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롭지 않은 여자들
임소연 저 / 민음사 2022 / 정리 : 이영환
과학의 역사 속에서 남성은 지식의 탐구자이자 지식이 탐구해야 할 대상으로 그려졌지만, 여성은 과학자로도 과학의 대상으로도 오롯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영원히 과학과 적대하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비판만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 그저 내버려 두기에 과학은 우리의 삶에 너무 큰 영향을 미친다. 난자의 능동성을 발굴한 연구에서 보듯 여성의 몸을 무지에 남겨 두는 것은 우리의 선택지가 될 수 없다. - p13
젠더라는 신화는 내가 가진 시간과 돈을 어디에 투입할 것인가, 어떤 직업을 선택할 것인가, 무엇을 내 인생의 중요한 가치로 둘 것인가 등 삶의 모든 순간에 개입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삶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이 신화는 지금껏
이달의 인권도서
과학적인 방법론과 언어로 충분히 규명되지 못했다. 젠더에서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신화의 영역에 있는 젠더가 보다 적극적으로 과학의 영역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모두가 각자의 모자이크 뇌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은 편안하고 즐거울 것이다. - p48
출간을 앞두고 이 책의 핵심 내용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입덧의 생물학적 기제를 설명하자 한 청중이 질문했다. “남편도 입덧한다고 하는데, 이 경우에 입덧의 원인은 사랑인가요?” 대답은 “그것은 입덧이 아닙니다.”였다. 입덧은 임신한 여성의 태반에서 비롯되는 물질적 현상이며, 인류의 절반만이 임신할 수 있는 몸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수많은 여성의 임신을 통해 인류가 유지됐음에도 임신은 여전히 신비로운 영역에 맡겨져 있다. 임신에 따른 몸의 변화는 모성으로 감내하기보다 과학으로 이해되어야 할 영역이다. 그 무엇보다 여성의 건강과 삶의 질을 위해 임신은 더 이상 신비로워서는 안 된다. - p72
여성을 차별하지 않는 인공지능을 만들기는어렵지만, 여성을 차별하는 인공지능을 만들기는이렇게나 쉽다. 인공지능이 객관적이라는 신화를깨는 일은 더더욱 어렵지만, 인공지능이 객관적이라는 믿음을 유지하기란 너무나 쉽다. - p110
특정 분야의 과학자가 되지 않는다면 광대한 과학기술의 세계를 어디에서부터 탐색해 나가야 할까? 나는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이 ‘아이 같은 순진무구한 호기심’에서만 출발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연과 사물이 나의 몸, 나의 삶과 복잡하게 얽혀 있음을 인지하는 어른의 때 묻은 현실 감각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 책에서 함께 보았듯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는 자연과 사물의 세계와 나의 연결 지점에 뿌리내리고 있다. 저마다 출발점은 난자 냉동에 관한 고민일 수도 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받았던 쌍꺼풀 수술일 수도 있으며 화장품 광고만 띄우는 SNS일 수도 있다. 그야말로 엉망진창인 나의 삶에서부터 시작하는 과학기술이다. - p192
“과학은 적도 신도 아니라 우리 곁의 친구라고 말하는 매력적인 탐구. 이 책은 과학이 절대적이고 객관적이라는 낡은 믿음을 페미니즘과 여성의 눈으로 다시 살핀다. 여성의 몸, 여성의 경험과 함께하는 뒤죽박죽 과학 이야기를 듣다 보면 지금의 벽을 과감히 뛰어넘는 여성과 과학의 만남을 나 역시 꿈꾸게 된다.”
- 김초엽(『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저자) 추천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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