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06-30 11:36
[174호] 여는글 - 어지러운 세상, 제대로 된 말이 필요해!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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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러운 세상, 제대로 된 말이 필요해!

오문완


소식지 <여는 글>에 논문심사에 관한 얘기를 쓰라는 권유를 받았습니다.(요즘이 대학에서 한창 학위논문 심사를 할 때입니다. 저도 나이 든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 형편이구요.) 더 정확하게는 압박(?!)이라고 해야 할까요. 평소 개념이니 용어니 하는 데 꽂혀 있어 그러마, 답을 했습니다.
두서없이 이 개념 저 용어를 말씀드릴게요. 실은 개념이니 용어니 하는 게 선점(先占)한 사람의 권력으로 작동하게 돼 있어 해체주의자 니체는 개념이라는 것에 극단적인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하이데거의 말을 끌어올 것도 없이 ”개념 없는 사회보다는 개념 잡는 사회가 바람직한 거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시절이 하 수상해서 중앙정부의 우두머리나 지방정부의 우두머리들의 행태를 보면 어안이 벙벙해질 지경인데, 이 모든 일이 자신의 처지에 대한 개념을 잡지 못해 벌어지는 해프닝이겠지요. 그 폐해는 고스란히 민중이나 주민이 떠안기 마련이구요.

원청-하청 얘기부터 할게요. 너무나 자주 듣는 용어인데 기실 탈(脫) 일본이라는 차원에서는 순화가 필요합니다. 청부라는 용어의 부정적인 면(청부살인 등)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법률용어로는 이미 도급과 수급, 하도급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먹이사슬로 보면 이런 도식이지요. 도급→수급(하도급)→하수급(하하도급)→하하수급(하하하도급)→어디까지 갈지는 모릅니다. 굳이 노동 쪽에서만 원청-하청 이런 말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데, 차제에 용어의 정비를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비정규직이라는 말도 널리 쓰이는 용어지요. 법률용어이기도 하구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뒤져봅니다. “비-정규직(非正規職) 「명사」 근로 방식 및 기간, 고용의 지속성 등에서 정규직과 달리 보장을 받지 못하는 직위나 직무. 계약직, 임시직, 일용직 따위가 이에 속한다.”고 쓰여 있군요. 그런데 이 말속에는 정규직으로 가지 못한 데 대한 비난이 담겨 있습니다.(가치평가가 담겨 있다는 말씀) 자(rule)로 정한 대로 하는 일이 정규(regular)직이라면 비정규(irregular)직은 그 틀을 벗어난 일이 되는 셈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쓰는 정규직인 실은 정형(typical)직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영어 단어 typical은 대개(보통은) 그렇다(usual)는 뜻이랍니다. 보통 직장이라면 한 번 들어가면 나이 먹어서 나오게 되고 하루 8시간, 한주 40시간 규칙적으로 일하는 게 통상의 모습이라는 얘기지요. 그렇지 않은 경우는 비정형(atypical)의 직업-직장이 되는 셈입니다. 그래서 노사관계를 얘기할 때는 정형적인 노동자는 기업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고(attachment) 비정형적인

노동자는 기업과의 밀착도가 그다지 높지 않다(detachment)고 설명합니다. 그에 따라 각종 대우가 달라지는 셈이지요. 이 개념은 사회 현상을 설명할 뿐 정규-비정규 하는 식으로 가치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건 아닙니다. 하기야 무엇이 정형인지 비정형인지 헷갈리는 세상이니!(……)
이주노동자 vs 불법외국인노동자는 이미 꽤 정리가 된 개념인 듯합니다. Sting의 Englishman in New York(https://www.youtube.com/watch?v=d27gTrPPAyk)을 들려드릴게요. 이런 가사가 나오지요. “Oh, I'm an alien, I'm a legal alien/I'm an Englishman in New York” 옛날 노래니 legal alien/illegal alien이라는 구분을 했을 겁니다. 지금 같으면 undocumented worker 라는 표현을 쓸 테구요.
최인철 교수의 《프레임: 나를 바꾸는 심리학의 지혜》(21세기북스, 2016)는 재미도 있고 생각을 정리하는 데도 도움이 되는 강추(!)하고 싶은 책입니다.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미국 보수 진영의 싱크탱크 역할을 했던 프랭크 런츠(Frank Luntz)는 ‘보수 진영이 쓰지 말아야 할 14개의 단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런츠는 보수 진영에 ‘undocumented workers’라는 단어를 쓰지 말라고 권한다, 이 말에는 ‘노동자’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기 때문에 그들도 보호받아야 한다는 진보적 시각을 자연스럽게 유발한다, 그래서 런츠는 ‘undocumented workers’ 대신에 ‘illegal alien(불법체류자)’이라는 말을 쓰라고 제안한다는 말씀! 한때 많이 읽고 좋아했던 책으로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를 다시 읽고 싶어지네요.

너무 심각하게 고민하지는 마세요. 나희덕의 《문명의 바깥으로(나희덕 시론집)》(창비, 2023), 106쪽을 들려드릴게요. [진정한 삶의 기술은 그 두터운 삶을 너무 무겁지 않게 표현할 줄 아는 능력이다. 그런 점에서 선생님(정현종 시인)의 유머감각을 빼놓을 수 없다. 「에코의 휘파람」에서 호칭을 어떻게 할까 묻는 기자에게 움베르토 에코는 휘파람을 불며 “이렇게 불러주시오”라고 말한다. 허세나 과장 없이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한 마디의 말, 그래서 유머는 경쾌하지만 참으로 무서운 말이다.]
덧붙이기: 아침 출근길 사회대 앞 어느 학생의 통화를 슬쩍 듣는데(들으려고 한 게 아니라 들려서) “나? 사과대 앞”이라네요. 음, 이 대학은 사과(謝過)하는 대학인가, 갑자기 들은 생각입니다. 전통적으로 “사회대”라고 해왔고 여전히 사회대인데요. 더욱 억울한 건 생활과학대의 줄임말 “생과대”. 선생님들이 생과부들인지 학생들 장래가 그렇다는 것인지? “생활대”면 충분한 것을. 말을 어떻게 줄일지도 고민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말하기 좋고 듣기 좋게! 언어생활 즐기세요!

※ 오문완 님은 울산대학교 법학과 교수이며, 울산인권운동연대 인권연구소 소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