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5-08-31 14:18
[80호] 인권포커스
 글쓴이 : 김규란
조회 : 8,137  

데이트 비용 안내서 성폭력 당한다?
_강혜련 l 울산여성의전화 대표

? 남성의 성에 대한 욕망은 때와 장소에 관계없이 충동적으로 급격하게 나타난다.
→ 남성의 성욕은 당연하다?
? 성폭행은 성기를 강제로 피해자의 생식기에 삽입하는 행위
→ 유사강간은 성폭행이 아니다?
? 데이트 비용을 많이 사용하게 되는 남성 입장에서는 여성에게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원하기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원치 않는 데이트 성폭력이 발생할 수도 있다.
→ 본전 생각이 나서 여성을 성폭행 한다?
? 이성교제가 건전하지 못했을 때 성폭력이 발생할 수 있다.
→ 건전한 이성교제란?
? 평소 우유부단한 태도보다는 단호하게 의사 결정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 결국 성폭력은 피해자 책임이다?
? 여성은 한 특정 남성에게만 성적으로 반응하는데 견줘 남성은 성적으로 매력적인 여성들과 널리 성교할 수 있다.
→ 성적으로 매력 없는 여성은 누구? 남자의 외도는 무죄?

그리고 성폭력을 예방하는 방법으로는 ‘친구들과 여행가지 않는다.’ ‘단둘이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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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용들은 얼마 전 교육부가 교사용 성교육 자료로 배포한 내용의 일부분이다. 1994년 ‘성폭력 특별법’이 제정되고 공공기관이나 학교 등에 성교육이 시작된 게 거의 20여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교육의 최고 행정기관인 교육부의 성폭력에 관한 인식이 이 정도라면 할 말이 더 이상 없다.

남성의 성적 충동은 당연시 하고 성폭력을 당하지 않으려면 되도록 사람들과 어울리지 말고 성폭행이 단호하게 거절하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논리는 그야말로 조선시대의 성차별적 규범과 다르지 않으며 결국 모든 것은 피해자 책임으로 환원되고 있다.

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러한 인식은 사회 전반에 여전히 똬리를 틀고 있음을 일 수 있다. 잠잠하다 싶으면 터지는 군대, 기업, 대학 내 교수들의 성추행 사건과 국회의원들을 비롯한 정치인들의 성 추문들 그리고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엽기적인 사건들 역시 전혀 새삼스럽지 않은 것은 우리의 성인식이나 성문화가 변하지 않은 이상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 사건들에 대해 당사자 뿐 아니라 그 주변 사람들은 재수가 없어 걸렸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워낙에 일상적인 행위이며 분위기상, 술 한 잔 먹고 한 실수인데 무엇이 문제냐는, 문제의식이 전혀 없음이 더 절망스러운 상황인 것이다.

위 교육부 자료에 의하면 그들은 불쌍한 희생양인 것이다. 생기발랄한 아이들이나 여성을 보고 넘치는 성욕이 절제가 안 되어(?) 잠시 일탈을 한 것뿐이고 자신은 전혀 그런 의도가 없었음을 강변하고 있다.

그러면 그 순간 상대방은 어떤 기분이었는지 이들은 생각해 보았을까? 가해자의 권력이나 위력에 대한 두려움으로 'NO'라고 하자 못하는 것에 대해 암묵적인 동의라거나 피해
자도 즐겼다라고 정당화시키며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행위들을 버젓이 하는 것을 보면 오로지 자신의 성욕 해소에 정신이 팔려 상대방의 기분이나 감정 따위에는 안중에도 없는 이들은 철저하게 이중적이거나 사이코 패스 적이며 공감능력의 결여자들이다.

한 치도 안 되는 자신의 권력을 부하직원, 제자, 경제적인 약자들에게 휘두르며 자신의 욕구를 채운 뒤 피해자에게 오히려 그 책임을 씌우고자 한다. 그러나 이를 두고 단순히 도덕적 해이나 개인의 문제로 치부한다면 해결은 더욱 요원하다.

성폭력이란 약자를 대상으로 강자에 의한 성적 착취에 다름 아님을 이해한다면 결국의 권력관계에서 나오는 갑의 횡포인 것이다. 때문에 여성권력자에 의한 남성들의 수난 역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따라서 인권교육과 성교육이 동시에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상대방이 특히 약자인 경우 그 사람의 인격존중과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인정은 가장 중요한 인간관계의 기본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약자에 대한 노골적인 무시와 혐오를 가차 없이 드러내며 성적인 공격도 마다하지 않는다.

최근 ‘된장녀’ ‘김치녀’로 대표되는 여성혐오 현상과 여성가족부 폐지운동, 군가산점 폐지로 붉어진 차별논란,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집단적 공격은 도를 넘어서고 있으며 우리 사회가 마치 남성과 여성 진영으로 전선을 형성하여 소모적인 대립을 하고 있는 양상이다. 과연 이런 본질과는 상관없는 어이없는 논쟁으로 누가 과연 이득을 보는 걸까?

남녀차별을 끊임없이 조장하며 이를 개인의 문제나 일부 집단의 이기주의로 몰아가며 정작 피해를 보는 당사자들끼리 진흙탕 싸움을 하게 만드는 것은 오래된 분할 지배 방법이다. 이에 눈감은 채 싸워야 할 대상은 겁이 나서 직면하거나 대항하지 못하고 주변의 만만한 약자를 골라 괴롭히거나 불만을 해소하고자 하는 것은 모든 비겁하거나 무지한자들의 공통된 특징이기도 하다.

최근 더 황당한 소식은 국제 엠네스티가 성매매 여성 인권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합의에 의한 성매매’를 범죄로 보지 않는다는 정책 마련을 각 나라에 권고한다.“ 라고 발표하였다는 것이다. 이에 한국 엠네스티 지부는 ‘성매매 비범죄화는 합법화와는 완전 다르다’는 논평을 냈는데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없고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이미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성매매 합법화를 시행하는 국가가 인신매매가 더욱 증가했음이 나와 있는데 이들이 성매매 알선자들의 압박에 의해 강제에 의한 성매매도 합의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면 이들을 처벌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이런 어이없는 일들이 계속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보노라면 왜 여성들이 ‘아마조나’를 꿈꾸었는지 능히 수긍이 된다.

하나의 성이 다른 하나의 성을 착취하고 유린할 수 있는 사회, 여성의 성은 사고 팔수 있지만 남성의 성은 보호되거나 얼마든지 성적방종을 허용하고 조장하는 모습들을 보노라면 인권을 말하거나 진보를 이야기 하는 것은 어쩌면 사치에 속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공적인 조직이든 사적인 관계 속에서 조차 항상 불안에 떨며 자기 검열을 죽을 때까지 하고 살아야 하는 여성의 삶은 그래서 너무 피곤하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넘어감을 감사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