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5-11-06 09:47
[82호] 시선 둘
 글쓴이 : 김규란
조회 : 7,427  

지리산 1박 2일
____________________김연수 l 회원

나의 지리산 트라우마!
지리산행을 기획했다는 문자를 받고 최종 산행을 결정하기까지 고민을 거듭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연유는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년 전 대학 1학년 때, 우리는 젊음 하나로 2박 3일의 지리산 MT를 감행했다. 하동에서의 첫날밤, 밤새 술을 마신 채 꼬박 날밤까지 새고 다음날 아침 음주 산행을 시작했었다. 그 몸으로 장터목산장까지 생존을 위한 산행을 했었다. 다시는 이산을 오르지 않으리라 이를 악물고 산을 올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고민 끝에 신청하지 않는 쪽으로 결정을 하고 있었는데, 국장님의 전화가 생각을 원점으로 돌아오게 했다. 한 분의 사정으로 인한 취소로 빈자리가 하나 났다는 연락이었다. 이쯤 되면 가야겠구나! 여자들이 아이를 낳는 산고를 겪고 나면 다시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그 고통을 잊고 또 다시 아이를 낳는다. 나도 이제는 그 지리산 트라우마를 깨야 되지 않을까? 마음 한구석의 지리산 악연을 인연으로 만들 것을 결심하며 나는 그렇게 산통을 잊고 지리산을 도전하게 되었다.

20대에 보지 못한 지리산! 40대에 보았네!
‘내려갈 때 보았네. /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이 시는 노벨문학상 후보에도 몇 번이나 오르셨던 고은 시인의 “그 꽃” 이라는 짧은 시다. 나는 지리산을 오르며 이 시가 생각났다. 20대에 보지 못한 지리산을 40대에 보았다고 말하면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심오한 의미를 조금이나마 담을 수 있을까? 지리산을 다시 오르는 40대의 나는 20년 시간만큼이나 많은 변화가 있었다. 졸업, 취업, 결혼, 출산, 엄마, 직장생활 16년차, 매너리즘 등 나를 따라 다니는 수식어만큼이나 다양하고 복잡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사실 지리산행을 결심한 결정적 계기는 업무와 사람 관계로 힘들어 하고 있는 내 자신을 뛰어 넘기 위한 수행 길의 목적이 컸다. 이전에 지리산을 그렇게 힘겹게 오르고 유일하게 남은 좋은 점이 “세상에 못할 것은 없다”는 자신감이었다.
지리산을 오르기 전 나는 직장에서 많이 지쳐있었고 본의 아니게 틀어진 대인관계에서 힘들어 하고 있었다. 이열치열이라고 했던가? 이 보다 더 힘들 수 있는 것은 지리산! 지리산을 다녀온다면 나는 이겨낼 힘이 생길 것이다. 그 돌파구가 지리산이었던 것이다. 40대에 본 지리산은 들국화, 구절초, 용담 등 시인이 이야기한 그 꽃은 아니지만 지리산 자락에서 뽐을 내는 꽃들을 보았다. 지리산의 고목과 단풍, 운무 등 자연의 예술을 보았다. 배낭의 무게도 짐이었지만 속세의 짐까지 지고 오르는 지리산은 쉬운 산이 아니었다. 40대의 나는 속세의 짐을 놓기 위해 무단히도 애를 쓰며 올랐던 것 같다.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고 한 지리산의 이름처럼 40대의 나는 느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웠던 1박 2일! 지리산 동행!
우리의 지리산 코스는 중산리를 출발하여 법계사, 천왕봉, 장터목, 세석산장(1박), 거림으로 하산하는 13시간의 산행이었다. 이번 지리산을 함께한 회원은 교수님을 비롯해 10명! 평균연령 50세! 나이가 무슨 상관이겠는가? 아하! 산을 올라보니 상관이 있더라. 올라갈 때 가장 체력의 한계를 느낀 분은 이세무사님! 그동안 방탕한(?) 생활을 하셨는지 예전 날다람쥐처럼 산을 오르시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전날의 알코올 진액을 한 땀 한 땀 쏟아내시면서 힘겹게 발걸음을 떼셨다. 선두에 계신 세무사님의 속도에 가장 덕을 보신 분이 오교수님! 예전에 거의 내 몸무게만치의 술 배낭을 지고도 산을 거뜬히 올라가시던 교수님의 모습은 아! 옛날이었든가? 사람이 가장 무거울 때는 “철들 때”라는 넌센스 퀴즈도 있더라만 세월의 무게를 느낄 때가 아닐까 싶다. 자신의 건강관리 비법과 지칠 때마다 힘을 내도록 웃음을 주시고, 성능 좋은 취사도구로 10명의 식사를 빠르게 준비도록 해주신 홍승민사장님! 산을 오르기도 숨 가쁜데 곳곳에 포토존을 마련하시어 지리산 추억의 책장을 만들어 주신 정용오이사님! 화수분의 배낭으로 지칠 때마다 일용할 양식을 꺼내주신 김동한샘! 이번 산행의 비쥬얼(?)을 엄청 끌어올려주신 송부영샘! 인권연대 여전사! 늘 빠지지 않는 선생님이 있어 제가 동참하는데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는 든든한 지원군 솔선수범 최귀선샘! ‘제가 오를 수 있을까요?’에 따른 박영철 국장님의 대답!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이번 산행의 가장 젊은 오빠의 모습을 보여주신 인권연대 살림꾼이시다. 그리고 이번산행의 평균연령을 확 낮춰준 김동한샘 중학생 아들 태오! 사춘기 중학생이 어른들을 따라 지리산을 온다는 것만으로도 감탄할 일이지만 준수한 외모만큼이나 마음도 착하고 산도 잘 오르고 어른들의 말도 귀담아 듣고, 남 주기 아까운 사윗감이다. 우리 딸과 장차 맞선을 주선하고 싶은 멋진 아들이었다. 언제 또다시 이런 분들과 지리산을 다시 갈수 있을지는 기약할 수는 없지만 이번 지리산은 분명 40대의 소중한 기억으로 남기기에는 충분한 여정이었다. 아직도 지리산 여운은 내 생활의 활력소로 코팅되고 있는 것 같다. 좋은 산을 가기 위해서라도 건강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끝.


_________※ 김연수 회원은 이번 지리산 정기산행을 함께 다녀왔습니다. 현재 울산고용센터에서 근무하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