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2-09-07 15:40
[164호] 여는 글 - 지역, 인권운동의 방향?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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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인권운동의 방향?

박영철


최근 출장이 잦았다. 지난주 수원에서 열린 다산인권센터의 30주년 기념토론회에 참석했고 3주 전에는 대전에 있는 ‘양심과 인권 – 나무’의 토론회도 다녀왔다. 두 번의 행사 주제는 ‘지역 인권운동단체의 역할과 방향’이라는 정체성과 관련한 내용이었다. 두 단체는 모두 지역을 기반으로 한 종합적인 인권단체로서 2~30여 년을 활동하고 있는 단체들이다.
울산인권운동연대도 지역에 기반한 종합적인 인권단체로서 좌충우돌하며 짧지 않은 역사를 이어가고 있기에 앞선 두 단체의 이력이 궁금했다. 회원들과 함께, 지역시민사회와 함께 인권운동을 어떻게 펼쳐가고 있는지 말이다.

결론적으로 보면, 우선 지역단체로서의 역할과 인권운동단체로서의 정체성의 문제를 어떻게 조화롭게 이뤄낼까에 대한 고민이였으며, 두 번째는 지속가능한 지역운동단체로서의 재정, 인력 등등의 문제다.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권단체는 기본적으로 지역단체로서의 정체성과 인권운동단체로서의 정체성이라는 비슷한 고민 앞에 놓이게 된다. 하루가 멀다고 발생하는 모든 지역 사안에 인권단체로서의 입장을 갖고 참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때로는 인권과 무관한 사안이지만, 지역단체로서의 참여를 요청하는 손길을 외면하기란 쉽지 않다.
지역에 기반하여 활동한다는 것은 지역문제와 관련하여 시민사회단체로서 담당해야 할 숙명과도 같은 역할이 부여되기 때문이다.

앞선 두 단체 역시 지역에서 온갖 대책위와 연대요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대충 이름만 내거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의 대책위에서 집행위원장을 맡아서 열정적인 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에 신뢰를 형성해가고 있었다. 특히 다산인권센터의 경우에는 기반하고 있는 곳이 수도권이기에 수원과 서울을 넘나드는 연대활동을 통해 전국적인 지명도와 신뢰를 획득하고 있는 단체라고 평가받는다.

울산지역에서 울산인권운동연대의 위상은 어떨까? 토론회 내내 생각해봤다. 이들 단체와 비교하면서 23년의 활동을 뒤돌아보게 되었다.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경로를 따라 20여 년을 묵묵히 걸어왔다.

지역에서 제기되는 대부분의 대책위와 연대요청에 한 번도 거절하지 않고 연대에 이름을 올렸다. 지역단체로서의 역할에도 충실히 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차별금지법, 혐오차별문제, 교육문제 등은 인권에 반하는 정책과 관행에 맞서 누구보다 먼저 연대를 주도하며 지역시민사회의 참여를 오히려 호소하기도 했다. 사무실 한쪽에 걸려있는 스케줄판을 보면 매주 개최되는 기자회견과 캠페인이 빼곡하다.

다음으로 여전히 남는 문제는 재정이다. 상근활동가의 활동비조차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지속가능한 단체운영은 불가능하다. 앞선 두 단체 역시 재정문제 앞에 별 뾰족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었다. 회원배가, 재정후원캠페인 등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할 뿐.
명절 재정사업, 2년에 한 번씩 개최하는 ‘후원의 밤’도 진행하고 있지만, 역시 회원배가 만큼 안정적인 방안은 없을 것이다. 대전의 경우 울산과 비슷하게 ‘500 회원시대’를 수년 동안 추진하고 있었다.

회원/후원회원의 유입경로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인권운동에 대한 지지와 참여를 희망해서 회원이 되는 경우이고, 두 번째는 개인적인 인맥을 통한 회원가입이다.
지역사회에서 회원배가 캠페인의 방식은 보통 후자의 방식으로 진행되는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핵심활동가의 가족·친지는 물론이거니와 학연을 동원하는 방식을 선호하게 된다.

문제는 이렇게 형성된 회원구조이기에 인권단체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강조하기가 쉽지 않을 때도 있다. 지역사회에서 인권단체 역시 시민사회단체의 하나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인권단체로서의 예리함과 양보할 수 없는 인권의 가치를 지켜가는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 회원들 속에서 때론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활동가 중심의 활동 vs 회원 중심의 활동’에 대한 실험이 인권단체들 속에서 여전히 진행 중인 이유다.
인권운동사랑방, 다산인권센터와 같이 활동가중심 단체를 지향하는 단체가 있는 반면, 회원중심 활동을 지향하는 단체들도 여럿 있다. 울산인권운동연대는 인권운동의 정체성과 더불어 회원과 함께 한발을 더 내딛기 위해 ‘회원중심의 활동’에 조금 더 무게를 두고 활동하고 있다.

지역, 인권운동의 방향은 여전히 모색 중이다. 다만, 인권의 가치가 존중받는 세상을 위해 지금처럼 지역사회의 신뢰를 바탕으로 인권의제를 제기하고 공동의 투쟁을 조직해 나갈 것이다. 여전히 조건은 힘들고 어렵지만, 우리에게 요구되는 지역사회의 바람과 인권운동단체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한 발 더 나아가고 있다. 회원들과 함께...

※ 박영철 님은 울산인권운동연대 대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