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5-11-30 14:12
[83호] 시선 하나
 글쓴이 : 김규란
조회 : 8,322  

111, 일
이아름 l 인턴

2015년 11월 1일 춥다. 추워도 너무 춥다. 강바람이 매섭다. 살이 언다. 이 날로부터 대략 한 달 전, 나의 마라톤은 한 달 전부터 시작된다.

처음 준비 해 본 마라톤 대회. 이렇게 큰 행사를 언제 또 내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준비해 볼 수 있을까? 그동안 몸은 힘들었지만, 그래도 마음은 들뜬 상태였다. 내 들뜬 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울산인권운동연대 사무실은 3층. 나는 이제 마라톤하면 자전거부터 생각난다. 전화가 울린다. “자전거 가져다놨으니 가지고 가세요.” 이를 어쩌나. 때 마침 사무실에는 나와 또 다른 인턴 규란이 둘 뿐. 둘 다 ‘에이-설마’를 읊조리며 내려가니 1층에는 자전거 5대만 덩그러니. 혼자 드는 건 상상도 못할뿐더러, 두 명이서 들어도 팔이 후들후들. 한명은 끌고 한명은 밀며 자전거 5대를 3층까지 옮겼다. 그리고 다음날 전화가 또 울린다. “자전거 가져다놨으니 가지고 가세요.” “.......” 나이스 타이밍. 웃음이 피식피식 새어나온다. 그래도 실소도 웃음이란다. 게다가 이번에는 자전거가 4대밖에 안 된다! 이건 진짜 웃음이다. 뭐, 자전거에 비하면 책자가 와글와글 온다거나, 귤 26박스가 온다는 건 애교다. 덧붙이자면, 귤은 택배 기사님께서 도와주셔서 셋이서 옮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사님께 드는 죄송한 마음은 캔 콜라를 드리는 것으로 대신했다. 이렇게 파스 값 드는 일 말고도 기타 등등. (나는 기타 등등에 많은 것이 함축되어 있음을 알린다.)을 준비했다.

우리가 제대로 준비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되돌아 볼 수 없을 만큼 바빴다.), 제대로 하고 있다고 믿으며, 시간은 흘러 10월 31일. 아, 즐거운 주말 출근. 이번에는 같이 준비하러 오신 연대 회원들과 울산대학교 법학과 남학생들이 함께해서, ‘아 저걸 언제 다 옮겨’라는 부담감은 없었다. 자전거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렇게 트럭에 물건들을 가득 싣고 대회 행사장으로 향했다. 아, 드디어 마라톤이 시작하는 구나. 실감이 났다. 대회장에 도착한 후, 현수막을 꺼내서 천막에 달았다. 하나하나 달고 보니 벌써 점심시간. 꺄륵! 하려는 순간, 주어진 시간은 30분이라는 감사님의 말씀. 가까운 국밥집에 가서 밥을 우겨 넣고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남은 현수막들을 달고, 천막 밑에 책상과 의자 배치, 그리고물 배달까지. 마침 대표님께서 바나나를 가져오셨다. 바나나를 옮기고 쉬려는 찰나. 이야, 이번에는 쌀과 이온 음료가 배달 왔다. 그렇게 일련의 과정들을 반복 하다 보니 벌써 저녁이 되었다. 바람이 슬 거세진다. 천막들 중 적절한 것으로 골라잡아 (물론, 본부석이지만)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이제는 바람이 귀가 떨어져 나갈 듯이 분다. 그래도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켜니, 그 나름의 분위기는 있다. 저녁 메뉴는 치킨과 족발. 따뜻한 치킨을 덥석 들어, 입에 무니 꿀맛도 이런 꿀맛이 없다. 허니 치킨인가보다. 뭐, 그렇게 간단하지만 의미 있는 저녁을 먹고. 오늘은 퇴근.

역시나 즐거운 주말 출근. 드디어 마라톤 행사 당일이 되었다. 8시까지 행사장으로 도착해 담당 자원봉사들을 인솔하여 지정된 구역으로 걸어갔다. 나는 대숲입구에 배치되었는데, 이 곳은 작년에 선수가 뛰다가 샛길로 샌 적이 있던 곳이라서 많은 주의가 필요하단다. 그래서 각별히 주의를 요하며 두 명씩 짝을 지어 서있었다. 선수들의 몸은 힘들어보였지만 표정만큼은 즐거워보였다. 백발이 찰랑이는 분부터 유모차의 젖먹이 아이까지. 슬- 선수들이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끝났나. 자원봉사 학생들이 “아-언제 끝나요-”할 때 쯤 마지막 주자가 모습을 보였다. 우와. 마라톤이 드디어 끝이 났다. 끝이다. 끝.
행사장에 도착하니 밥이 없다. 동났단다. 미처 식사를 하지 못한 자원봉사자들은 어제의 그 국밥집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나? 나는 그냥 빵으로 대신했다. 빵이면 뭐 어때. 이제 끝났는데! 아, 아니네. 진행요원과 자원봉사자들의 식사가 끝나자. 연대의 주 회원들에게는 뒷정리라는 과제가 남아 있었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라는 말을 이때 쓰나보다. 그래도 어제보다는 한결 가볍다. 여러 마라톤 용품들을 사무실에 이리저리 쌓은 후, 매일 갈비로 향했다. 1인분에 9,000원이다. 내가 연대에서 이런 걸 먹어보다니. 두 손 모아 감사하며 고기를 흡입했다. 물론, 갈비집의 분위기는 최고조. 다들 각자의 마라톤 이야기들을 풀어 놓았다.

그러고 다음 날. 하루는 오후 출근. 그 다음 하루는 휴무. 국장님의 센스에 감동 받은 채 파스를 떼어냈다. 수요일에는 정상 출근을 했는데, 아직 정리가 되지 않은 마라톤 용품들이 쌓여 있다. 아이고. 아직도 끝난 게 아니구나. 우선 내 몸통보다 큰 물통 5개와 바가지를 씻고 말려두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에는 사무실 대청소를 했다. 물품별로 모아서 상자에 넣고, 라벨링을 하고 차곡차곡 창고에 쌓았다. 그동안 쌓인 먼지들을 쓸고 대걸레로 사무실을 닦았다. 물기가 마른 후 책상과 의자를 원위치에 배치했다. 비로소 나의 마라톤 대장정은 끝이 났다. (사실 나만 끝났는지도 모른다.)
여기까지가 울산인권운동연대의 인턴 이아름이 경험한 마라톤, 울산인권운동연대의 꽃이라는 마라톤, 조금이라도 완벽한 11월 1일의 3시간을 위해, 계획부터 실무까지. 준비부터 정리까지. 이 모든 것이 어쩌면 나만의 마라톤은 아닐까.

이번 제 12회 울산인권마라톤에 각별한 도움을 주신 인권운동연대 회원 분들 모두에게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저도 이 감사한 마음을 간직한 채, 13회 울산인권마라톤 때에도 자원봉사를 하기로 다짐했습니다. 하프코스가 풀코스가 되는 그날까지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