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04-30 08:44
[172호] 이달의 인권도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룰루 밀러 저 / 곰출판 2021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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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성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
룰루 밀러 저 / 곰출판 2021 / 정리 : 권혜영


미국의 과학저널리스트 룰루 밀러라는 작가가 쓴 책으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미국의 한 스타학자이자 분류학자의 생애와 당시 자연 과학계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자신의 경험과 이야기를 담담하고 진솔하게 고백하는 에세이 형식의 글이다.

룰루 밀러는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거나 또래 집단과 제대로 어울리지 못하고 자살까지 시도하는 등 어둡고 불우한 10대 시절을 보내면서 본인의 삶은 실패이고 자신은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20대가 되어 자연과학 분야의 저널리스트로서 삶을 시작하게 되고, 한 남자를 만나 7년간 교제를 하였으나 본인의 잘못으로 인해 연인이 떠나간다. 자신의 직업적인 상황이나 애정사에서도 딜레마에 봉착하면서 삶에 대한 무력감을 느끼던 와중에 어렸을 때 생화학자였던 아버지와 바닷가에 놀러 가서 있었던 일화를 떠올린다. 바다와 모래사장을 보면서 7살이던 룰루 밀러가 아버지에게 인생의 의미가 뭐냐고 질문을 하고, 아버지는 자신의 세계관을 어린 룰루 밀러에게 담담하게 말했는데 이 말이 룰루 밀러의 뇌리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인생의 의미는 없고, 신도 없고, 인생을 지배하는 것은 혼돈이고, 혼돈은 우리의 그 무엇에도 관심이 없으니 너 좋은 대로 살아".

한편 이 책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주요 부분을 차지한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30년에 걸쳐 2,000종이 넘는 물고기에 학명을 부여하고 물고기 표본을 만든 미국의 어류학자이자 스탠퍼드 대학교의 초대 학장이었다.
별 관찰과 식물 계통 연구를 시작으로 나중에 물고기 분류학자가 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어린 시절 자신이 가장 사랑하던 형을 군대 훈련소에서 얻은 병으로, 열렬히 사랑했던 첫 번째 부인을 결혼한 지 얼마 안 돼서, 곧이어 둘째 딸을, 친한 친구를, 그리고 재혼 후 얻은 가장 아끼던 딸을 어린 나이에 잃는 등 개인적인 큰 시련을 수없이 겪었다.
또한, 분류학자로서의 평생에 걸친 그의 업적인 방대한 물고기 표본이, 벼락사고에 이어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으로 다 깨어져 버리는, 다시 말해 자신의 학문적 성과가 일시에 무너지는 최악의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나 "신성이 훼손되고, 꿈이 박살 났으며, 수십 년 동안 끈기 있게 해온 일이 헛수고로 돌아갔을 때에도" 그는 "지하실로 내려가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망해버린 사명을 계속 밀고 나아가" 려고 침착하게 대처하고 해결책을 모색한다.
이런 점에서 룰루 밀러가 큰 감명을 받고 쉽게 무력감을 느끼는 자신과 달리 조던의 강력한 의지와 돌파력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를 찾기 위해 조던에 관한 연구를 시작한다.
책의 초반에 룰루 밀러는, 연구에 있어서 조던의 영웅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불굴의 의지와 끈기를 지닌 인간으로 묘사하여 독자들을 매료시킨다. 보통 사람이라면 낙담하고 절망했을 수많은 개인적 불행과 큰 학문적 위기에도 불구하고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늘 그 위기를 아무렇지 않은 듯 이겨낸 듯 보였기 때문에 룰루 밀러는 "아무 약속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희망을 품는 비결, 가장 암울한 상황에서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비결"인 ‘낙천성의 방패’를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게서 찾아서 독자들에게 던져줄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가 룰루 밀러는 갑자기 그에게 사실은 두 개의 어두운 면이 있음을 보여주면서 예상치 못한 전개를 해 나간다. 이것이 이 책의 첫 번째 반전이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어두운 면 중 하나는 스탠포드 대학교의 창업자인 릴랜드 스탠포드 부부 중 부인의 의문사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관련돼 있다는 논란이고, 두 번째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우생학적인 견해의 열렬한 전도사였다는 것이다(…).

이 책의 두 번째 반전은 책 제목과 연관이 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제목은 일종의 반어법이나 은유처럼 보인다. 그런데 놀랍게도 결론은 말 그대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980년대 이후 학문적으로 어류라는 분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분기학자들 사이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다시 말해서 포유류나, 양서류, 파충류처럼 물고기들을 한 가지 분류로 엮을 수 있는 공통된 특징이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연어, 폐어, 소에 있어서 서로 더 유사한 두 가지를 고르라고 할 때 우리의 직관과는 어긋나게도 연어와 폐어의 관계보다 폐로 호흡하고 심장 구조가 유사하고 후두개가 있는 소와 폐어의 관계가 더 가깝다는 것이다.
이렇듯 관찰과 경험에 의한 우리 직관과 어긋나는 "어류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결론에서 보듯 우리가 의심의 여지 없이 믿어 온 신념이나 믿음에는 우리의 편견이나 오류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보여준다.

룰루 밀러는 처음에 동경과 기대로 조던이라는 스타 과학자를 통해 삶에 대한 의지를 얻고 싶어서 전기적인 사실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것인데 연구가 거듭될수록 자기가 추앙하고 싶었던 의지의 인물의 생 이면에 그늘과 오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보통의 사람 같으면 어떤 사람에 대해 가졌던 자신의 생각이 틀렸거나 그 사람에 대한 오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것을 인정하고 견해를 수정하기가 쉽지 않을텐데, 룰루 밀러는 애초에 연구를 시작하게 된 자신의 가정과 기대와는 거리가 멀게도, 조던이 자신의 개인적, 학문적 여러 위기를 이겨낸 것은 그의 지적, 도덕적 우월감 때문이고, 그 자신에 대한 과도한 신념 때문에 인류에 대한 큰 폭력을 저질렀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룰루 밀러는, 인간을 우등한 인간과 열등한 인간으로 구분하고, 성 정체성 측면에서 동성애자나 양성애자를 열등한 인간으로 보고, 인간을 동물보다 우월하게 보는 관점과 관련 있는 우생학이 비과학적이고 비윤리적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양성애자인 자신의 삶으로 보여준다.

※ 권혜영 님은 울산인권운동연대 회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