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2-09-10 14:03
[46호] 책소개 - 긍정의 배신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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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200만 내지 300만 명의 여성들이 다양한 단계의 유방암 치료를 받고 있어 옆에서 걱정하는 친척까지 합치면 유방암 관련 시장이 꽤 큰 규모에 이른다. 유방암 시장에서 핑크색 등을 강조하는 것은 긍정적인 인상을 주기 위해서일 것으로 이해되는 반면 곰 인형, 크레용 등 유아적인 비유가 사용되는 이유는 이해하기 어렵다.
긍정적 사고는 유방암을 통과의례로 변형시켜 버린다. 유방암은 맞싸워야 할 부당함이나 비극이 아니라 폐경이나 할머니가 되는 것처럼 인생 항로의 정상적인 표지판이 된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주류 유방암 문화 속에 있는 모든 것이 병을 길들이고 병을 정상으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1981년부터 2003년까지 다운사이징 여파로 미국에서는 약 3000만 명의 전업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에서 회계 담당자까지 모든 사람이 너나 할 것 없이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새로운 현실을 동기 유발 산업은 교정할 수 없다. 현실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고치라고 제안하는 것뿐이다.
정리 해고자를 대상으로 한 이벤트들은 빨리 기운을 차려서 착실한(긍정적이고 부지런한) 구직자처럼 행동하라고 교묘하게 부추긴다.
정리 해고 후 남은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가장 대중적인 기법은 ‘팀 빌딩(Team building)'인데 정리 해고라는 기업의 결정 자체가 팀이라는 개념을 조롱하고 있는 가운데, 남은 사람들은 미시적 팀 수준에서 집단의 목표의식과 동료애를 찾으라고 내몰렸다. 팀 빌딩은 동기 유발의 다른 형태다.
정리 해고된 사람들은 가두시위에 나서거나, 정치적 신념을 바꾸거나, 자동화 기기를 들고 직장에 나타나지 않는다. 정리 해고의 제물이 된 한 임원은 뿌듯한 자부심을 드러내면서 “나는 부정적인 감정을 극복했습니다. 그건 역기능을 일으킬 뿐이거든요.”라고 말했는데 그들은 자신의 미래에 관한 계획은 점점 덜 세우게 될 것이며, 대신에 자기 마음을 제어할 수만 있으면 무한한 힘을 얻게 된다는 세계관이, 종교에 가까운 신념 체계가 주어질 것이다.
기독교의 탈을 쓴 긍정적 사고 긍정신학 등장 : 초대형 교회의 설교는 대개 동기 유발 강연과 유사하게 성공적인 삶을 위한 방법, 좋은 마음가짐을 유지하라. 부정적이거나 신랄한 태도를 버려라. 단호히 결심하라. 떨려버리고 앞으로 나아가라 등이다.
하느님은 나의 속도위반 딱지를 해결해 주고, 식당에서는 좋은 자리를 찾아 주고, 내가 책 계약을 딸 수 있도록 해 준다. 이런 사소한 과업을 위해 하느님한테 기원하는 것을 보면 필요 이상으로 공손한게 아닌가 싶은 생각마져 들 정도다. 우리의 마음이 자석처럼 움직여 시각화한 모든 것을 끌어당긴다는 끌어당김의 법칙을 일단 받아들이면 인간이야말로 전능한 존재가 아닌가?
초대형 교회들은 소비자의 취향과 욕구에 발맞추기 위해 십자가, 첨탑, 예수의 모습 등 전통적인 모든 상(像)과 상징을 치워버렸고, 취학 전 교육과 방과 후 교육, 스포츠, 10대 활동, 갱생 프로그램, 취업 지원, 건강 박람회, 매 맞는 여성 및 이혼한 사람들을 위한 지원 그룹 등을 제공하는 종합 서비스 센터로 변모했다. 미국 교회들은 복지 혜택이 충분한 국가에서라면 세속적인 사회복지 당국이 해야 할 사업을 대신하고 있다. 심지어 기독교의 핵심 교의를 긍정적 사고로 대체하였다. 긍정적 사고가 성서에 근거한 진실이거나 성서에 의해 지지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고객’을 만족시키기 때문이다.
긍정심리학은 심리학 전문가들 자신의 세속적인 문제 해결책을 제시했다. 학자들은 치료에서 코칭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환자를 치료하는 작업에는 아무 지원이 없는 반면 아픈데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더 큰 행복과 낙천주의, 개인적 성공으로 향하도록 코칭하는 일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놓여 있다.
1920년대 대공황을 앞둔 시기에는 양극화가 심해지자 부자들의 무절제와 빈자들의 비참함에 격분한 노동운동가와 급진적 활동가들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21세기는 아주 성격이 다른 다양한 종류의 이론가들이 정반대의 메시지를 퍼뜨리고 있다. 그들은 고도로 불평등한 이 사회에는 아무 문제가 없으며, 노력할 의사가 있는 사람의 삶은 조만간 훨씬, 훨씬 더 좋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이기적인 개인들의 경제 행위가 종극적으로는 공공복지에 기여한다는 애덤 스미스의 생각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듯하다. 각 개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더 욕심을 부려 빚을 늘리는 것은 자살행위라는 점을 이제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경제에 시동을 걸 수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웅크리고 앉아 조금이라도 돈을 덜 쓰려고 한다. 손쉬운 신용거래는 사라졌고, 무분별한 지출은 이제 파괴적인 행위로 보인다.

※편집자주 : 「긍적의 배신」의 내용을 독서토론모임에서 요약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