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2-12-29 12:01
[168호] 이달의 인권도서 -『 이제 다시 시작이다 』노옥희 저 / 폴리테이아 2011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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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시작이다
- 나의 삶, 운동, 정치 그리고 사람들 -

노옥희 저 / 폴리테이아 2011 / 정리 : 오문완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난 노옥희 선생님을 그리워하며 몇 자 적습니다. 실은 문상을 다녀오면서 이 책을 건네받았는데 책을 요약해 달라기에 술김에 그러마. 대답하고 곧 후회를 한 건 인지상정이겠지요. 정치인들 책이란 게 자신의 주장을 펴거나 자랑을 하거나 치부를 감추거나 하는 용도로 쓰이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노선생님 책이니 위안을 해가며 책을 읽었습니다.

이 책은 부제가 <나의 삶, 운동, 정치 그리고 사람들>인 데서 알 수 있듯이 선생님의 노동운동과 교육운동,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의 정치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서문: 나는 왜 이 책을 쓰게 되었나>에서는 이 책을 내게 된 동기(책을 쓸 용기를 내게 된 이유)를, “나와 우리가 살아온 시대의 삶을 함께 공유”하고 싶어서라고 합니다. ‘그다지 빛나는 삶은 아니’었을지라도 “주어진 소명을 피하지 않고 살아온 우리의 삶을 긍정”하고 싶었다고도 덧붙입니다.(책, 8쪽) 삶의 ‘긍정’이라는 대목에 울컥해집니다. 이분은 참 따뜻한 사람이라고 새삼 깨닫습니다. 기실 이 따듯함은 천성인 모양입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일을 들려줍니다. “우리 반에는 보통 아이들보다 나이도 많고 덩치도 큰 여학생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제 덩치를 믿고 약한 아이들을 많이 괴롭혔다. 그날도 한 친구가 삶은 고구마를 학교에 가져와 먹고 있는데, 이 친구가 다 뺏어 가는 게 아닌가. 그걸 본 순간 참지 못한 나는 왜 그러느냐고 대들다가 흠씬 두들겨 맞아 코피까지 났던 적이 있다. 내가 어쩌다 노동운동을 하게 되었나 생각할 때면 떠오르는 기억 중 하나이다.”(책, 238-239쪽) 선생님은 장대(長大)한 분이신데 고등학교 때까지는 몹시 말랐다네요. 말라깽이가 의협심 하나 가지고 대들다가 코피 터지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이 책은 시골 소녀(김해 한림면 소재지에서도 4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모정이라는 작은 마을 태생)가 어쩌다 보니 울산이라는 곳으로 와서 노동운동과 교육운동을 하게 되고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성장 과정에 사회의식을 쌓을 만한 계기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울산으로 오게 된 동기도 수학 선생님으로서의 첫 발령지를 현대공고로 잡았기 때문인데, 당시 이 학교가 월급도 세고 살 집도 준다고 홍보했고 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닌 부산에는 별 정을 붙이지 못한 터라 기꺼이 울산으로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운명이란 어쩔 수 없는 거겠지요. 가르치던 학생 하나가 실습을 하던 공장에서 재해(노동재해)를 입고 그 사고를 수습하면서 노동운동가로 거듭나는 것은 익숙한 패턴이기도 합니다. 교육운동을 하면서는 해직교사가 되고 오랜 복직 투쟁을 통해서 교육운동가로 성장하는 것도 익히 보아온 바와 같습니다.

이 책이 출판된 건 2011년이고 당시 선생님은 삶을 나누는 공간 ‘더불어숲’ 대표를 맡고 있었습니다. 두 차례의 교육위원을 거쳐 정당정치에 몸을 담았다가 좌절을 맛볼 때였지요. 아직 울산광역시 교육감으로 선출되기 전입니다. 2011년 이후의 얘기까지 담았으면 선생님 생각의 궤적을 좀 더 분명히 따라잡을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있습니다만 선생님의 정치관을 소개해 두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라는 영역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어야 하지만, 정치를 소명으로 삼는다는 것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고민과 노력 속에서 단련된 좋은 정치가가 되어야 한다는 결의를 조용히 다시 다져본다. 그런 정치가를 배출해 내는 좋은 정당만이 우리 사회의 희망이라고 생각하며 다시금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자 한다. 제대로 된 진보 정치를 세우지 못한 것에 대해 그동안 많은 부분을 남 탓으로 돌리며 살아왔다. 이제는 우리 그리고 내가 잘못해서 빚어진 문제들이 더 많다는 것을, 가슴 아프지만 인정하는 일부터 시작하고 싶다. 사회가 문제라고 말하고 나는 다르다고 여기면서, 나 스스로 높은 울타리를 치고는 변하기를 두려워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더는 실패하지 않기 위해, 뼈아픈 자기 고백에서 출발하고자 한다.”(책, 8-9쪽)

그리고 이 정치라는 건 아이들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웅변합니다. “아이들에게는 습관이 매우 중요한데, 우리 부부는 바쁘게 돌아다니느라 아이들이 좋은 습관을 갖도록 키우지 못했다.……제도 교육의 문제도 있겠지만 부모로서도 미안한 부분이 많다. 우리 아이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자신이 어떤 재능을 가졌는지도 모른 채 학창 시절을 보낸다. 교사와 전교조 활동, 교육위원 활동을 한 사람으로서 책임감과 죄책감이 드는 부분이다. 어떤 가정에서 태어났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교육제도, 사회제도,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해주는 정치가 절실히 필요한 이유이다.”(책, 260쪽)

“운동과 가정 모두에 충실하기란 쉽지 않지만, 오랫동안 제대로 운동하려면 자녀 교육에 대해서도 집단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가 하는 활동을 자녀가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고서야 아무리 열심히 활동을 한다 한들 지속 가능하지가 않기 때문이다.”(책, 256쪽)
그리고 그 기반이 되는 건 공동체라고 합니다. “중학교 때까지는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집이 잘살든 못살든 별로 신경 쓰지 않고도 친구들끼리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 같은 동네 이웃이거나 이웃 동네에 살면서 집안끼리도 웬만하면 다 알고 지낼 만큼 공동체가 유지되어 있어서 그랬을 것이다. 초등학교·중학교 때 친구는 고등학교·대학교 친구와는 달리 오랜 세월이 지난 뒤 만나도 아무 허물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학교가 이런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책, 242쪽)

많은 얘기를 전해드리고 싶지만, 지면이 한정돼 여기까지가 제 몫일 터이고요, 책을 읽어보십사 권합니다. 선생님의 명복을 빌며 산 자의 몫을 다할 수 있기 바랍니다.

※ 오문완 님은 울산대학교 법학과 교수이며, 인권연구소 소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