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11-29 09:28
[179호] 시선 셋 - 쉼 없는 노동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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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 없는 노동

이세호


우리 집은 내가 어릴 때 동네에서 가게를 운영했다. 기억으로는 쌀, 연탄, 부식 등 생필품을 파는 가게였다. 아침 6시에 문을 열고 저녁 11시에 문을 닫았다. 당시 좋은 점은 과자, 음료수 등이 항상 있으니 먹는 것은 걱정하지 않았다. 불만은 365일 장사를 하다 보니 부모님과 공원이나 유원지에 놀러 간 적이 없고, 가게 문을 닫을 때까지 잘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어른이 되면 장사는 안 하겠다고 다짐했다.

세월이 흘러 성인이 되어 첫 사회생활을 전기계장, 계기등을 파는 도매상에 근무하게 되었다. 보통의 직장은 오전 9시에 시작하여 오후 6시에 마치고 토요일은 12시에 마치는 것이 일상인 줄 알았는데 이 회사는 오전 8시 30분에 시작하여 오후 7시 30분에 마치고 토요일은 오후 3시에 마쳤다. 그 당시 다른 직장을 다니는 친구들과 이야기해 봐도 기본 OT 때문에 일찍 마치는 회사는 없다고 했다. 2년 정도 다니다가 자격증 공부한다고 회사를 그만두었다. 얼마 후에 IMF가 터졌다.
IMF 기간에 잠시 알바를 하려고 주방용품점에 근무를 하게 되었는데 그곳의 근무시간은 오전 8시 30분부터 저녁 8시 30분까지이며, 한 달에 쉬는 날은 공휴일 상관없이 1, 3주 일요일만 쉬었다. 그렇다고 돈을 많이 주는 것도 아니었다. IMF 당시라서 초보자에게 월급은 최저 시급을 준 것으로 기억한다. 3년을 근무하니 중소기업 월급만큼 받았다. 그때는 세상을 탓하기만 하고 돈을 좀 벌면 장사하면 되지 생각하고 열심히 일했다. 내가 고참이 될 때 쯤 우리 가게에 전자제품을 납품하던 직원 친구가 노무사가 되었다며 부당한 노동관계가 있으면 자기가 노동부에 진정서를 넣어주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나는 월급을 만족하게 받고 있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나중에 다른 직원이 우리는 노동혹사를 당하고 있으니 노동부에 고발하든지 아니면 월급을 더 받던지 사장에게 건의하자고 이야기를 했다. 당시 나는 하기 싫으면 그만두면 되지 분란을 일으키지 말자고 했었다, 그때 내 나이 30대 중반이었다.
그 당시에 젊어서 그런지 늦게까지 일하고 늦게까지 술을 마셔도 뒷날 출근하는 데는 지장이 없었고 나름대로 일은 할 만하였다. 그러나 친구결혼식이나 지인들의 경조사를 갈 시간이 없었다. 그때 친구가 한 말이 생각난다. 그렇게 일만 하면 사회생활이 안 되고 세상 돌아가는 것을 몰라서 잃는 것이 더 많다고. 그만두고 일찍 다른 일을 찾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고,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충고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떻게 그 일을 했는지 지금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혼자일 때는 몰라도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이루면 가정을 신경 쓰지 못하고 일에만 얽매이면 어느 누가 좋아 할 것인가?

그 당시 친구가 트레일러 기사를 했는데 월급을 많이 받았다. 그 내막을 보면 일주일에 하루 집에 들어가고 평일에는 차에서 잠을 자야만 그 정도의 월급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차에서 자고 일어나 운전하고 차에서 밥 먹고 다시 운전하고, 여유란 눈곱만큼도 없는 일이다. 단지 친구들 사이에는 서로 자존심 싸움으로 월급을 많이 받는다는 것으로 위안으로 삼은 것 같다. 그 당시 회사들은 근로기준법이 있어도 잘 지켜지지도 않았고 우리도 법을 잘 몰라서 일만 하고 살았다.
몇 년 후, 아파트관리사무실에 근무하게 되니 정말 편했다. 월급은 적어도 하는 일은 예전과 비교하면 그저 먹었다. 육체노동을 조금만 하니 피곤하지도 않고 정시에 퇴근하니 공부할 시간도 생겼다. 같이 근무하던 경비, 미화원분들은 자기에게 부당하다 싶으면 노동부에 찾아가 상담하고, 며칠 후에 사무실로 노동부에서 전화가 오면 나는 대응하기 바빴다. 내가 젊었을 때는 부당해도 참았는데 지금의 어르신들은 참지 않는구나 나도 그렇게 살 걸…….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요즘은 소방점검 및 관리하는 일을 하는데 옛날 직업보다는 임금도 높고 근무시간도 정시출근 정시퇴근이다. 그러나 이 직업의 문제는 소방감지기 오동작으로 인하여 평일 퇴근 후나 주말 쉬는 날에도 관계인에게 전화가 오면 전화응대 및 해결이 안 되면 현장으로 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감지기 오동작은 소리가 나서 시끄럽기도 하고 펌프가 돌고 있을 때 끄지 않을 경우 배관 파손이나 펌프의 임펠라가 손상이 가기 때문에 빨리 정지를 시켜줘야 한다. 낮에는 소리가 경미한데 한밤중에 경종과 비상방송이 울리면 주민들의 항의가 빗발쳐 감당하기가 불가능하다. 처음 소방점검업에 종사할 때는 돈도 많이 받고 점검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하면 할수록 책임감과 앞으로 일어날 일을 생각하면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오래간만에 평일에 쉰다고 하면 업무전화가 불이 나게 와서 쉴 수가 없는 상태가 된다. 또 오작동을 해결하기 위해 현장 출동도 불가피하다. 야간 점검 작업을 하고 낮에 잠을 자려고 하면 전화가 너무 많이 와서 잠을 제대로 잘 수도 없다. 전화기를 끄고 지내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관계인들이 잘 처리하면 문제가 없는데 잘못 처리하면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그렇게도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예전에는 육체노동으로 쉼이 없었고 지금은 항상 휴대전화기 벨에 귀를 기울여야 하니 정신적으로 쉼이 없는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쉼 없이 일을 하면서 돈을 많이 준다고 하면 처음에는 돈 벌 생각에 피곤해하지도 않고 오히려 즐거워할 것이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몸과 정신이 피폐할 것이고 이것은 인간의 기본권, 생존권과 행복 추구권이 위협을 받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저녁이 있는 삶과 행복을 꿈꿀 수 있도록 국가가 많은 법률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동자들은 하루를 일하고 하루 사는 하루살이가 아니다. 하루를 일하고 하루를 보태 내일을 준비하는 불굴의 인생을 산다. 일은 목적이 아니라 쉼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모든 사람은 일을 마치고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고 휴일에는 휴식과 여유 있는 삶이 필요하다.

※ 이세호 님은 울산인권운동연대 운영위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