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12-29 01:33
[180호] 시선 - ‘노란봉투법’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정당한가?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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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봉투법’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정당한가?

편집위


지난 12월 8일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이 방송3법과 함께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되었습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은 국회에서 재의결되려면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노란봉투법은 재석의원 291명 중 찬성 175명, 반대 115명, 기권 1명으로 부결되었다. 당론으로 법안 부결을 정해둔 국민의힘 의석수가 111석이었다. 부결될 수 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그런데 과연 노란봉투법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고, 국회 재의결 과정에서 부결되어야 하는 법이었을까?

‘노란봉투법’이란 이름은 2009년 대규모 정리해고에 맞선 쌍용차 노동자들의 파업과 연관된다. 파업 이후 회사측은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였고, 2013년 12월 수원지방법원은 파업에 참가한 노동자들에게 47억 원의 손해액을 배상하라고 판결한다. 언론을 통해 판결내용을 접한 시민 배춘환씨는 손배가압류로 힘들어하는 노동자들을 돕자며 4만 7천원을 노란봉투에 담아 판결내용을 보도한 시사주간지 시사IN에 보낸다. 시사IN은 배춘환씨의 취지에 공감하여 아름다운 재단과 함께 ‘노란봉투 캠페인’을 시작한다. 그리고 14억 7천 여 만원의 성금이 모아진다. 과거 월급을 현금으로 지급하던 시절 월급봉투가 노란색이었다. 손배가압류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이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낸 이름이다. 2003년 두산중공업 배달호(당시 50살), 한진중공업 김주익(41세) 등 적지 않은 노동자들이 손배가압류의 부담으로 인해 목숨을 끊은 사건들이 있었다.

노란봉투법이라 불리는 ‘노동조합법 2조, 3조 개정안’에는 크게 세 가지 내용이 담겨있다.

첫째, 노동조합의 상대방인 사용자의 정의가 확대하여 하청업체 노동조합에 대한 원청 사용자의 책임을 강화되었다. ‘사용자를 근로자와 명시적•묵시적 근로계약관계를 맺고 있는 자뿐만 아니라, 근로조건에 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포함된다’는 법원의 판례를 근거로 한 것이다.
협력업체의 노동자가 원청의 관리・감독하에 지시를 받으며 일하고 있다면 직접 고용관계가 아니지만, 원청 역시 사용자책임이 있다는 점을 법제화한 것이다.

둘째, 노동쟁의를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불일치’에서 ‘근로조건에 관한 불일치’로 개정하였습니다. 노동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이 헌법상 노동자의 권리이다. 이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이익분쟁뿐만 아니라 권리분쟁 사항도 교섭과 파업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했다.
현행법상 노동쟁의는 ‘노동조합과 사용자 또는 사용자단체간에 임금・근로시간・복지・해고 기타 대우 등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인하여 발생한 분쟁상태’라고 규정되어 있다. 즉 근로조건에 관한 이익분쟁만이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의 대상이 된다고 본다. 해고자복직이나 단체협약 위반에 관한 사항 등의 권리분쟁이나 노조전임자의 조합활동 보장에 관한 사항 등의 집단적 노사관계에 관한 사항은 정당한 쟁의행위 대상이 되지 않는다. 당연히 근로조건에 관한 이익분쟁이 아니므로 노동위원회의 조정대상도 되지 않으며, 이러한 권리행위를 목적으로 하는 파업은 불법이 된다. 이로 인해 노사간의 자주적 교섭에 의하여 해결할 수 있는 사항을 단체교섭이나 쟁의행위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는 노사자치주의를 전면으로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불법파업으로 인한 손해를 법원이 각 배상의무자별로 각각의 귀책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하도록 개정되었다. 지금까지 법원은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채무를 부진정연대채무로 보고 노동조합 및 조합원들 각각에게 파업에 따른 총 손해발생액 전부를 부담시켜왔다. 사용자들이 이를 악용하여 노동조합과 조합원에게 막대한 금액의 손해배상 청구를 통해 노동자 길들이기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불의한 현실을 바꾸고자 한 것이다.
부진정연대채무란 채무자들 주관적 공동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전체 채무를 부담하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파업과정에서 흥분한 A가 파업지침을 어기고 회사의 기물을 파괴하여 손해를 입혔다면, 파업에 참여한 다른 참가자들도 그 손해에 대한 책임을 부담하게 된다. 개정안에서는 이를 구분하여 귀책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하도록 한 것이다.

