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3-03 15:42
[63호] 여는 글 - "눈과 겨울 그리고 실습생"
 글쓴이 : 섬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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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겨울 그리고 실습생




최민식 l 공동대표



눈 내리는 날 / 이해인

눈 내리는 겨울 아침
가슴에도 희게 피는 설래이는 눈 꽃

오래 머물지 못해도
아름다운 눈 꽃처럼
오늘을 살고 싶네

차갑게 부드럽게
스러지는 아픔 또한
노래 하려네

이제껏 내가 받은
은총에 분량 만큼
소리없이 소리없이
쏟아지는 눈
눈 처럼 사랑하려네

신의 눈부신 설원에서
나는 기쁨 뒤집어 쓴
하얀 눈사람이네


겨울사랑 / 박노해

사랑하는 사람아
우리에게 겨울이 없다면
무엇으로 따뜻한 포옹이 가능하겠느냐
무엇으로 우리 서로 깊어질 수 있겠느냐

이 추운 떨림이 없다면
꽃은 무엇으로 피어나고
무슨 기운으로 향기를 낼 수 있겠느냐
나 언 눈 뜨고 그대를 기다릴 수 있겠느냐

눈보라 치는 겨울밤이 없다면
추워 떠는 자의 시린 마음을 무엇으로 헤아리고
내 언 몸을 녹이는 몇 평의 따뜻한 방을 고마워하고
자기를 벗어버린 희망 하나 커 나올 수 있겠느냐

아아 겨울이 온다
추운 겨울이 온다
떨리는 겨울 사랑이 온다




올해 2월은 춥지 않았습니다.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너무 많이 내렸습니다. 눈 무게를 못 이긴 비닐하우스며 축사며 공장이며 강당이며 지붕이 무너져 내려 많은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새삼스레 자연현상에 대한 경외를 보내며 책임을 물려야할 누군가를 찾기에 혈안이 됩니다. 대학 신입생 9명을 포함해 10명이 죽고 105명이 부상한 마우나리조트 강당(체육관) 붕괴사고는 눈이 준 충격입니다. 대형사고라고 정부도 언론도 정치권도 경찰도 신속하게 나서고 큰 관심 속에 이런저런 사고원인과 대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 사고 일주일전,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공장지붕 붕괴로 고등학교 실습생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폭설사고로 분류되는 이 두 사고는 같은 듯 다른 원인들이 내제해 있습니다. 이 두 사고의 공통점은 눈과 사망피해자들이 올2월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19세 젊은이란 것입니다. 그리고 인재라는 것입니다. 강당붕괴 피해자들은 사고 사흘 만에 합의하고 장례를 치렀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을 이틀 앞두고 야근하다 숨진 실습생은 사고 10일이 지나도 장례는커녕 사고합의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사고 현장으로 총리가 달려가고, 분향소에 정치인들이 기자들이 북적이고, 그래서 사회가 보인 애도의 분위기는 야근에 내몰린 고교실습생의 죽음과 너무 다릅니다.
강당붕괴사고의 대책으로 학생회 주관 행사를 줄이겠다는 당국의 어이없는 발상이라도 신속히 내놨지만, 현장실습이란 명목으로 노동착취에 내몰린 현장실습 고등학생들에 대한 대책은 깜깜무소식입니다.
한편으론 아까운 청춘들의 눈 때문에 희생당했다고 비통해 합니다. 눈 때문이라는 데 초점을 맞춘 사회적 시선이 낯설지 않은 것은 사고에 대한 본질을 꽤 뚫어 보는 나의 혜안이 부족한 탓일 것입니다. 자연재해인 폭설에 의한 사고로 지붕붕괴까지 인정하더라도 야근까지 해야 하는 고교생의 죽음은 분명 아닙니다. 이 사회의 책임입니다. 약자의 삶에 익숙하도록 강요하는 사회는 응당 대가를 치르는 것이 이치입니다. 그것도 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