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12-01 11:29
[71호] 여는 글 - 겨울 앞에서
 글쓴이 : 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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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식 l 공동대표

오늘은 수능이 몰고 온 한파로 온몸이 움츠려들고, 만나는 사람마다 “어, 추워”가 인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음은 그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너무 추운 날입니다.

오늘 대법원은 2009년 대규모 정리해고를 당한 쌍용차 노동자 153명의 해고무효 확인소송 상고심에서  원고들이 승소했던 원심을 파기해 버렸습니다. 대법원은 너무너무 차가운 판결을 내렸습니다. “정리해고는 유효하다”는 이 소식에 한동안 가슴이 먹먹해 꼼짝할 수가 없었습니다. ‘혹시나’의 기대가 크진 않았지만 ‘역시나’의 충격은 설국열차 밖의 모습만큼 차갑습니다. 오늘이 해고 2002일째 되는 날입니다. 그동안 25명이 죽고 손배 47억에 이자만 9억, 110억원의 보험사 구상권 청구, 도대체 이 나라는 누가 주인일까? 고등법원에서 회사 측이 회계조작을 하고, 정리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다하지 않았기에 해고가 부당하다고 판결했을 때 근거 없는 희망에 벅차했던 건 간절함과 애절함이 너무 컸기 때문이리라. 대법관과 법원장 출신 19명의 변호인단만으로도 해고 노동자들을 위압하기에 충분했지만, ‘정의’에 일말의 기대감을 가질 수밖에 없던 그들이기에 허탈함은 매우 클 것입니다. 쌍용차 노조는 “대법원은 회사의 주장을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은 꼼꼼함만 보였을 뿐, 해고자들의 주장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대법원은 자본의 흥신소로 용역을 받아 신속하게 처리했을 뿐”이라며 분노합니다.

 노동자에게 해고는 삶 자체를 위협하는 일입니다.  해고가 사회적 살인 행위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

 공교롭게도 11월 13일 오늘은 22살의 재단사 전태일열사가 44년 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청계천변 평화시장 앞에서 분신한 날입니다. 1970년 근로기준법은 있으나 마나 하는 법이였다면 2014년 근로기준법은 자본을 위한, 자본에 의한 법임을 오늘 판결이 말하는 듯합니다.
 
전태일 열사가 준수하라고 외쳤던 근로기준법은 1953년에 만들어진 법입니다. 하종강 선생은 "1953년에 만들어진 법이 지금보다 더 좋은 법이었다"라고 말합니다. 예컨대 공무원?교사 노조를 모두 인정할 뿐 아니라, 노동조합의 정치 활동 금지 조항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노동법은 노동과 노동자를 자본의 탐욕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 근본 이유입니다. 그러나 만들어 진지 61년이 지난 지금 노동법은 친기업 친정부 친자본의 첨병이 되고 있습니다. 노동자 보호는커녕 노예노동을 정당화하는 반노동의 법이 돼 가는 듯합니다.
어쩌다 이지경이 되었는지 반성할 기력조차 없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전태일 열사 추모 44주기가 처절하게 애통하고 서글픈 까닭입니다.

“과거 전태일은 모두를 살리고자 먼저 죽었지만, 지금은 다들 개인적으로 소멸해간다. 이런 현실은 결국 자본이 유도한 것이다” 홍헌호(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인권교육을 하면서 인권이 사회변화의 원동력임을 설명하기 위해 가끔 전태일 열사 사진을 보여줍니다. 며칠 전 복지관련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한 인권교육에서 청계천 전태일 동상 사진을 보여주며 누군지 아느냐고 물었더니 다들 모르는 눈치입니다. 한분이 알겠다며 불쑥 내뱉은 한마디 “이승복!”
......... 아! 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