노동조합법 2, 3조 개정안의 내용은 대부분 법원 판례로 인정되어왔던 것을 법제화하는 측면이 크다. 입법기관(국회)이 사법부(법원)의 판단을 존중하고 있다는 측면에서도 정당성이 있는 개정안이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양곡관리법과 간호법에 이어 또다시 노란봉투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다.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에서 통과된 법률안이 대통령에 의해 번번이 거부되는 모습은 결코 정상이지 않다. 그렇다면 과연 윤석열 대통령의 노란봉투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 이유는 합리적이고 법적 타당성이 있는 것일까?

윤 대통령의 재의요구서를 통해 ▲ 사용자의 정의를 불명확한 개념으로 확대하는 것은 산업현장의 혼란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죄형법정주의에도 위반되며 ▲ 노동쟁의 대상 확대로 사법적 해결보다는 파업 등 실력행사를 통한 문제해결 시도가 증가하여 국민 불편과 국가 경제의 어려움을 불러올 것이며 ▲ 노동조합의 손해배상책임만 부진정연대책임의 예외를 인정하는 것은 형평과 정의에 반하기 때문에 노동조합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한다고 밝혔다.

국회 법사위 전문위원의 노동조합법 개정안 검토보고서에는 법원 행정처의 의견(입장)이 나와 있다.
법원 행정처는 “‘사용자의 범위’ 또는 ‘노동쟁의의 대상’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 여부는 노동조합법의 입법 목적, 노사관계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하여 입법정책적으로 결정할 사항으로 보인다”라는 의견을 밝히고 있다. ‘사용자의 범위’나 ‘노동쟁의의 대상’을 정하는 것은 입법기관의 몫, 즉 국회의 권한이며 이는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다는 입장이다.

손해배상 책임에 대하여도 법원행정처는 “법원이 각 손해의 배상의무자별로 귀책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범위를 정하도록 하는 내용은 부진정연대책임을 부정하여 근로자 개인에게 과다한 배상책임이 부과되는 것을 막고자 하는 취지로 입법취지에 공감할 수 있으며, 입법정책적으로 결정할 사항이라는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다. 법원은 오히려 부진정연대책임의 예외를 인정하는 것이 형평과 정의에 부합한다고 보고 있다.

사법부는 노동조합법 개정안과 관련하여 가지고 있는 기본입장은 입법정책적으로 결정할 사항으로, 입법기관인 국회가 헌법이 부여한 입법권한을 가지고 개정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사법부의 판단을 법제화하는 합리적 개정안에 대해 자의적 해석으로 거부권을 행사한 윤대통령의 행위에는 입법부와 사법부에 대한 존중을 찾아볼 수가 없다. 더불어 노동자들에 대한 편향적 시각을 그대로 드러낸 사건이다.

대통령에게 부여된 권한은 너무 쉽고 자의적으로 남용되고 있다. 대다수 농민들의 염원이었던 ‘양곡관리법’, 간호사들의 간절한 요구를 담고자 했던 ‘간호법’, 노동자의 헌법상 권리를 보장받고자 했던 ‘노란봉투법’은 극히 제한적으로 사용되어야 하는 대통령에게 부여된 ‘거부권’이란 권한 앞에 너무나 쉽게 무너지고 말았다.
그가 바라보는 국민은 따로 있는 듯하다. 다수 국민의 삶을 지키기 위한 제도를 만드는 과정은 멀고 험난하다. 연말의 추위가 유독 더 춥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