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5-08-31 14:02
[80호] 이달의 인권도서
 글쓴이 : 김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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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
-1부 고전에서 읽는 세계 인식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신영복 / 돌베개 / 2015 / 발제 : 김규란

1989년 처음 성공회대학에 왔을 때 학교는 작고 교수는 적어서 전공도 아닌 강의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중에서 고전강독과 정치경제학을 오래 강의했습니다. 정년퇴임 후에는 <인문학 특강> 한 강좌만 강의했습니다. 그동안의 강의와 내가 낸 책, 그리고 발표한 글 중에서 학생들과 공유할 만한 것을 뽑아서 교재로 만들고 그 글들을 함께 읽고 토론하는 수업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이번 학기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강의를 하지 못합니다. 나의 강의를 수강하려는 학생들에게 미안합니다. 그래서 강의 대신 책을 내놓기로 했습니다.
이 책은 이미 출간된 책과 발표된 글을 교재로 강의한 것이기 때문에 자연히 중복되는 내용이 많습니다. 양해바랍니다.

방랑하는 예술가
“이론은 좌경적으로 하고, 실천은 우경적으로 하라.” 20년, 30년 복역한 장기수 할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우경적, 좌경적 의미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만, 우리는 이 대목에서는 현실과 이상이라는 개념과 대비할 수 있습니다. 좌와 우는 칼 같은 적대적 의미로 통용되는 것이 우리 현실입니다.
실천을 우경적으로 하라는 까닭은 아마 일이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러 사람과 더불어 일해야 합니다. 이론을 좌경적으로 하라는 의미는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를 지양하여 보다 나은 미래로 변화시켜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분명히 해 두어야 합니다. 실천과 이론은 함께 갑니다. 실천의 경험을 정리하면 이론이 됩니다. 이 이론은 다음 실천의 지침이 되고 동시에 그 진리성이 검증되면서 이론의 발전으로 이어집니다. 좌와 우도 다르지 않습니다.

톨레랑스에서 노마디즘으로
『논어』의 ‘군자화이부동(君子和而不同) 소인동이불화(小人同而不和)’의 일반적 해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군자는 화목하되 부화뇌동하지 않으며, 소인은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화목하지 못한다.” 이 풀이는 여러 가지 면에서 올바른 해석이 못 됩니다.
우선 화(和)와 동(同)을 대비(對比)로 읽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 화동 담론이 춘추전국시대 유가 학파의 세계 인식이란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화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꽌용과 공존의 논리입니다. 반면에 동은 지배와 흡수합병의 논리입니다.그런 의미에서 화와 동은 철저하게 대비를 이루고 있습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읽는 것이 옳습니다.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고 하지 않으며, 소인은 지배하려고 하며 공존하지 못한다.”
평화 공존을 주장하고 흡수합병이라는 패권적 국가 경영을 반대하는 유가 학파의 정치사상이 화동 담론입니다. 이는 또 우리의 통일 담론과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점은 선이 되지 못하고
『맹자』에서 곡속장의 ‘이양역지’부분입니다. 제나라 선왕이 혼종 때 소 대신 양을 제물로 바친 그러한 이야기입니다. 벌벌 떨면서 죄 없이 사지로 끌려가는 소가 불쌍해서 바꾸라고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양은 불쌍하지 않다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소를 양으로 바꾼 이유는 양은 보지 못했고 소는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맹자의 해석이었습니다. ‘본 것’과 ‘못 본것’의 엄청난 차이에 관한 것입니다. 본다는 것은 만남입니다.
인간관계는 사회의 본질입니다. 사회에 대한 정의가 많지만, 사회의 본질은 ‘인간관계의 지속적 질서’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 사회의 인간관계는 대단히 왜소합니다. 인간관계가 지속적이지 않습니다. ‘이양역지’를 통해서 확인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우리시대의 인간관계와 사회성의 실상입니다.

잠들지 않는 강물
『노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 한 꼭지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노자가 강물을 최고의 선이라고 하는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수선리만물(水善利萬物), 유수부쟁선(流水不爭先), 처중인지소오(處中人之所惡).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며, 다투지 않고, 흐르는 물은 선두를 다투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노자』에는 도와 물, 그리고 민초가 같은 개념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처럼 약하고 부드러운 물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유능제강(柔能制剛)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제왕을 이긴다는 민초의 정치학입니다. 물은 궁극적으로 ‘바다’가 됩니다. 그리고 어떠한 것도 대적할 수 없는 압도적 위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물은 ‘하방연대(下方連帶)’의 교훈입니다.
끝으로 당부하고 싶은 것은 연대는 전략이 아니라 삶의 철학이라는 사실입니다. 산다는 것은 사람과의 만남입니다. 그리고 사람들과의 만남이 연대입니다. 관계론의 실천적 버전이 연대입니다.

『담론』은 '고전'과 '인간'이라는 두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동양고전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 그리고 만남을 통한 인간 이해와 자기 성찰입니다. 발제한 1부는 ‘고전’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81호 때는 ‘인간’에 관한 이야기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그 전에 『담론』 을 읽어보시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