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07-27 10:18
[175호] 인권포커스 - 울산지법, 대기업 눈치보기에 무너진 사법정의 - 현대중공업 중대재해 판결에 부쳐 -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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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법, 대기업 눈치보기에 무너진 사법정의
- 현대중공업 중대재해 판결에 부쳐 -

김형기


2023년 7월 6일 현대중공업에서 발생한 중대 재해에 대한 판결이 있었다. 울산지방법원 형사3단독 노서영 판사는 2019년부터 2020년까지 발생한 현대중공업 산재사망 사고 4건 등(LPG탱크 임시경판 가우징 작업 중 하청노동자 협착 사망, LNG선 트러스 조립작업 중 하청노동자 추락 사망. 수중함 발사관 도어 정렬작업 중 정규직 노동자 협착 사망, 파이프 용접작업 중 아르곤가스 질식으로 하청노동자 사망, 고용노동부 정기·특별안전감독 결과 1,136건의 안전·보건조치의무 불이행 사항)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범죄행위에 대해서 판결했다. 판결 당시 현대중공업 한영석 대표이사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전과 3범이었다.
현대중공업은 1972년 창사 이래 473명, 한 해에 10여 명꼴로 노동자가 산재사고로 죽어 나갔다. 특히 위험의 외주화에 내몰린 하청노동자들의 사망비율이 더 높았다. 이 같은 죽음의 행렬을 방치할 수 없었던 울산시민 9,542명이 한영석 대표이사 엄중 처벌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하였다. 이번 판결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러나 울산지방검찰청은 애초부터 매우 낮은 수준의 형량을 구형하였다. 현대중공업 대표이사에 대해 산업안전보건법 상의 산재사망 사고에 대한 책임을 면한 채, 안전조치의무 위반에 대해서만 기소하고 벌금 3천 5백만 원을 구형하였다. 산재사망 사고가 발생한 조선사업부 대표에게는 징역 2년을, 해양플랜트사업부 대표와 특수선사업부 대표, 하청업체 대표들에게는 각 징역 1년을 구형하였다. 그 외 다수의 원하청 회사 관계자 등에게 700만 원 벌금을 구형하는 데 그쳤다.

울산지방법원은 양형에 앞서 검찰의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하였다. 검찰구형에 따르면, 산재사망사고가 발생한 각 사업부 대표에 대해서는 적어도 징역 1년 이상이 선고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울산지방법원은 그마저도 하지 않았다. 울산지방법원은 현대중공업 대표이사에게 벌금 2천만 원, 조선사업부 대표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해양플랜트사업부 대표에게 벌금 700만 원, 특수선사업부 대표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이번 판결에서 울산지방법원이 내건 감형사유는, ‘피고인들이 중대재해 이후 시정조치를 이행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한 점, 피해자들에게도 사고 발생 및 피해확대에 책임이 있는 점, 유족과 합의하고 유족이 처벌을 원치 않는 점’ 등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유는 모두 터무니없는 것들이다. 먼저 사고 이후 시정조치를 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였는지 를 보자. 위 4건의 중대재해 발생 이후에도 현대중공업에서 같은 유형의 산재 사망사고가 반복되었다. 트러스 추락 사망사고와 유사하게 2021. 7. 30. 지붕교체 공사 중에 추락방호

망 등을 설치하지 않아 개구부 사이로 노동자가 빠져 죽었다. 가우징작업 경판 낙하사고와 비슷하게 2021. 2. 5. 대조립 1부에서 작업 전 철판 전도방지 조치를 하지 않아 철판이 미끄러져 낙하하여 노동자가 사망하였다. 모두 대책을 마련하고 개선조치를 하였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들이다. 최근 인천항만공사에서 발생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판결에서 인천지방법원은 ‘사망사고 원인 중에 피해자의 과실도 있다’는 피고인의 항변에 대해, ‘누구의 어떠한 과실도 죽어 마땅한 잘못인 과실이라고 평가할 자격은 아무에게도 없다’고 하여 감형 주장을 배척하였다. ‘유족과 합의하고 유족이 처벌불원 의사를 표시하였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유족이 이미 사망하여 목숨을 잃은 피해 근로자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으므로, 피해 근로자 본인과 합의한 것과 동등하게 평가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 인천항만공사 대표이사는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되었다.

울산지방법원은 한영석 대표이사를 현대중공업의 안전보건관리책임자로 보면서도, ‘각 사업부가 대표체제로 수행되어 각 사업부 내 작업현장에 대한 구체적인 안전조치 사항을 현실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점’을 감형요소로 판단하였다. 그러나 각 사업부를 대표체제로 두었다는 내부사정 때문에 대표이사의 안전보건에 관한 총괄책임이 부정될 수 없다. 대표이사는 안전보건 업무를 포함하여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자이다. 중대재해 발생 사안에서 대표이사라는 지위와 역할은 감형사유가 될 수 없다. 한편 울산지방법원은 원하청 회사 관계자 모두에 대해 검찰 구형보다 대폭 감형을 하였는데, 오직 특수선 사고에서 신호수 역할을 했던 동료노동자에 대해서만 검찰 구형 그대로 벌금 300만 원을 선고하였다. 사고의 책임을 피해자와 동료노동자에게서 찾으려는 속내를 보여준 셈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생명과 안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커지고 있다. 과거와 달리 법원은 대표이사를 안전보건관리에 대한 총책임자로 보고 처벌을 강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중대재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중대재해를 막지 못한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형사 정책적 필요가 최근 판결에 반영되고 있다. 그런데도 울산지방법원은 고질적인 대기업 눈치 보기, 대기업 봐주기라는 구태에 사로잡혀 중대재해 법원 판결에 오점을 남겼다. 이번 판결은 2020년까지 발생한 현대중공업 중대재해에 대한 판결이다. 앞으로 울산에서 중대재해 판결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이번 판결을 보면서, 과연 울산지방법원 담당 재판부에게 중대재해 판결을 계속 맡겨도 되는지 의문이 든다.

※ 김형기 님은 금속노조법률원 울산사무소 공인노무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