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3-27 09:36
[64호] 이달의 도서 - 두 개의 별 두개의 지도
 글쓴이 : 섬균
조회 : 8,786  

두 개의 별 두 개의 지도
- 다산과 연암 라이벌 평전 1탄 -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4
발제 : 박영철

? 목차
1장 물과 불
? 파동의 입자
2장 기묘한 ‘트리아드’
- 연암고 다산, 그리고 정조
3장 문체반정
? 18세기 지성사의 ‘압축파일’
4장 「열하일기」 vs 「목민심서」
- 유쾌한 ‘노마드’와 치열한 ‘앙가주망’
5장 진검승부
? 패러독스 vs 파토스
6장 두 개의 별, 두 개의 지도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열하일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고미숙은 “연암과 다산은 마치 평행선처럼 나란히 한 시대를 가로지른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18세기 조선이라는 같은 시대에, 같은 공간에 살면서도 둘은 서로에 대해 언급하지도, 만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질문은 10년 만에 새로운 입구가 되어 『두개의 별 두개의 지도』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고미숙은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람의 기질을 사주명리 분석을 기반으로 살펴보며, 18세기 조선의 지성사를 새롭게 조명해낸다.<책소개>

연암과 다산, 둘은 참 다르다. 한 사람은 거구에 비만이고, 다른 한 사람은 작고 단단하다. 내뿜는 아우라와 카리스마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이 신체적 차이만큼이나 둘의 인생궤적 또한 판이하다. 당파나 이념의 차이는 차라리 부수적이다. 문체와 세계관, 사상과 윤리 등의 차이는 마치 평행선처럼 팽팽하다.




어쩜 이렇게 다를 수가? - 이 질문은 ‘그들은 왜 만나지 않았을까?’라는 질문보다 훨씬 심오하다. 후자는 들의 동일성과 연속성을 전제하지만, 전자는 그들의 차이와 이질성에 주목한다. 이 질문은 두 가지 효과를 불러온다. 하나는 경이로움이다. 동일한 연대기안에 이렇게 상이한 기질과 벡터를 지난 천재가 공존했다니, 진정 놀랍지 않은가. 조선왕조는 물론이고 전세계 지성사에서도 이런 팽행한 맞수는 실로 드물다. 다른 하나는 권위로부터의 해방이다. 연암과 다산이 하나의 이미지로 오버랩되면 무지하게 엄숙해진다. 엄숙주의는 권위를 낳고 권위는 차이를 봉합한다. 거기에서 우상이 탄생한다. 그런식의 우상화는 연암과 다산, 모두를 박재화시켜 버린다. 고로, 가차없이! 타파되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연암과 다산의 생애를 하나의 평면에서 동시적으로 조망해야 하는 이유다. 신기하게도 그 동안 연암과 다산은 따로 논의되었다. 그렇게 연결하려 애쓰면서도 왜 늘 따로 이야기한 것일까. 혹시 둘이 지닌 불연속성과 이질성을 무의식적으로 감지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나아가 그걸 감당, 아니 직면하기 두려웠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 모든 질문들이 그렇듯이, 연암과 다산이라는 화두는 결국 우리 자신의 발밑을 겨눈다. 즉 이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과정은 궁극적으로 우리 자신을 꼼짝없이 가두고 있는 인식의 봉인-특히 차이의 봉합과 전통의 우상화에 대한-을 해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입구 : 그들을 둘러싼 세 개의 미스터리」-중에서>

우리는 진정 복된 시대를 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나의 별도 아닌 두 개의 별이 우리의 창공을 비추고 있으니 말이다. 두 개의 별은 두 개의 지도다. 두 지도는 리듬과 강밀도가, 행로와 과정이 전혀 다르다. 이 다름에 눈뜨는 그만큼 우리의 삶은 풍요로워질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사람은 가슴마다 라파엘을 가지고 있다”(마르크스)는 말이 맞다면, 이 지도를 길잡이 삼아 우리 또한 별이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