실히 다르지만요. 그래서 그런 걸까요? 너희는 학생 인턴이라 업무 강도도 느른할 것이며, 의무가 아니라 자발적 신청이다. 그러니 이 신청에 따른 대가는 너희가 직접 감수하거라. 우리가 너희에게 일자리 체험 특권을 사하노라. 정녕 이런 것입니까.

그러면 이제 대학생 여러분들에게 물어볼게요. 업무 강도가 느른했나요? 아니, 당신은 정확히 시급 310원 만큼만 일을 했나요? 이 때 어김없이 따라오는 말. ‘에이-. 너무 계산적인 거 아냐?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이것도 좋은 경험이라고 쳐. 다- 사회 나가기 전에 경험하는 거야.’ 이제는 다행히도 유병재 작가 덕에 맞받아칠 말은 있네요. ‘젊음은 돈 주고 살 수 없어도, 젊은이는 헐값에 살 수 있다고 보는 모양이다.’ 그러게 말입니다.
또 다른 것도 물어볼게요. 정말 자발적 신청입니까? 가슴에 손을 얻고 대답해주세요. 이 사회의 낙오자만큼은 되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 붙잡은 동아줄이 아니라, 정말 ‘나는 일자리 체험을 해보겠어!’ 같은 그 순수 그 자체입니까. 까놓고 말하죠. 1년 뒤 나도 취업 준비생 100만 명에 속할까봐 두려움에 덜컥 신청한 거라고.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적기 위해서라고. 그렇다면 이를 자발적 신청으로 봐야할까요. 아니면, N 스펙의 의무로 봐야할까요. 저의 머리를 쥐어뜯게 하는 것은, 이런 상황이 비단 울산대학교 산업체 장기인턴십 학생들에게만 해당 되는 것이 아니란 겁니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아니 어쩌면 대한민국 모든 대학생 인턴들이 겪고 있는 고충이란 겁니다.


단적인 예로 올해 2월 ‘건국대 학생인턴-홈플러스’ 사건. 꽤나 말 많았죠. 두 달간 하루 8시간 업무 투입. 그리고 10만 원짜리 상품권 달랑 한 장 지급. 이 외에 경북대, 부산대 ……. 수많은 학교들을 나열하자니, 「인연」이 너무 두꺼워 질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적는 저 또한 동질감에 가슴이 먹먹해 질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화살을 과연 어디에 돌려야 할까요. 값싼 노동력을 제공받으려는 기업체 입니까. 아니면 그 기업체들에게 제발 저희 학생들을 써달라는 학교입니까. 이들도 아니라면, 갓 사회에 나와 단순 노동밖에 할 줄 모르는 저희 어린 학생들입니까.
이러한 상황을 보고 한 대기업은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대학에서 요청해 현장실습을 진행하는 것이고 정식 채용이 아니라 급여가 나갈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인턴이라고 하면 오해를 줄 수 있으니 ‘직장체험’이라고 보면 된다.” 아니 직장체험이라니요. ‘직장’이라는 단어가 사전에 등재되어 있지 않았다면, 에버랜드나 롯데월드로 받아들이기 딱 좋은 말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결국 화살은 최대 약자인 저희 학생들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게 눈에 선합니다. 이러니 학생들은 목소리하나 제대로 내지 못합니다. ‘아!’ 소리만 내도, 자본주의 사회에 불만을 가진 반동분자로 낙인 찍혀 취직도 못하고 방구석만 긁을게 뻔한데, 저희가 금수저도 아니고 어떤 배짱으로 그럽니까.
이쯤이면 다들 예상되다시피, 전국의 ‘산업체 장기 인턴십’ 제도는 매년 호황일 것입니다. 그 수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거고요. 물론, 저희 학생들은 머저리가 아니에요. 다들 알고도 지원하는 겁니다. 어쩔 수 없는 겁니다. 그저 자신들의 노동력을 헐값에 팔아서라도 취업시장에 나가고 싶은 순수한 마음 일 뿐입니다
저는 이번 12월 달을 기준으로 이 학생인턴이 끝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인턴활동을 한 기업체의 소식지에 이런 글을 싣는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제 다음 학생인턴은 주말 아르바이트를 할 필요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지긋한 주 7일제는 저를 끝으로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최저임금의 50%까지도 바라지 않습니다. 그냥 인턴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합니다.
학생들은 서로 다들 알거든요. 우리가 인턴활동을 하는 목적은 돈도 아니고 학점도 아니라는 것을. 그저 취업 경쟁에 밀리기 싫어서, 청춘을 팔아도 좋으니 낙오자는 되기 싫어서, 딱 그 뿐입니다. 이 절박함을 이용만 하지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이 시간에도 다양한 산업체에서 무급 같은 유급으로 일하고 있는 수많은 대학생들의 죽은 청춘에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 어쩌면 내부고발 글 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인턴 활동을 한 곳이 ‘울산인권운동연대’라서 이런 청춘들의 소리를 낼 수 있는 거라 생각합니다. 시민단체에서 활동한 만큼, 그 시민단체가 인권단체인 만큼, 6개월간 배운 대로 실천했습니다. 이 글을 싣는데 관계자로서 큰 결단을 해주신 오문완 교수님, 최민식 대표님, 그리고 박영철 사무국장님과 이영환 편집위원장님 외 편집위원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