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6-13 14:54
[66호] 이달의 도서
 글쓴이 : 섬균
조회 : 7,920  

28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3
발제 : 최민식

몹시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화양] 28일!
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6명으로 5명의 인간과 1마리의 개다. 이들은 모두 마을에 퍼진 괴질에 걸리지 않는 항체를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이다. 항체를 가진 이들이 주인공인 것처럼 책은 정체불명의 무서운 괴질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치밀한 묘사와 현실감을 통해 그런 상황에 갇힌 사람들의 이야기다.


질병재난을 다룬 서사에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 무능한 정부와 유능한 영웅. 우리는 그동안 유능한 영웅에만 초점을 맞췄고, 그 속에서 식상함을 느껴왔다. 정유정의 28이 출간된 시기에 내용이 비슷해 보이는 영화 <감기>가 개봉을 했다. 두 작품의 정부는 여전히 무능했다. 그렇다면 유능한 영웅은? 영화와 책은 여기서 갈렸다. 영화의 영웅은 당연히 유능함을 뽐냈지만 책은 유능한 영웅을 전면에 세우지 않았다. 아니, 영웅은 없었다.
『28』은 ‘붉은 눈’ 이라는 인수공통전염병이 퍼진 ‘화양’이라는 가상의 수도권 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눈이 붉게 변하는 괴질은 손 쓸 시간 없이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 괴질은 ‘개가 개에게, 개가 사람에게, 사람이 개에게, 사람이 사람에게’ 감염시킬 수 있었다. 무능한 정부는 ‘개가 사람에게’ 감염시킨다는 얘기만을 부각시켜 화양의 애완견 번식 농장과 동물보호소 등을 폐쇄 시키고 감염된 개들을 살 처분하기로 결정한다. 개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공공의 적이 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의 눈은 붉게 변해갔고 정부는 화양을 고립시킨다. 전염병보다 더 큰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정부가 고립시킨 화양은 무정부 상태로 변해간다. 질서유지를 위해 존재하던 경찰도 괴질에 걸렸고, 괴질이
심해지자 군인도 철수했다. 살인, 강간, 방화, 약탈. 사람들은 범죄를 저질렀다. 도시는 착하게 사는 사람이 더 이상할 것처럼 변해갔다. 범죄는 괴질보다 빠르게 번져갔고, 모두가 뜨겁게 미쳐갔다. 착한 사람은 두려움에 미쳐갔고, 나쁜 사람은 자신의 악(惡)함을 감당할 수 없어 미쳐갔다.
-국지혜 (협성대 문예창작학과 3학년)

초반은 조금 참을성 있게 넘길 필요가 있다. 작품은 수의사 재형, 구급대원 기준, 신문기자 윤주, 간호사 수진, 공익근무요원이자 살인마인 동해, 그리고 투견이었던 링고의 눈을 통해 지옥으로 변해가는 화양을 그려내는데, 이들의 소개에 초반 100쪽가량을 할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초 발병자가 난 이후부터 이야기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하면 그 관성을 받아 나머지 400쪽이 숨 가쁘게 넘어간다. 한국 소설 중에서 이토록 매력적인 페이지터너(page turner·책장이 술술 넘어갈 정도로 재미있는 책)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이야기 전개 방식도 흥미롭다. 재형을 비롯해 소설을 풀어가는 6개의 시선이 서로 교차되며 하나의 사건을 다각적으로 보여준다. 이를테면 링고와 기준의 격투에서 링고와 기준의 시선,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재형과 윤주의 시선이 교차되며 상황을 좀더 입체적으로 만든다. 활자화된 영상을 보는 느낌이다. 책장을 덮고 나면 불타는 도시로 변한 화양, 그 속에서 절규하는 사람들의 외침이 들리는 듯하다.
- 황인찬 동아일보

"빨간 눈은 지옥 불처럼 화양을 태웠다"작가는 "몇 해 전 구제역 파동 때 돼지 생매장 동영상을 보고서 하룻밤 사이에 이 소설의 시놉시스를 완성했다"고 밝혔다. 출구가 막힌 채 봉쇄된 화양의 상황은 1980년 5월 광주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도시를 빠져나가려는 차량 수백 대가 바리케이드를 사이에 두고 경찰과 대치하는 장면, 시청광장에서 당국 규탄 집회를 여는 시민들, 그런 시민들을 총검으로 진압하는 공수부대원들, 자위적 차원의 무장을 주장하는 시민들과 어디까지나 비폭력 평화시위를 부르짖는 이들, 그리고 행진하는 시민들을 향한 헬기의 기총소사까지…."화양에서 일상을 앗아간 세상은 화양을 잊은 것 같았다. 죽은 자를 땅에 묻듯, 시간과 망각 속에 화양을 매장해버린 후 자신들의 일상을 영위하고 있었다. (…) 빨간 눈은 지옥 불처럼 화양을 태웠다. 용케 불길을 피한 이들은 굶어 죽거나, 얼어 죽거나, 다른 사람들의 손에 죽었다."소설 말미에서 화양의 28일을 총괄하는 이 대목은 어쩐지 1980년 5월,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신음하던 광주 시민들의 심사를 대변하는 듯 읽힌다.
-최재봉 기자 한겨레


마크 롤렌즈는 그의 저서 <동물의 역습>에서 평등을 이렇게 정의 했다.
“도덕과 무관한 특성에 따라 차별하지 않는다.”
“종의 다름이 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정당화할 수단이 되는가?” -작가의 말 P 493
‘인간에 대한 희망’의 이야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의 이기심으로 죽어간 동물들에게 많은 빚지고 있는 이야기기도 하다. -작가의 말 P494

살아 있는 모든 것은 그 자체로 존제의 타당성을 지닌다. -정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