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법재판소 유감!
박영철
오늘도 또 하루가 지나갑니다.
너무도 명백한 사실관계가 있는데 뭐 때문에 헌법재판소가 판결을 못 하고 있는지 미치겠습니다. 온 국민이 답답하다가 두려웠다가 분노했다가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교차합니다.
사실 헌법재판소가 지난 3월 17일까지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평의에만 집중한다고 했을 때, 당연히 그 전에 선고하겠거니 예측했습니다. 그런데 17일이 지나고 이 글을 쓰고 있는 3월 27일까지도 선고기일조차 고지하고 있지 않습니다. 4월로 넘어간다는 얘기도 나오고 급기야 4월 18일까지 판결을 미뤄서 2명의 헌법재판관이 임기를 마치게 되면 윤석열 탄핵 심판은 파국을 맞이할 것이라는 상상하기조차 끔찍한 소문까지 나돌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에 대한 국민적 감정은 이제 비판을 넘어 존재 자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눈 윤석열보다 오히려 이를 방치하고 있는 헌법재판소에 대한 원망과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여론까지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국민을 분노하게 한 사실은 헌법재판소의 태도입니다.
헌법재판소는 윤석열 판결을 최우선으로 하겠다고 국민 앞에서 약속한 바 있습니다. 계엄 이후 혼란을 빠르게 종식해야 한다는 열망을 반영한 것으로 모두의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헌법재판소 스스로 국민과 한 약속을 저버렸습니다. 어떠한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말입니다. 단 한 번의 핑계조차 내놓지 않고 지금까지 묵묵부답으로 버티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주말을 반납하고 퇴근시간 이후 일상을 접고 수개월째 광장을 지키며 내란 종식과 민주주의를 지키자고 온몸을 바치고 있는데 헌법재판소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정치적 고려만을 움켜쥔 채 눈치 보기만을 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헌법재판관들에게 거창한 역사적 사명의식(?)까지도 바라지 않습니다.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와 같은 결기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 같은 국가적 비상 상황에서 정시에 퇴근하고 주말이면 휴식하고 하루 평의 1시간 정도를 진행하는 것이 언론에 보도될 정도의 ‘헌법재판소의 한가함’은 정말 아니라고 봅니다. 일상을 반납한 시민들에 대한 일말의 연민이라도 있다면 이래서는 안되지요.
헌법재판소가 어떻게 운영되는지는 어떠한 복잡한 내부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헌법의 재정권자인 국민으로서는 지금 이 사태를 도저히 납득할 수도 용인할 수도 없습니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헌법재판소는 형사재판을 하는 곳이 아닙니다. 헌법에 대한 재판입니다. 헌법정신을 위배했는지를 판단하고 헌법을 수호할 의지가 있는지를 판단하는 재판입니다.
윤석열 탄핵심판은 너무도 명징한 사실관계가 있습니다. 윤석열이 12・3 계엄을 통해 헌법을 앞장서서 무시하고 파괴한 사실을 TV 생중계로 전국민이 확인했습니다. 헌법재판소 탄핵심리과정에서 윤석열이 자신의 입으로 헌법을 이행할 의지가 일도 없다는 것을 온전히 드러냈습니다. 그래서 파면은 단언컨대 반드시 이뤄집니다.
그런데 무엇이 이토록 헌법재판관들의 입을 막고 있는지 지금 이 상황을 납득할 수 없습니다.
헌법의 제정권자는 국민입니다. 헌법재판소를 규정하고 있는 87년 헌법도 바로 오늘 같은 전국민적 항쟁을 통해서 개정한 헌법입니다. 그래서 헌법재판의 기준은 언제나 국민의 의사가 무엇인지가 가장 중요한 판단기준이 됩니다.
지금 전국민의 요구와 의사는 명백합니다.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눈 자를 파면하라는 것이 주권자의 준엄한 명령입니다. 그 누구도 이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헌법과 법률 위에 군림할 수 없습니다.
헌법재판소와 재판관들이 지금 두려워해야 할 것은 눈앞에 보이는 협박(?)이 아닙니다.
민주공화정을 지켜왔던 수많은 민중들의 피와 땀으로 일궈낸 민주주의가 무엇을 명령하는지, 헌법적 명령이 무엇인지를 더 크게 두려워해야합니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판단하는 것이 지금의 유일한 판단기준임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헌법재판소도 지금의 혼란을 종결하는 유일한 길이 즉각 파면에 있음을 분명히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미 늦었지만 이렇게 허망하게 시간만을 보낼 것이 아니라 밤을 새워서라도 평의를 하고 결론을 내겠다는 의지라도 국민에게 보여야합니다.
더 이상의 지연은 헌법재판소 존립자체를 부정당하는 현실로 반드시 이어질 것입니다. 윤석열 탄핵심판은 2025년 헌법재판소의 운명을 가르는 또하나의 심판이 될 것입니다.
※ 박영철 님은 울산인권운동연대 상임대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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