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09-27 15:22
[177호] 시선 하나 - 느린 폭력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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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폭력

편집위


「일본인 약 80%, 오염수 방류 후 후쿠시마 수산물 “안심”」 며칠 전 인터넷 신문 ‘뉴시스’의 기사 타이틀 제목이다. 일본 보수성향 산케이 신문과 후지뉴스네트워크의 공동여론조사(16~17일)에서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 처리수 바다 방출이 개시됐다. (방류되는 오염수는) 국제적인 안전기준을 밑도는 농도로 희석되고 있다. 후쿠시마현 등 수산물에 대한 가장 가까운 생각은?”이라는 정부의 입장을 포함한 질문에 “안심”이라는 응답이 31.8%, “어느 쪽이냐고 한다면 안심”이 45.6%로 77.4%가 긍정적으로 응답했다는 것이다.
연령대별 응답률이 나의 시선을 붙잡았다. “안심”이라는 응답비율이 50대, 60대, 70대는 20%인데 반해 40대는 31.8%, 30대는 37.6%, 20대는 40.1%였다. “안심”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젊을수록 높은 것이다. 왜 이럴까? 오염수 방류로 인한 피해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커질 텐데……. 젊은 사람들이 더 길게, 더 크게 피해를 볼 텐데…….

한참 동안 고민하다 떠오른 생각은 매주 월요일 아침 ‘상여 시위’를 하는 나아리 주민분들이다. 2014년 8월 25일, 월성 핵발전소와 가장 가까이 살고 있는 경북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주민들은 ‘월성원전 인접지역 이주대책위원회’를 만든다. 주민들이 한수원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데는 39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주민들은 갑상생암 공동소송을 진행 중이다. 그리고 매주 월요일 오전 출근길에 상여를 끌며 장례식을 치른다. 대책위 부위원장을 맡은 황분희씨는 상여시위에 대해 “사는 게 죽는 것과 똑같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 우리는 매일, 매 순간 위험한 방사능에 노출된 채 살고 있잖아.”

‘그렇다. 경험이다.’ 지식의 양보다 삶을 더 깊이 있게 성찰하게 해주는 것은 경험이었다. 나이 드신 분들은 삶의 과정에서 자연이 어떻게 파괴되어가고, 파괴된 자연이 어떻게 인간의 삶 속으로 들어오는지를 체득한 것이다. 이론과 과학이 아닌 체험으로……. 서서히, 느리게, 시나브로 해양 방류된 오염수는 돌고 돌아 내 몸에 쌓여간다는 사실을. ‘느린 폭력’은 자신이 무너져야 비로소 절감된다. 그리고 과거를 돌아보면서 비로소 자신에게 ‘지속적인 폭력’이 가해져 왔음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느린 폭력’은 무섭다. 이미 몸이 망가진 후라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즉각적이지도 극적이지도 않지만, 점점 불어나고 축적되는” 폭력. 롭 닉스 프린스턴대 교수는 ‘서서히 펼쳐지는 환경재앙’에 대해 ‘느린 폭력’이라 명명했다. 일본의 핵 오염수 방류는 당장 우리의 삶을 흔들 정도로 급격한 충격을 몰고 오지는 않을 것이다. IAEA는 지난 7월 오염수에 포함된 방사성 물질이 인체에 미칠 영향은 무시해도 좋을 정도라고 결론 내렸다. 피폭 허용치(연간 1밀리시버트(mSv)를 밑돈다는 주장이다. 과연 그럴까?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과 반핵의사회는 온라인 책자 <후쿠시마 오염수와 한국정부 괴담>에서 “방사능엔 안전치가 없다.”고 강조했다. 미국 국립학술원의 <저선량 방사능의 건강위험에 관한 보고서>에 따르면 100밀리시버트에 한번 노출되면 100명 중 1명의 암환자가 추가로 발생하고, 10밀리시버트에선 1,000명 중 1명의 암환자가, 1밀리시버트에선 1만 명 중 1명의 암환자가 추가로 발생한다. 노출에 비례해 위험은 커지고, 위험이 없는 안전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15년 한국방송(kbs) <추적 60분>이 월성원자력 인근 주민들의 소변과 식수검사를 의뢰한 결과 핵발전소 인근지역 주민들의 소변과 식수에서 더 많은 삼중수소가 검출되었다. 보도가 나간 뒤 논쟁은 ‘삼중수소가 있느냐? 없느냐?’에서 ‘삼중수소의 위험성 유무’로 이동한다. 당시 삼중수소의 위험성에 대한 반론은 과학적 수리를 내밀며 “멸치 몇 그램, 바나나 몇 개 먹는 것과 유사할 정도로 큰 문제가 없다.”라는 것이었다.

‘과학적’이란 단어는 그 결과 값이 어떤 과정을 거쳐 나왔는지, 그 과정과 결과가 임의의 제3자에 의해 검증되고 재현 가능한 것일 때 비로소 ‘과학적’이란 단어가 의미가 있다. 느린 폭력 가해자들은 ‘과학적’이란 단어가 가지는 의미의 아주 일부(‘기준치 이하라서 괜찮다’)만을 참칭하여 ‘과학’이란 이름으로 느린 폭력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미신을 믿는 비과학적 존재들의 허무맹랑한 목소리로 몰아간다. 그리고 시간의 흐름 속에 쌓이는 축적은 과학적 수치에서 철저히 외면당한다.

2011년부터 12년이 넘는 지금까지 민・형사적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보자. 당시 가습기 살균제 제품들은 대부분 ‘인체에 무해하며 매일 사용할 것’을 권고하는 문구를 달고 있었다. 가습기 살균제에 들어있는 화학물질 ‘PHMG’는 다른 살균제에 비해 경구독성과 경피독성이 매우 낮고 살균력이 뛰어나다. 1994년부터 사용되었지만 2017년 가습기 살균제 판매회사 ‘옥시’가 유죄판결을 받기까지 방치된 것이다. 당시 기업들은 ‘합법적인 정부 승인을 받은 것’이라 주장했다. 안전성 검사를 거치고 정부 승인까지 받은 일명 ‘과학적 검증’을 거친 제품이니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일본은 핵오염수를 방류하기 시작했다. 30~40년간 계속될 것이라 한다. 일본의 원전을 설계한 고토 마사시 박사는 100년 이상 걸릴 문제라고 한다. 수십 년간 이루어지는 이런 폭력을 “당장은 안전하다”라며 감당해야 하는 것일까? 1973년 전면 사용 금지된 맹독성 발암물질 DDT는 2020년 국내에서 발견된 돌고래 상괭이 116개체 중 31개체에서 한계치를 초과해 검출되었다(문효방 교수 논문 <한국 상괭이의 잔류성유기오염물질 체내 축적 현상과 시간 흐름에 따른 추이>). 바다로 쓸려 내려간 살충제 성분인 DDT는 50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돌고래 체내에 축적되어 있었던 것이다.

허용치 기준 이하라는 이름으로 서서히, 느리고 지속적으로 방사성 물질이 섞인 오염수가 바다로 방류된다면 수십 년 후 해양생태계는 어떤 모습일까? 늙은 사람들은 살아온 삶의 시간 속에서 미래가 그려지나 보다. 지금 괜찮다고 하여 미래에도 안전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느린 폭력의 무서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