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01-07 10:04
[84호] 편집후기 - <인연>의 한해를 마무리하며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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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의 한해를 마무리 하며

12월 8일 울산지역 인권관련 여러 단체들이 모여 울산의 인권현황과 과제를 공유해보는 집담회가 있었습니다. 비정규직, 알바, 여성, 장애인, 청소년 등의 부문영역과 탈핵 등도 주제에 올랐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탈핵은 환경의 문제가 아닌 생명의 문제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탈핵은 단순한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의 문제죠.

돌아오는 길, 작은 불빛들이 화려하게 수를 놓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옷을 모두 벗어버린 가로수에 작은 조명등들이 무수히 얹혀있습니다. 방금 전 생명에 대한 이야기가 귓가에 남아 있어 그런가요. 왠지 가로수들이 안쓰럽게 다가옵니다.

십년이 훨씬 넘었습니다. 가로등이 벼 수확에 안 좋은 영향을 준다며 농촌 어르신들이 도로변 가로등을 밤10시 이후에는 소등해줄 것을 요구하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닭들에게도 계란을 많이 낳으라고 24시간 불을 켜둔다는 말도 있네요.
심지어 현대인의 많은 질병의 원인 중에 수면부족이 영향을 준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잠은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위한 중요한 요소입니다. 물, 밥, 공기 같이…….

나무도 잠을 자야하는데 겨울의 추위를 이겨내고 다음해 힘찬 생명활동을 위해 잎을 떨구고, 기본적인 생명유지활동만을 위해 자신을 최적화 시켰을 터인데……. 그 곳에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수많은 조명등을 올려놓았습니다. 그 명분은 ‘생명탄생’, ‘사랑과 축복’이라는 단어로 치장되는 ‘성탄절’을 기념하기 위함이겠지요.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세월호 등의 많은 사건들을 거치며 앗아간 생명들의 아픔이 달래지지도 않은 채……. 살아있는 자들의 온갖 논리 속에 서서히 사그라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또다시 유린당한 생명의 아픔을 달래주지 못한 채 시간 속에 묻혀 지나 버리면 또다시 다른 생명이 허무하게 유린당하는 모습들을 보게 되겠지요.

조명을 걷어내는 날, 나무들을 통해 눈의 즐거움을 즐겼다면 그 앞에서 잠시라도 나무의 생명 일부를 담보했다는 죄스러움과 고마움도 잠시나마 표현해주길 바래봅니다. 뭇 생명들에 대한 살펴봄이 있을 때 탈핵의 문제도 생명의 문제로 바라보게 되고, 세월호의 아픔도 가슴속에 깊숙이 새겨지지 않을까요.

2016년, 생명에 대한 새로운 흐름이 일어나길 기대하며, ‘인연’의 한해를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