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06-03 14:43
[173호] 인권포커스 - 하청노동자와 사회안전망_ 인권의 시각에서_
 글쓴이 : 사무국
조회 : 989  

하청노동자와 사회안전망
- 인권의 시각에서 -

오문완

1. 문제의식과 해법에 대한 공감을 전제로


전통적으로 울산 경제를 뒷받침해온 게 조선과 자동차, 화학공업이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분은 없습니다. 이 셋 중 조선업종의 경우 경기의 부침에 따라 고용사정도, 노동자의 형편도 들쭉날쭉해 온 건 우리 모두가 익히 알고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조선 경기가 회복하고는 있지만 하도급 노동자의 삶이 팍팍하기만 한 건 조선업종의 오래된 인습(因習)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하도급 노동자의 삶을 보듬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하청노동자와 사회안전망 토론회>를 열게 된 것은 시의적절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문제 해결을 위한 여러 제안을 해주신 발표자에게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발표자의 제언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하는 게 없어 코멘트하지 않겠습니다.
울산인권운동연대에 토론을 맡긴 건 인권의 시각에서 얘기를 해달라는 것으로 알고 인권(그리고 인권의 한 부분으로서의 연대권)의 시각에서 간단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2. 인권의 시각에서

사회 문제를 논하고 그 해법을 찾는 과정에서 항상 듣는 얘기는 기본에 충실하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번 토론회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을 겁니다. 당장의 문제 해결도 중요하지만, 고질적인 병폐를 해결하는 게 훨씬 중요할 테니까요. 그리고 인권이라는 시각에서 문제를 보는 데서 해법을 찾고자 합니다. 이런 얘기입니다.
권리 가운데 헌법적 가치를 갖는 것들을 기본권이라고 부릅니다.(이건 인권과 거의 같은 겁니다. 우리 헌법 37조 1항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보통 인권은 자연법적인 것(천부인권)이고 기본권은 실정법(제정법)적인 것으로 이해하지만, 이 헌법 조항에 따르면 굳이 그렇게 나눌 필요는 없고 헌법적 가치를 가지는 것이라면 기본권(곧, 인권)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겁니다. 생명권과 같은 게 헌법에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누구나 인권이라고 이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문제는 지금 문제가 되는 사회보장을 받을 권리(사회보장수급권)의 법적 성격입니다. 제가 법 공부를 할 때는 신체의 자유와 같은 자유권은 구체적인 권리인데, 노동권이나 사회보장수급권과 같은 사회권은 추상적인 권리라고 배웠습니다. 헌법에서 인권이라고 밝혀도 하위 법령이 없으면 맹탕이 되는 셈입니다. 그런데 요즘 헌법에서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온전하지는 않을지라도 구체적인 권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회 일반의 인식은 사회보장수급권을 아직도 국가의 혜택이라고 인식하곤 합니다. 이렇게 이해하게 되면 국가(정부)가 무언가 베풀면 고마운 일이지만, 무얼 달라고 주장할 수는 없게 됩니다. 사회보장수급권을 인권이라고 이해할 때 모든 문제의 실마리가 풀리게 될 겁니다.

3. 연대라는 관점으로

인권학자들은 인권의 역사를 자유권(1세대 인권), 사회권(2세대 인권), 연대권 또는 발전권(3세대 인권)으로 전개돼왔다고 합니다. 저는 이런 세대 구분에 찬성하지 않는 편입니다만, 여하간 인권을 얘기하면서 연대의 문제를 빠뜨릴 수는 없습니다. 이게 말로는 충분히 설명되는데 마음으로는 쉽게 다가서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조선업종만 보아도 정규직과 비
정규직, 이주노동자 간의 연대! 이론적으로는 당연해 보이는데, 실천적으로는 보통 어려운일이 아니지요.

올 3월 8일 고용노동부는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조선업 상생 패키지 지원사업 추진계획>을 보고하였습니다. 그 가운데 조선업 외국인력(E-9)의 활용 확대를 지원한다는 대목이 눈에 뜨입니다. 올해 조선업 외국인력(E-9) 규모는 전체 외국인근로자 도입 규모 확대, 조선업 우선 배정 등으로 지난해(E-9 입국 인원 2,667명) 대비 약 2배 증가한 5천 명 내외로 전망합니다.
한편, 정부는 올해 상반기 중 조선업계의 원활한 외국인력 운용 등을 지원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조선업 전용 외국인력 쿼터’의 신설을 추진하고, 동일 사업장에서 일정 기간 이상 근무한 숙련 외국인력에 대한 ‘장기근속 특례’를 마련하기 위해 외국인고용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지금 조선업 하청노동자의 사회안전망에 대해 논의를 하고 있는데 이주노동자 문제까지 엮이게 되면 문제는 점점 더 복잡해지는 셈이지요. 그렇지만 연대의 시각에서 문제를 더 넓고 깊게 볼 필요는 있습니다.

※ 오문완 님은 울산대학교 법학과 교수이며, 울산인권운동연대 인권연구소 소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