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5-10-01 10:46
[81호] 이달의 인권도서
 글쓴이 : 김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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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 론
- 2부 인간 이해와 자기 성찰
______신영복 / 돌베개 / 2015 / 발제 : 오문완

이번 시간부터는 훨씬 가벼운 주제입니다. 세계가 아닌 ‘인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인간에 대한 이야기는 체계를 세워서 진행할 수 없습니다. 그런 방식 자체가 인간에 대한 이해 부족입니다. 인간에 관한 공부는 내가 겪었던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것입니다. 이번 시간부터 사람을 찾아서 떠나기로 하겠습니다. 바깥으로 떠나는 여행이기도 하고 안으로 떠나는 여행이기도 합니다. 어느 경우든 계속해서 강물처럼 자유롭게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일이와 공일이
노인 목수 이야기입니다. 노인 목수는 주춧돌부터 시작해서 지붕을 맨 나중에 그렸습니다.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일하는 사람은 집 그리는 순서와 집 짓는 순서가 같구나. 그런데 책을 통해서 생각을 키워온 나는 지붕부터 그리고 있구나.’
내가 이 이야기를 소개하는 이유는 톨레랑스와 관용을 다시 생각하자는 것입니다. 만약 노인 목수의 집 그림을 앞에 두고 내가 이렇게 말했다면 어떨까요? “좋습니다. 당신은 주춧돌부터 그리세요. 나는 지붕부터 그립니다. 우리 서로 차이를 존중하고 공존합시다.” 이것이 톨레랑스의 실상입니다. 차이를 존중하고 다양성을 승인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근대사회의 최고 수준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차이와 다양성은 그것을 존중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새로운 시작이어야 합니다. 나는 그 집 그림 앞에 앉아서 나 자신의 변화를 결심합니다. 창백한 관념성을 청산하고 건강한 노동 품성을 키워 가리라는 결심을 합니다. 차이는 자기 변화로 이러지는 또 하나의 출발이어야 합니다. 차이는 공존의 대상이 아니라 감사(感謝)의 대상이어야 하고, 학습의 교본이어야 하고, 변화의 시작이어야 합니다. 들뢰즈, 가타리F?lix Guatari의 노마디즘입니다. 이 유목주의가 바로 탈근대의 철학적 주제임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톨레랑스는 은폐된 패권 논리입니다. 관용과 톨레랑스는 결국 타자를 바깥에 세워 두는 것입니다. 타자가 언젠가 동화되어 오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강자의 여유이기는 하지만 자기 변화로 이어지는 탈주와 노마디즘은 아닙니다. 나는 문도득의 집 그림에서부터 또 하나의 먼 길을 시작합니다. 자기 개조의 길입니다. 우선 기술을 배우고 일하는 품성을 키워 갑니다. 그것이 쉽게 가시적 성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러한 의지가 새로운 동력이 되었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위약과 위선
위악이 약자의 의상(衣裳)이라고 한다면, 위선은 강자의 의상입니다. 의상은 의상이되 위장(僞裝)입니다. 겉으로 드러내는 것일 뿐 그 본질이 아닙니다. 우리가 자주 보는 시위 현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있습니다. 붉은 머리띠, 문신입니다. 단결과 전의(戰意)를 과시하는 약자들의 위악적 표현입니다. 강자들의 현장은 법정입니다. 검은 법의(法衣)의 엄숙성과 정숙성이 압도합니다. 시위 현장의 소란과 대조적입니다.

증오와 대상
내가 여름보다 겨울을 선호하는 것은 방금 이야기했듯이 옆 사람을 증오하지 않기 때문임은 물론입니다. 그러나 내가 정작 겨울을 선호하는 진짜 이유는 다른 데에 있습니다. 겨울은 정신을 한없이 맑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얼굴
『자기 앞의 생』에서 모모가 할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사람이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 “살 수 있지, 슬프지만.” 하밀 할아버지의 대답은 정답이 못 됩니다. 살 수 있다면 결코 슬프지 않습니다. 생각하면 우리가 생명을 저버리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한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한다는 것은 기쁨만이 아닙니다. 슬픔도 사랑의 일부입니다. 마치 우리의 삶이 그런 것처럼

강의를 마치면서 우리의 교실을 공감 공간으로 만들어 준 여러분의 진지함에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너무 많은 이야기를 전하려고 했고, 그 때문에 조리가 없었습니다. 여러분이 잘 정리하리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이 ‘강의 이후’를 시작하기 바랍니다. 우연의 점들을 하나하나 제자리에 앉힘으로써 빛을 발하게 하기 바랍니다. 끝으로 내가 좋아하는 글귀를 소개합니다.

언약言約은 강물처럼 흐르고
만남은 꽃처럼 피어나리.

처음에는 별리別離의 아픔을 달래는 글귀로 만든 것이지만 지금은 강의 마지막 시간에 함께 읽기도 합니다. 돌이켜보면 한 학기 동안 수많은 언약을 강물처럼 흘려보냈습니다. 그러나 그 언약들이 언젠가는 여러분의 삶의 길목에서 꽃으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