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2-09-07 15:30
[164호] 인권 포커스 Ⅲ -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
 글쓴이 : 사무국
조회 : 1,499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

김창원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
얼마 전 대우조선해양 거제옥포조선소에서 가로, 세로, 높이 1M인 0.3평의 철창에 자신의 몸을 가두고 1달여간 농성을 벌였던 유최안씨가 들고 있던 손팻말 문구다.
금속노조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인 그의 나이는 40세다. 20년간 조선업에 종사해왔다고 한다. 유최안씨를 비롯한 금속노조 조선하청지회 노동자들의 요구는 지난 5년간 삭감된 임금 원상회복(30% 인상)과 노조 인정이었다. 1년 넘게 이어져 온 교섭에 진전이 없자 철장에 몸을 가두고 농성을 이어간 것이다.

한국이 전 세계 선박수주량 1위를 탈환했다는 소식이 언론 지면을 장식할 때 생산현장은 생존을 위한 치열한 싸움이 진행되고 있었다. 배 만들 사람들이 ‘이대로는 살 수 없다’고 소리치고 있었던 것이다. 정부는 하청지회의 파업을 불법이라며 압박하는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생존권 투쟁을 지원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정국이 긴박하게 돌아갔다. 그리고 지난 7월 22일 임금인상 4.5%에 합의하고 51일 동안의 파업은 끝났다.

하지만 철창 속에 쪼그려 앉아있던 유최안씨의 모습은 뇌리에 깊숙이 남아있다.
왜 그들은 30%의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이대로 살 수 없지 않습니까!’라는 손팻말을 들고 스스로 철창 속에 몸을 가두었을까? 왜 임금을 30%나 올려달라고 했을까? 조선소 경력 15년인 대우조선 하청업체 취부사(선박용접 전에 도면을 보고 철판을 조립·가공하는 인력)의 원천징수 영수증에 찍힌 세전 연봉은 2014년 4974만 원, 2016년 4328만 원, 2018년 3621만 원을 거쳐 2021년 3429만 원으로 줄었다(실수령액은 더 적다). 2014년 대비 약 31%가 줄어든 것이다.(출처 : 시사IN, 한국 조선업에 미래가 있을까)

2016년 조선업계 불황과 함께 구조조정이 시작되었다. 대우조선해양 정규직 직원들이 고통을 분담하자며 임금을 10% 삭감할 때, 시급 8300원의 유최안 부지부장은 상여금 150%를 삭감했다. 그로부터 1년 뒤 남은 상여금을 기본급에 포함 시키면서 시급은 1만300원이 되었다. 상여금은 없었다. 연봉으로 따지면 2000여만 원이 날아간 셈이다.(출처 : 프레시안, 0.3평 철창에 자신을 가둔 노동자 “살길을 열어달라”)

조선업 연구자들에 따르면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조선소에서 하청이 급격히 확대되었다. 원래는 직영 노동자가 더 많았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하청이 늘어나 1대1 비율이 되더니, 2007년을 기점으로 하청노동자수가 직영을 넘어섰다. 특히 위험한 공정일수록 하청 비율이 높다.
한 조선사 내부 자료에 따르면, 높은 곳에서 일하는 작업자를 위해 발판을 설치하는 공정(발판이나 족장, 비계라고 부르며 추락위험이 높다)은 100% 사내하청이 한다. 도장 중에서도 난이도가 더 높은 ‘후행도장(조립된 선박에 페인트칠을 하는 공정)’의 사태하청 비율은 95.4%, 단열재를 붙이는 과정에서 유해물질에 노출되기 쉬운 ‘보온’공정의 사내하청 비율은 92.3%에 달했다. 대체로 생산공정 60~70%를 하청이 담당한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조선산업의 고용구조 현황과 문제점>, 2016)
문제는 어렵고 힘들고 위험한 일을 하는 하청 노동자들이 정작 임금은 직영 생산직의 절반 남짓만 받는다는 점이다. 대우조선 정규직 평균연봉이 약 6,500만 원인데 비해 하청은 3,000만~3,500만 원에 그친다. 대우조선 생산직은 오래 일할수록 숙련이 쌓인다고 가정해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를 적용받는다. 굳이 어렵고 힘들고 위험한 일을 하지 않아도 연차가 높아지면 똑같이 임금이 오른다. 반면에 하청은 위험한 업무에 해도, 숙련을 쌓아도 임금이 거의 오르지 않는다.
김형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장은 “직영 생산직은 상여금만 기본급의 800%다. 연 2,000만 원에 가까운 돈이다. 더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이 대우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정규직이라 더 받고, 하청이라고 덜 받는다면 신분제 사회나 다름없다”라고 말했다.(출처 : 시사IN. 한국 조선업에 미래가 있을까)


# 유최안 대국민 편지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노동조합이 없는 우리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아무리 좋은 법과 제도가 있어도 그 규칙과 제도들이 되려 차별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왜곡되었다. 그러다 보니 조선소는 불법의 백화점으로 구조화되었고 하청노동자들에게 끊임없이 생지옥과도 같은 노동 현실을 강요하였고 이 생지옥을 바꾸려는 마음은 우리를 노동조합으로 단결시켰다.

조선소에서 비정규직법 보호법은 제도적 차별을 허용하고 상시적 노동자들에게 11개월마다 해고하고 퇴직금을 떼먹는 수단이 되었다. 조선소에서 임금체불을 구제하기 위한 대지급금(체당금)은 업체대표들의 비상금이 되어 손쉬운 폐업으로 임금체불과 상시적 고용불안을 위한 수단이 되었다.

조선소에서 4대 보험 체납 유예는 임금에서 공제한 4대 보험료를 합법적횡령하고도 피해를 더 키워 노동자들에게 월급이라도 받고 싶으면 열심히 일하라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협박을 만들어 내었고 사회보장제도에서 우리를 소외시켰다.

업체 폐업으로 임금이 체불되도 은행에 가도 대출이 안 되는 미친 조선소 노동. 국민연금을 공제하고도 납부하지 않아 미래의 먹거리까지 강탈하는 미친 조선소. 기본적인 임금조건과 고용조건이 이런 상황에서 땀 흘려 일하는 하청노동자들의 노동 현장은 어떻겠는가. 회사의 욕심은 끝이 없고 끊임없이 발생하는 피해자들이 흘리는 피눈물로 띄운 배로 세계 1등이 무슨 소용인가?

이대로 살 수 없어 이 상황을 바꾸고 싶다.

(유최안 부지회장의 편지는 7월 22일 하청노사교섭이 타결된 뒤 <프레시안>에 보내온 문자메시지입니다.)

※ 김창원 님은 울산인권운동연대 운영위원입니다.